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체코일기 2025.10.05 (일)

by 박인식

귀국하면서 루터교회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여러모로 생각해 내린 선택이었고, 생각 이상으로 편안하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인데도 처음엔 잠깐 망설인 일이 있었지요. 매주 성찬을 나누는데, 그러다 보니 예배 시간이 한 시간 반이 다 되어 가는 겁니다. 하지만 이젠 성찬이 빠진 예배를 드리면 예배를 드리다 만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단지 익숙해진 게 아니라 그 의미와 감동이 체화된 셈이라고나 할까요.


루터교회에서 성찬이 익숙해질 무렵 런던 웨스트민스터 교회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마침 성찬 나누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나가서 성찬을 받을까 망설이는 사이에 성찬이 끝나고 말았는데, 돌아서 나오면서 얼마나 아쉽던지요.


현장에 나오고 벌써 두 달이 되었습니다. 7시간이나 차이가 나서 실시간으로 예배를 드리지는 못합니다만, 유튜브로 조금 늦게라도 예배도 드리고 교회 식구들도 볼 수 있어 아쉬운 대로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교회에서 예배드리지 못하는 갈증마저 없애지는 못합니다. 숙소 근처에 교회가 몇 곳 있어 찾아가 봤지만, 예배 시간을 못 맞춘 것인지 예배를 안 드리는 건지, 아무튼 예배드릴 교회를 찾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검색으로 예배 시간을 알아낸 교회에서 성공적으로 예배드렸습니다. 성 프로코피우스 대성당인데요, 천 년쯤 전에 지어진 성당이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된 어마어마한 교회이지요. 일전에 칼 젠킨스의 레퀴엠 공연이 있다고 해서 다녀온 그 교회입니다.


유럽에는 아름다운 교회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주일마다 교회를 찾는 이들이 매우 적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체코는 유독 종교인구가 적기로 이름이 났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인지 교회가 텅텅 비었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백 명은 넘지 않을까 싶네요. 워낙 인구가 작은 동네이기는 해도 지금껏 아이들을 본 기억이 별로 없는데, 오늘 교회에 아이들이 어찌나 많던지요. 예배 시간에 아이들을 위한 순서도 몇 개 있었고. 물론 알아듣지 못하니 그게 무슨 순서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드디어 성찬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이전처럼 성찬 못 받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번역기로 “성찬에 참여하고 싶다, 참여해도 되느냐”는 내용을 체코어로 써놓고, 순서가 되자 뒷자리에 앉은 분들에게 보여줬습니다. 뭐라고 길게 설명하긴 하는데, 아무튼 된다는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무난히 성찬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쓰고 있습니다.


엊그제는 0도까지 내려갔고, 어디는 영하로까지 내려갔답니다. 그래도 그렇게 추운 줄은 모르겠습니다. 어느 분인가는 추석까지 더우면 어쩌자는 거냐고 짜증도 내시던데. 집에 돌아와서 내일 아침에 먹을 감자수프를 한솥 끓였습니다.


이렇게 한 주가 갑니다. 서울은 열흘 연휴라지요? 저희는 내일도 일합니다. 모래도 일합니다. 휴일이라고 알람이 안 울릴 텐데, 잘 챙겨놓고 자겠습니다. 명절 잘 쇠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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