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설거지하는 걸 좋아합니다. 설거짓거리가 많을수록, 더 어지럽혀졌을수록 더 신나 합니다. 깨끗하게 설거지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부엌을 보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습니다. 잔반도 꺼리지 않구요, 음식 찌꺼기로 뒤범벅되어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그럴수록 설거지하기 전과 설거지하고 난 다음이 선명하게 비교가 되니 그렇습니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맏아들로 자라난 제가 처음부터 그랬겠습니까. 그거 다 교회에서 몸에 밴 버릇입니다. 이렇게 써놓으니 꽤 오래전부터 그런 거 같습니다만, 사실은 이제 겨우 십 년이 되었을까 그렇습니다.
사우디에서 출석하던 교회에서 식사는 여성들이 준비하고 설거지는 남성들이 맡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식사 준비는 차질이 없는데 늘 설거지가 문제였지요. 설거지할 때마다 구역 사람 찾으러 다니는 게 일이었습니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자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붙박이 설거지로 나섰습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교민 교회가 다 그런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제가 출석한 교회는 신앙 공동체라기보다는 교민 공동체에 가까웠습니다. 거기나 가야 교민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니 교회라고 여길 수 없는 모습이 하나둘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라고 다 그런 거는 아니지만, 그래도 교회에서는 드러내놓고 남 흉보고 뒷담화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뒤에서야 그것보다 더한 소리를 할망정. 그런데 다른 사람 욕하는 거는 기본이고, 같은 교민 등치는 걸 자랑삼아 이야기합니다. 설거지 끝날 때까지 부엌에만 들어박혀 있으니 그 꼴 안 봐서 좋더군요.
귀국해서 모교회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교회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이미 칠십 줄에 들어서서 신입 교인이 되다 보니 교우들과 어울리기도 쉽지 않았지요. 그렇게 빈자리를 찾다 자리 잡은 게 설거지였습니다. 그건 경쟁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교우들과 가까워진 것이지요. 요즘은 그것도 경쟁이 심해져서 자칫하면 자리를 놓치기도 합니다.
체코 현장으로 오면서 여러모로 조심스러웠습니다. 나이가 많아 봐야 자식 또래인 후배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만만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함께 일하는 것과 함께 사는 건 전혀 다른 일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여기서도 여지없이 설거지 특기를 발휘했습니다. 처음에는 말리던 후배들도 이제는 당연한 일로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요즘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듯 설거지하는 것도 참 각양각색이더군요. 아침은 간단히 제가 준비하고, 저녁은 식당에서 먹고, 저녁이나 되어야 밥을 짓지요. 제 차례가 되면 식사 준비를 마치고 조리대는 잘 정리한 후 식사하는데, 어떤 친구는 있는 대로 벌여놓고 식사하는 겁니다. (여러분도 그러세요?) 부엌과 식탁이 붙어있으니 안 볼 재간도 없고. 밥 먹는 내내 편치가 않고 눈길이 자꾸 그리로 만 갑니다.
설거지 끝낸 모습도 그렇습니다. 저는 설거지가 끝나면 모든 게 정돈되어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불린 다음에 아침에 씻겠다고 그릇 불리는 것도 눈에 거슬리고, 말리겠다고 찬장을 열어젖히고 행주를 사방에 늘어놓는 것도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이야길 하면 흉이나 잡힐 것 같고. 그래서 이꼴저꼴 안 보려면 제가 하는 방법밖에 없거든요. 말하자면 도저히 그 꼴은 못 보겠다는 무언의 시위인 셈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 제가 합니다. 매번 하는 건 아니구요, 후배들이 밀어내면 저는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옵니다. 못마땅하거든요.
예, 맞습니다. 흉보는 겁니다. 여길 대나무 숲이라고 생각하고 소리 지르는 거지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고 말입니다. 망령이 난 모양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