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너는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신명기 3장을 지날 때마다 물러설 때를 생각합니다. 물러설 때까지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는 모세조차도 스스로 물러나지는 않았지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눈이 흐리지 않은 상태로 물러날 수 있었으니 큰 은혜이구요.
모 교회 다닐 때 친구들과 약속했습니다. 예순다섯이면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사우디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출석했던 교회에서 그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 그만두려 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비난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예순다섯을 이미 넘긴 분들이 제가 물러나는 걸 반대한 것이지요. 그냥 일흔까지 일한다고 누가 뭐랄 것도 아닌데. 그래서 은퇴가 아니라 사직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귀국해 루터교회에 둥지를 틀면서 성가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미 물러났는데, 앞뒤가 맞지 않은 행동이었습니다. 손님으로 신앙 여정을 마쳐야 하나보다 생각했다가 성가대를 권하길래 어울리고 싶어서 얼른 그러마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면서 내내 찜찜했지요. 스스로 약속을 뒤엎은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일흔 번째 생일에 그만두었습니다.
직장생활이라고 다르겠습니까. 더하면 더하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염치없이 직장인으로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고, 그래서 회사의 부름에 기쁜 마음으로 응했고, 필요하다니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본업을 감당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복도 이런 복이 없지요.
요즘 들어 그게 복이 맞는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물러날 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물론 아직 제가 필요하다고 하고, 맡겨진 일을 감당하고 있고, 그게 또 즐겁기도 합니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상황이지요. 그런데도 내내 편안치가 않습니다. 편안치 않은 게 물러날 때를 놓치고 있기 때문인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