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도 비밀을 지킬 수 없으며 지키지도 않는다. (1994.01)
외삼촌께서 해군에 입대한 후 미군 당국에 발탁되어 미국유학을 다녀오셨다. 지금도 군에서 사병이 발탁되어 유학 가는 경우를 보기 어려운데 하물며 60년대 초 이야기이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학길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미 군함이 있어 그편을 이용해 거의 한달 만에 미국에 도착하셨다. 하루는 뙤약볕이 쏟아지는데 사병 하나가 갑판에서 벌을 받고 있었다. 숟가락 하나로 한 쪽 드럼통에 들어 있는 물을 옆에 있는 드럼통으로 옮기더니 다시 원래 물이 들어 있던 드럼통으로 옮기더란다. 이유인즉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빼앗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거운 벌이라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이 벌 중에 큰 벌이라면, 설령 열매가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내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겠나. (1995.11)
자기 허물이 큰 사람일수록 남의 허물에 민감하다. (1996.04)
천만 원 대가 넘는 고급 음향기기를 집에서 제대로 즐기려면 소리 크기를 한 시 방향이나 두 시 방향 정도로 높여야 한다. 그러자면 적어도 공간이 20평은 되어야 한다. 작은 아파트 거실에서 그것도 위층 아래층 사람에게 폐가 안 되도록 듣는 정도라면 그보다 훨씬 싼 음향기기로 충분히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단지 욕심과 허영심 때문에 자꾸만 최고급품으로 바꾸려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사이에 사람들은 음악 자체를 잊어버린다. (1998.12)
돛단배는 돛을 이용해 앞으로 나가는 배이고, 그러자면 뒷바람이 불어야 한다. 맞바람이 불면 배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나? 그렇지 않다. 돛을 비스듬하게 틀어 놓으면 맞바람이 불 때 비스듬하게 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배는 앞으로 나간다. 그렇게 얼마를 가다가 돛을 반대 방향으로 틀면 이번엔 반대쪽으로 나간다. 말하자면 ‘갈지(之)’자 모양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사람 사는 것도 이와 같다. 뒤에서 불어오는 순풍을 만나거나 앞에서 맞서 부는 역풍을 만나거나 모두 그 바람을 이용해서 전진할 수가 있다.
순풍을 만났을 때는 어느 배든 쉽게 전진한다. 그러니 순풍에서는 우열이 가려지지 않는다. 우열은 역풍을 만났을 때 가려진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역풍에는 그저 뒤로 밀리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역풍을 만났을 때 뒤로 밀리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역풍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항구에 피해 있는 사람과 이와 같이 그 역풍을 이용해 오히려 전진하는 사람 사이에 비로소 우열이 가려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순풍도 역풍도 불지 않은 평온한 때이다. 순풍은 순풍대로 역풍은 역풍대로 이용해 전진할 수 있지만 무풍 상태에 놓이면 꼼짝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저 무풍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그 상태가 목표를 향해 도무지 전진할 방법이 없는 절박한 상황임에도 그를 깨닫지 못하고 그 상태를 오히려 평안한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를 망치는 것은 역풍이 아니라 무풍인 셈이다. 그러니 무풍은 평안함이 아니라 우리를 망치는 것이고, 역풍은 고난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할 조건이다. (2003.01)
오해가 일어났다면 오해할만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해할만한 상황이라고 누구든 오해를 받는 건 아니다. 오해가 일어났다는 건 오해한 상황이 진실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니, 결국 오해를 받은 사람이 상대에게 그만큼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오해를 받아 요 며칠 마음이 불편한 채로 지낸다. 한두 해도 아니고 근 7~8년을 함께 지내온데다 그것도 자식뻘이나 되는 친구들이니 붙들고 사실이 이러저러하다 설명하기도 망설여진다. 더구나 그렇게 오랫동안 보아왔으면서도 오해할 정도라면 내게 대한 믿음도 없을 테니 설명을 한다고 믿어주겠나 싶다. 억울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오해하게 된데 대한 책임도 없다 할 수 없어 그냥 오해가 풀어지기만 기다리고 있다.
