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체코일기 2026.01.09 (금)

by 박인식

아침에 일어나니 빵이 없더군요. 현장에 온 이래 빵과 소시지, 그리고 시리얼로 아침을 해결했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유럽은 어딜 가나 빵 맛이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게 유럽이란 ‘빵이 맛있는 곳’입니다. 체코는 거기에 맥주 하나를 더해야지요.


아무튼, 뒤져보니 감자 몇 알, 양파, 소시지 몇 개, 달걀이 보이더군요. 뒤편에 두부도 한 모 남아있고. 그걸 가지고 뭘 하나 그러다가 ChatGPT를 열었습니다. 있는 게 이거뿐인데 이걸 가지고 뭘 하랴 물어보니 에그 스크램블 만들 듯 다 넣고 만들라네요.


별거 아니다 싶어서 있는 거 다 꺼내놓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감자를 채 써는 게 보기보다 어렵더군요. 감자 먼저 볶고, 거기에 양파도 볶아서 한쪽에 밀어두고 두부를 으깨서 볶았습니다. 다 섞은 후 달걀 풀어서 마무리하고 말이지요. 써놓고 나니 별거 아닌데 그게 왜 그렇게 시간이 걸렸을까요?


아무튼 그렇게 창의적으로 만든 거 하고 시리얼로 아침을 잘 마쳤습니다.


체코 현장에 오기 전에 경주 현장에서 몇 달 일했습니다. 그때는 주말마다 집에 다녀가니 반찬 만들 걱정은 하지 않았고, 더구나 어지간한 식품은 모두 문 앞까지 배달이 되어서 굳이 뭘 만들어 먹을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여러 현장을 다녔으면서도 직접 밥이며 반찬은 만들어 먹는 게 여기가 처음이라는 말이지요.


그러기 시작하면서 유튜브의 위력을 실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은 간 맞추는 게 전부일 텐데, 유튜브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굳이 간을 신경 쓰지 않아도 얼마나 입에 잘 맞던지요. 제가 만들었으면서도 먹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하다 보니 그것도 느는지, 요즘에는 간장 몇 숟갈, 무슨 소스 몇 숟갈 하는 것도 건너뜁니다. 눈대중으로 집어넣어도 맛만 그럴듯하네요. 뭐 어디 요리대회 나갈 것도 아닌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요즘엔 음식 만드는 욕심이 자꾸 생기기까지 합니다. 다른 사람 당번까지 뺏어서 제가 합니다.


아침에 만든 국적 불명의 창의적인 음식으로 도시락을 싸 왔습니다. 맛은 그런대로 해결했는데, 아직 양 조절이 안 됩니다. 모자랄 거 같아 조금씩 추가하다 보면 도저히 한 번에 먹지 못할 만큼 많아지네요. 사실 도시락을 작정하고 싼 건 아니에요. 하다 보니 너무 많아져서 울며 겨자 먹기로 싸 왔는데요. 그런데 말입니다. 식으니까 더 맛있는데요?


오늘 저녁은 제 차례도 아닌데 제가 해야 할까 봅니다. 아까 아내에게서 간단한 국하고 나물 만드는 법을 배웠거든요. 이러다 서울 돌아가서 음식점 차리겠다고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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