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체코일기 2026.01.07 (수)

by 박인식

동료 하나가 일은 잘하는데 발표하는 걸 어려워합니다. 퇴근하면서 나름의 요령을 알려주었습니다. 발표할 내용을 이야기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로 만들면 굳이 발표할 내용을 외우려고 애쓸 필요가 없고, 그러다 보면 덜 긴장하게 되어 편안한 상태로 발표할 수 있을 거라는 거지요. 발표를 어려워하는 건 대부분 긴장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더 중요한 건 발표할 내용이 자신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발표할 사람 스스로가 자신에게 설명하지 못할 말로는 상대도 설득할 수 없으니까요.


저는 발표하는 걸 어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이라면 나름대로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 일이 많기 때문이기는 합니다. 발표 자료도 늘 제가 만듭니다. 제 방식대로 제 흐름을 따라 만들어야 설명이 자연스럽거든요. 이 역시 이야기하듯 줄거리를 만드는데, 그러면 굳이 내용을 외우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이 만든 건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제 거가 되지 않더군요. 그러니 외워야 하고, 외운 걸 잊지 않으려고 긴장하게 되고 그렇습니다.


슬라이드는 키워드 중심으로 가능한 한 간단하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큰 글자를 사용하고 내용을 최소화합니다. 슬라이드는 보라고 만드는 것인데, 읽지도 못할 분량을 적어 놓으면 어쩌겠다는 걸까요.


그런 저도 헤맬 때가 있습니다. 제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 내용을 발표할 때 그렇습니다. 발표 내용에 자신이 없거나 사실과 다르게 설명해야 할 경우에는 말도 버벅대고 진땀도 흘리지요. 그럴 때 몹시 부끄럽습니다.


저는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이나 결정을 바꾸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뀐 걸 설명할 수 있으면 얼마든 바꿔도 되지요. 이는 설명할 수 없다면 바꿔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설명할 때 말도 버벅대고 진땀도 흘리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제대로 발표하지 못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내용을, 자기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을 남에게 설명하고 남을 설득하려 드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거지요. 그러니 그런 일을 할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숙소에 도착할 때쯤 동료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설명하려 들면 버벅대는 게 당연한데, 그걸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버벅대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신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설명하려 드는 게 부끄러운 일이니, 아예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라.”


그런 일을 누군들 하고 싶어 하겠습니까마는, 저도 못 그러고 살았으면서, 이런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저도 참 웃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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