결국 사실은 사실대로 드러날 것이다. 사실이 드러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오해받은 채로 지낸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2004.09)
누군가로부터 모함을 받았거나 오해를 받았다면 누구든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는 것으로 자기를 변호하려한다. 그런데 그런 설명으로 자기 결백을 인정받는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모함이나 오해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얻지 못했는데 거기에 무슨 이야기를 한들 만족할만한 설명이 되겠나. 그렇기 때문에 설명을 하면 할수록 사안은 본질에서 더욱 멀어지고 결과는 꼬이게 마련이다. 그럴 때는 그런 유혹을 빨리 떨쳐버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에 대응하지 않으면 잠시 동안은 오해가 증폭될 수 있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이니 얼마 가지 않아 그 정도가 수그러지게 마련이다. 그러고 나서 자기 행동으로 자기를 변호하는 게 지혜로운 길이다. 그러나 그것도 서둘러서 될 일은 아니다. 서두르다 보면 몸짓이 필요 이상 커지고 그것은 또 다른 오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04.10)
도장에서 운동을 끝내고 몸을 씻을 때 그렇게 상쾌한 줄 알면서도 도장에 갈 시간이 되어 기쁜 마음으로 선뜻 사무실을 나선 경우는 몇 번 되지 않는다. 불과 한 시간 후면 상쾌함을 맛볼 수 있고 운동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줄 뻔히 알면서도 매번 망설여진다. 그 작은 고단함 때문에 말이다. 살아가면서 작은 수고 뒤에 얻는 큰 기쁨을 이와 같은 게으름으로, 어리석음으로 놓치는 일이 무수히도 많다. 분명히 작은 수고 뒤에 큰 기쁨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 말이다. (2004.10)
대산공업단지에 출장 가서 그곳 직원과 함께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화제가 사택으로 옮아갔다. 사택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불편한 점도 적지 않을 것 같아서 지내기가 어떤지 물어보았다. 퇴근해도 퇴근한 것 같지 않고 도대체 회사에 있는 건지 집에 있는 건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현장에서 오래 지내봐서 그 말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돈은 좀 모으지 않았겠나 싶어 물었더니 전혀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밖에서 살면 전세값 올려주느라 힘들고 집을 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그래도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이 있는데, 사택에서 살다보니 그런 걱정이 없고 그러다보니 절박하게 돈을 모으게 되지 않더라고 했다. 입사해서 이십 년 가까이 사택에 살면서 돈도 모으지 못하고 오히려 씀씀이만 커졌다고 했다.
물론 사람 나름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며 전세값이나 집을 살만큼 돈을 모은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전세값 올려주려고, 집 사려고 빚을 내면 어떻게 해서든 그 빚을 갚게 되지만 그러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모은다는 건 어지간한 결심이 서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편한 게 끝까지 편한 것만은 아니고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 없는 것만이 좋은 것도 아니다.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세상 사는 이치가 그렇다. (2004.11)
요즘 살을 빼려고 권투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단다. 살을 빼려고 권투를 하겠다고 하면 처음 두어 달은 살 뺄 생각은 말고 체력운동만 하라고 한단다. 체력을 길러야 살을 빼는 데 필요한 운동을 감당할 수 있으니 말이다. 기초는 대개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기초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바라던 것을 이룰 수가 없다. 기초를 먼저 세우는 일, 그것이 바른 순서이다. (2004.12)
과속감시카메라 위치를 알려주는 GPS 값이 과속벌금 두어 번 낼 정도까지 떨어졌다. 과속벌금을 적지 않게 낸 내게는 매우 유용하고 경제적인 도구이기는 하지만 망설임 끝에 차에 달지 않기로 했다. GPS를 달면 감시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과속을 하게 될 텐데, 그것이 법을 어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05.01)
