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요즘 사람들이 왜 발음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발음이 뭉개지는 것 같고 점점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아나운서들은 발음이 예전과 다름없이 선명하고 마지막 음절까지 잘 들려서 사람 탓이려니 했습니다.
귀국한 그해였나, 혜인네 다니러 갔는데 아들 내외가 굳이 청력검사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었지요. 예약까지 해놨다니 어쩔 수 없이 갔지요. 전 같지는 않다는 거야 느끼고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검사 결과도 딱히 문제가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보청기 사용을 고려해보라는 토를 달기는 했습니다만.
체코 사업 준비 때문에 외부 회의에 가게 되면서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엔 회의 인원도 많지 않고 가까이 둘러앉으니 별일이 없었지요. 마이크를 사용하는 회의였는데도 젊은 여성이 하는 말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얼굴이라도 보이면 말하는 모습으로 무슨 말인지 짐작이라도 하겠는데. 사업이 진행되면서 영상 회의가 늘어났습니다. 그건 더 알아듣기 어려웠습니다. 번번이 말을 놓치고 그러면서 몇 번 엉뚱한 말을 하는 지경이 되었지요. 자칫 영어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흉잡히겠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어머니가 백수를 눈앞에 두셨는데도 아직 정정하십니다. 기억력은 오히려 저보다 나으시지요. 그런데 보청기가 없으면 의사소통이 어려우실 정도입니다. 종종 어머니 모시고 간 일이 있어 보청기 대리점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청력검사를 받고 나서 그동안 의아했던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제 청력이 뭔가 조치해야 할 딱 경계에 걸려있다더군요. 고음역에서는 특히 그 증상이 심하다면서, 아마 젊은 여성의 목소리는 구분하기 어려울 거라고 했어요. 그제야 비로소 회의에서 젊은 여성 참석자의 소리를 거의 알아듣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상태가 경계에 걸려있는 정도라 보청기를 끼어도 별로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좀 더 기다려보기로 하고 나오기는 했는데, 당장 해외 현장으로 나가야 할 상황이라 급한 대로 이어폰-보청기 겸용 제품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며칠 전,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해 다시 물으니 함께 일하는 후배가 짜증스럽게 대답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친구가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아차 싶더군요. 이어폰-보청기를 책상에 놓아두고서도 귀찮아서 쓰지 않았는데. 어제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전용 보청기가 아니어서 문제가 해결될 정도는 아니지만, 들리는 게 확실히 낫기는 합니다.
사실 저는 그다지 불편하지 않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 찾는 법이잖습니까. 제가 물을 거보다는 제게 묻는 게 더 많으니 말입니다. 못 알아들으면 물어보면 되는 일이고. 잘 안 들리니 남의 이야기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요. 그래서 오히려 일에 더 집중하게 되는 가외 소득도 있네요.
보청기에 대해 유독 예민한 분들이 있지요. 그걸 자존심으로 여겨 끝내 고사하는 분도 있고, 남 눈을 의식해서 조금이라도 겉으로 덜 드러나는 제품을 찾기도 합니다. 저는 이도 저도 아닙니다. 그저 덜 귀찮은 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청력이 떨어지는 건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인데, 그걸 왜 자존심 문제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네요. 물론 나이 먹은 게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지요. 그게 바로 저이고,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인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