매거진 잉여일기

2025.09.28 (일)

by 박인식

큰아이 작은아이가 태어나 지금까지 그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나도록 기도해오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먼저 좋은 어른, 좋은 이웃, 좋은 친구를 만나야 하겠지요. 그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류하는 가운데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나고, 그렇게 자라난 그들이 다시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 좋은 이웃, 좋은 친구가 되어 그 누군가를 건강한 시민으로 키워낼 수 있다면 신앙인으로서 본분을 다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득 건강한 시민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내가 건강한 시민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싶어 이리저리 찾아봤습니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삶. 사회적으로는 법과 규범과 사회 질서를 존중하는, 더 나아가 연대하고 배려하는 삶. 정치적으로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참여하고 책임지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그러면서도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학습하는 삶.”


말하자면 몸과 마음이 균형 있게 건강하고, 공동체 속에서 책임을 다하고, 민주적 가치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신일중학교 첫 입학생입니다.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이라는 교훈에서 보듯 기독교 학교로서의 정체성을 매우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중학교에 합격하자 아버지께서 교회에 나가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도 다니지 않는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신앙생활이 육십 년이 되어갑니다.


돌아보니 제 삶이 한국 교회와 한국 기독교인의 평균적인 삶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았더군요. 한때는 사회를 이끌어나갔으나 그 바닥에 깔린 아집과 이기심과 배타성에 묶인, 자기밖에 모르는, 이제는 사회에서 지탄받는 집단이 되어 버린. 오십 중반에 해외법인으로 떠나면서 비로소 그런 한국 교회에서 풀려나 자신과 자신이 가져온 신앙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늦기는 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십 년쯤 전에 강성호라는 젊은 학자가 낸 ‘한국 기독교 흑역사’라는 책이 그런 생각에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집단이든 그 집단을 움직이는 동력이 두 가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와, 그 집단이 살아남으려는 본능 말이지요. 교회로 말하자면 ‘예수 정신’과 ‘교회 부흥’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군요. 그는 한국 교회가 지금과 같은 흑역사를 갖게 된 것은 ‘교회 부흥’이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지는 갖은 부패와 타락과 아집이 ‘예수 정신’을 덮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한국 교회가 신사참배에 참여한 것은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아니라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이었으며, 지금과 같은 타락의 길에 접어든 것 역시 우연히 생겨난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책이 출간된 이후 본격적으로 불거진 교회 세습 문제 역시 이 맥락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결과이지요.


어쩌면 이런 생각이 두 손녀를 위한 기도로 이어진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 교육이 상당히 걱정스럽습니다. 저는 몇 년 전 귀국하면서 모교회로 돌아가지 않고 지금 교회로 옮기면서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만, 정작 아이들이 자라나는 교회의 토양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저는 신앙인의 삶과 시민의 삶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정신이 별것이겠습니까? 공동체 속에서 책임을 다하고, 민주적 가치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삶이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삶이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신앙은 상식과 함께 갈 수 없다는 많은 목회자의 주장을 매우 걱정스럽게, 때로는 분노하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가 모교회로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은 데는 차별금지법 반대가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예수 정신을 생각한다면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주장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차별금지법 광풍이 시작되던 무렵에 이런 칼럼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무언가를 반대하고 불안을 조장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구현해 왔다. 타인을 죄인으로 규정하면서 자신을 의인으로 여겨온 것이다. 누군가를 부정하면서 자기 정당성을 추구하는 신앙인 셈이다. 반공주의가 대표적이다. 반공주의가 많이 희석되니까 이제는 차별금지법을 이용하고 있다.”


올해는 아이들이 세 번이나 만났습니다. 코로나 때 한 해를 거르기는 했어도 다행스럽게 매년 아이들을 만납니다.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 번이나 만났으니 올해는 복이 터진 셈입니다. 봄에 있었던 바깥사돈 퇴임식 때문에, 여름 방학 때, 그리고 며칠 전. 아직 한 번 더 남았습니다. 보름쯤 뒤에 아이들 가을방학이 시작됩니다. 그때 잠깐 제가 있는 곳을 다녀간다는군요. 무려 한 해 네 번이나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북한도 이 아이들 무서워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중2 세월을 지나는 큰아이는 요즘 말도 잘 섞지 않습니다. 귀찮을 정도로 달라붙던 작은 아이도 요즘 살살 거리를 둡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그저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는 ‘건강한 시민’이라는 말을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하는 게 가장 의미가 가까울까요? 찾아보니 good citizen, responsible citizen 정도이던데. 무림의 고수가 계시면 지도편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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