운동을 하다 보면 싫증도 나고 애를 써도 도무지 기량이 늘지 않아 그만 두고 싶을 때가 있다. 그걸 이기겠다고 더 열중하기도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보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슬럼프라는 생각이 들 때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냥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되더라. 정 하기 싫으면 중간 중간 빼먹기도 하고, 운동하다 주저앉아 쉬기도 하고, 요령도 피워가면서 말이다. 그저 시간만 때운다는 생각으로라도 그만 두지만 않으면 얼마 가지 않아 언제 빠져나왔는지도 모르게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더라. 마치 언제인지도 모르게 슬럼프에 빠졌던 것처럼. (2005.02)
세월이 흐를수록 세상이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일은 이제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것이 옳은 것으로조차 비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적과 동지가 이렇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건 혹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2005.05)
차를 사려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차에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할 때 흔히 기름 값이라던가 세금, 보험료 정도만 따진다. 물론 차에 직접 들어가는 비용은 그게 전부이기는 하다. 그러나 차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이런 짐작을 훨씬 뛰어 넘는다. 차를 사려는 사람 대부분은 차를 가지게 되면 생활방식이 바뀐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처음에야 기름 한 방울이라도 아끼려고 이리 재고 저리 재서 차를 쓰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차가 가지고 있는 이동성에 취해 자기도 모르게 생활방식이 바뀐다. 외식을 하더라도 걸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차를 가지고 갈 수 있는 곳을 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외식비도 늘게 마련이다. 하다못해 생필품 하나를 사도 대형 할인점을 찾게 되는데 그곳에 가면 꼭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차로 인해 생활방식이 바뀌어 들어가는 비용이 차에 들어가는 직접적인 비용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생각하지 않았던 비용이니 당연히 가계에 주름살이 지게 마련인데, 그 비용이 워낙 크다보니 그저 가계에 주름살이 지는 정도로 그치지 않고 근본적으로 가계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예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05.06)
길이 막힌다고 해서 차선을 이리저리 바꾼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막힌 곳을 다 빠져 나가고 보면 그저 묵묵히 한 차선으로 가는 것이 결국은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사노라면 길이 막히는 일을 수없이 겪는데 그때마다 길을 바꾸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당장은 그게 더딘 것 같아 보여도 결국은 한 길을 꾸준히 가는 사람을 앞지를 수 없는 게 세상 이치다. 그리고 그 결국이라는 게 꼭 기다리기 힘들만큼 멀리 있기만 한 것도 아니다. (2006.01)
실력 없는 사람도 운이 좋으면 성공하기도 하고 자기관리에 아랑곳 않는 저급한 인간도 때를 만나면 활개를 치고 다니기도 한다. 인간세상이라는 게 워낙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 어쩌겠나. 하지만 장기적으로 성공을 유지하는 건 운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성공을 뒷받침하는 실력과 엄격한 자기관리 없이는 그 성공을 유지할 수 없는 것도 인간세상이 생겨 먹은 모습이다. (2006.01)
광고에 사용하는 음악은 대개 7초 내외이고 길어야 15초를 넘지 않는다. 그 짧은 음악을 고르기 위해 적어도 1,000곡, 많으면 10,000곡 가까운 노래를 듣는다고 한다. 그저 가볍게 흘려듣는 이들의 관심을 잠깐이라도 붙들어두기 위해 이렇게 엄청난 노력을 쏟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백조가 우아하게 물에 떠있기 위해서 물밑에서는 잠시도 쉬지 않고 발을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물밑에서 끊임없이 발을 움직이는 일이 어디 이것뿐일까. 건강하게 성장하는 기업으로 남아있기 위해 쏟아 붓는 노력은 얼마이겠으며 아가씨들이 멋진 몸매를 뽐내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얼마나 처절한 것일까. 그러고 보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나 싶다. (2006.05)
함께 일을 하는 협력사 사장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평상시에 상황이 바뀌면 망설이지 않고 생각을 바꾸는 사람이어서 과연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을 바꾸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가지거나 미안해하는지 궁금했는데, 자기도 그런 순간이 그렇게 부끄럽고 때로는 겁이 난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옳지 않은 길인 줄 알면서도 선택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사장 자리에 있는 건지 아니면 사장 자리에 있어서 그런 건지 물었다. 망설이지 않고 사장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는 그동안 그 사람이 보여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2006.05)
