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체코일기 2025.12.10 (수)

by 박인식


자기 신세 자기가 들볶고 산다는 말이 있지요. 바로 제가 그렇습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누가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뭔가 하나 하기로 마음먹으면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그게 생각만큼이나 고단한 일이라 나이가 들면서 그런 속박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고, 할 수 있는 대로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 삶이 느슨해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몇 년 전부터 매일 성경을 쓰고, 어쩌다 거르게 되면 거른 만큼 다음에 채워 넣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자유롭고 싶어졌습니다. 중요한 건 내 자세이지 행위가 아닐 거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너무 자유로워지다 보니 이젠 쓰는 날보다 건너뛰는 날이 더 많습니다. 이번엔 닷새를 건너뛰었네요. 이러다가 조만간 성경 쓰기를 작파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민학교 때부터 나가던 교회를 대학 다닐 때 두 해쯤 빼먹은 일이 있습니다. 대학 입학하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교회에서 시키는 일이 많았습니다. 일요일마다 새벽같이 교회에 나가 저녁 예배 이후 성가대 연습까지 끝나면 열 시가 넘었지요. 그땐 교회 와서 예배만 드리고 가는 게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어느 날 그걸 실행에 옮겼습니다. 시간이 널널하게 남았겠지요? 그래 이것저것 하다 보니 시간이 오히려 모자라지 않겠습니까. 결국 다른 일이 바빠 교회를 한 번 두 번 빠지고, 그렇게 두 해를 흘려보냈습니다.


성경 쓰기 조만간 작파할 거라는 걱정이 다 사연이 있는 거란 말씀입니다.


오늘은 모세가 하나님이 반석을 향해 물을 내라고 명령하라고 하신 대로 하지 않고 반석을 지팡이로 쳤다는 이유로 ‘가나안 입성의 기쁨’을 박탈당하는 구절을 썼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지날 때마다 늘 의아합니다. 물을 내라고 명령하는 거나, 반석을 지팡이로 치면서 물을 내라고 하는 게 뭐 그리 다를까 싶었거든요. 그럴 수도 있지 말이에요. 그걸 가지고 그 고생을 해가며 하나님 명령을 따른 모세를 내친다는 게 영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쫀쫀하신 분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건 그저 핑계가 아니었을까, 나이 들어서까지 지도자로 사는 게 어떤 면으로든 덕이 안 되겠다 싶어 핑계를 삼으신 게 아니었나, 그래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퇴장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뭐 그렇게 정리했습니다.


이쯤 되면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월급쟁이로는 천수를 누리고 있는 저 말입니다. 한 직장에서 45년째 근무하는 것도 그렇고, 그저 자리만 채우는 게 아니라 제대로 밥값을 하고 사니 말입니다. 게다가 이루지 못한 꿈으로 접어야 하나 했던 해외 원전 사업도 하지 않습니까.


저는 신나고 좋은 데, 그게 남의 눈에도 그럴까 싶습니다. 언제, 어떻게 손을 놔야 하는 걸까? 갑자기 생각이 많아집니다. 짧아도 5년은 더 일하리라 마음먹고 있었으니 말이지요.


제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늦게까지 친구들과 중창을 했습니다. 친구 아들 결혼식 때 축가도 불렀습니다. 사실 중창 시작하면서 그게 목표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중창을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게 그렇게 좋아 보이지만은 않더군요. 나이 들면 뒤로 좀 빠져 앉지, 나대는 게 보기 흉하다,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봄에 일흔이 되었다는 핑계로 성가대를 그만두었습니다.


성경을 쓰기만 하면 뭐하겠습니까. 쓰기 위해 읽어야 하고, 읽었으면 깨닫는 게 있어야지요. 오늘, 이 글을 쓰게 만드신 이유가 뭘까, 거기까지 나가지는 않더라도 이 글을 읽고 내가 뭘 깨달아야 할까, 이 일만 하고 물러나는 게 옳을까?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집니다.


596814567_25254574494152027_598099379850344871_n.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체코일기 2025.12.04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