사람이 아무리 못 돼먹었다 해도 대부분은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양식은 갖추고 산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사는 사람도 자기가 한 거짓말이 드러나면 얼굴이 붉어지거나 부끄러운 줄은 안다. 자기가 한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번복하는 사람도 속으로는 몹시 불편해 한다. 그런데 거짓말이 드러나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기가 한 약속을 번복하고도 미안해하거나 불편해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 부끄럽고 불편해도 자존심 때문에 겉으로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상식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사람을 이해하기가 몹시 어렵다. 그저 “종자가 다른 인간이 있는 모양이다” 하고 넘어갈 수밖에. (2006.06)
지난 한 주일동안 인천에 환경관련 법정교육을 받게 되면서 통근버스를 이용했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이니 그 시간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첫날은 그런대로 책도 읽고 바깥 경치도 살피고 했다. 다음날 자리에 앉으니 슬며시 잠이 밀려왔다. 졸다 보니 이미 교육원에 도착했고 손에 든 책은 한 페이지를 미처 넘기지 못했다. 그 후로 내내 그랬다. 대중교통에서 자리에 앉기만 하면 으레 잠을 청하는 이들을 보면 그 귀한 시간을 저렇게 어이없이 보내나 하면서 혀를 차기도 했는데 불과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내가 그 모습이 되어 있었다. (2006.10)
같은 구역에 사시는 집사님께서 입원하셔서 아내가 며칠 병상을 지키면서 몹시 고단해하기에 그만 일에 뭘 그리 힘들어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정작 자기가 입원했을 때는 몰랐는데 성한 사람으로 병상을 지키다보니 하루 종일 아픈 사람들만 보면서 지내는 일이 무척 고단한 줄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의사는 돈을 많이 받아야 하는 모양이다. (2007.06)
어린애들은 자기가 바라는 것과 현실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지도 않은 일,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천연덕스럽게 자기가 한 것처럼, 자기가 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자기가 바라는 것과 현실이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되면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요즘 학력을 속인 일로 나라 전체가 뒤숭숭하다. 어쩌다 보니 주로 문화계 인사들이 그런 대상으로 오르내리는데, 혹시 문화계에서 종사하다보니 어린애처럼 마음이 천진난만해서 자기가 바라는 것과 현실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그러니 그렇게 천진난만한 수준에 머물러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계를 맡기는 일이 왜 염려스럽지 않겠나.
이번에 허위 학력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람 중 하나는 자기는 그렇게 이야기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자기에게 책임을 묻는 게 억울하다고 했다. 자기가 사과해야 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피해자라고 강변했다는 말도 들린다. 어느 기관에선가 그를 임용할 때 자기는 대학을 다닌 일이 없다고 이야기했다고도 했고, 또 그 일이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그가 사과할 일이 없을까? 자기가 속인 건 아니라 해도 허위 학력으로 이익을 얻은 게 있다면 그에 대해 책임지는 태도가 마땅하지 않을까? 자기는 그것 때문에 이익을 얻은 일이 없다고 강변할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그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만큼 자기에게 떳떳할까? 차라리 “내 스스로 그렇게 이야기 한 일은 없지만, 남들이 필요에 따라 나를 그렇게 만들어가기는 했지만, 그러다보니 그런 대우를 받는 게 싫지 않았고 때로는 내 스스로 정말 그런 것처럼 착각하기도 했다. 억울한 면이 없지는 않으나 내게도 그 잘못에 일단의 책임이 있노라”라고 털어 놓는 건 어떨까? 국민들이 바보가 아닌데 그 정도 옥석도 구별하지 못하겠나. (2007.08)
앞차 뒤꽁무니를 쫓아가다보면 도로의 흐름을 읽지 못해 브레이크를 자주 밟게 된다. 브레이크를 자주 밟으면 승차감만 나빠지는 게 아니라 연료도 많이 소모된다. 브레이크를 덜 밟으려면 눈을 멀리 들어 도로 전체 흐름을 살펴야 한다.
사람 사는 이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삶 전체를 긴 안목으로 살피지 못하면 마치 자주 브레이크를 밟는 것처럼 불끈불끈 못된 성정이 고개를 들게 마련이고, 못된 성정이 솟구치는 본인이나 그 못된 성정을 당해내야 하는 상대방이 모두 고단할 수밖에 없다. 긴 안목으로 살피면 굳이 브레이크를 자주 밟아 제 신세 제가 들볶다 못해 남까지 고달프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인데. (2008.04)
선택한다는 것은 선택한 것 이외의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선택할 때 그 선택 때문에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막상 그 포기가 현실로 나타났을 때 그 상실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 포기해야 할 것이 커 보인다고 해서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로 인한 마음의 공허함은 선택의 대가로 감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게까지 각오해도 포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2010.03)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걸 인정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세상에는 의지나 열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일이 많으니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말이다. (2010.04)
2002년 우리 축구가 세계 4강까지 올랐지만 그 이후로 별 신통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원인 중 가장 공감 가는 것이 바로 전문 수비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어렸을 때부터 전문 수비수로 키워지는 선수가 없다고 한다. 선수라면 누구든 공격수로 나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받기를 좋아하지 빛도 나지 않고 실점을 하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수비수 자리를 지키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대학에서나 구단에서 선수를 뽑을 때 쓸 만한 선수들은 모두 공격수뿐이고 국가대표를 구성할 때도 공격수를 수비수로 전환하여 사용해야할 만큼 전문 수비수를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축구 문제만은 아니다. 빛나는 자리가 있으면 그늘에서 묵묵히 뒷바라지해야하는 자리가 있게 마련인데 모두들 빛나는 자리만 연연하고 있으니 축구인들 제대로 된 승리를 거둘 수 있겠으며 사회인들 온전한 구성을 이루어갈 수 있겠나. 따지고 보면 이렇게 개탄할 자격도 없다. 내 스스로도 내 자신 뿐만 아니라 내 자식 또한 그늘에서 묵묵히 자기 몫을 감당하고 있기보다는 빛나는 자리에 서기를 원하고 있지 않나. 그러면서 누군가 그늘에서 묵묵히 자기 몫을 감당하기를 바라고 있으니 이 어찌 도둑 심보가 아닐까. (2011.01)
평판이란 일한 결과로 얻는 것이지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남이 자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신경 쓰지 말고 그저 자기 일에 충실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기대 이상의 평판이 돌아오게 마련이다. (2012.12)
나와 다른 의견은 귀담아 들을 일이지 거기에 매어있거나 끌려 다닐 일이 아니다. 나에게 대한 비난 또한 마찬가지다. (2013.03)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실망하기 싫으면 그에 대한 기대를 접으면 된다. (2014.01)
어려운 집 아이들이 자기 아이들 다니는 중학교에 배정되었다고 이를 취소하라고 학부모들이 데모를 했단다. 막무가내인 사람들은 아닐 테니 이유가 있을 테고 그 이유가 짐작가지 않는 것도 아니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마는, 그래도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입 밖에 낼 수 있을까?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는 법인데. 게다가 그 또래 자식도 두었을 텐데 말이지. 세상에 왜 이렇게 염치없는 사람들이 많은가. 하긴 염치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면 최소한 그런 말을 뱉지 않고 살 것인데. (201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