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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Feb 10. 2021

[사우디 이야기 34] 외국인근로자

사우디 이야기 (34)

이곳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산다. 헤아려보니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국적이 무려 15개국이나 된다. 우리 회사가 사우디-한국-미국 합작법인이니 우선 3개국이고. 가까이에는 레바논ㆍ요르단ㆍ시리아ㆍ팔레스타인ㆍ예멘, 홍해 건너서 이집트ㆍ수단ㆍ에티오피아, 조금 떨어져서 인도ㆍ파키스탄ㆍ방글라데시ㆍ필리핀까지. 가히 다국적군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거기에 현장에서 함께 일한 협력회사는 싱가포르ㆍ말레이시아 출신들이고, 우리를 담당하던 사업관리단은 미국인 중심이었지만 영국ㆍ아일랜드 출신까지 있었다. 그러니 부임해서 만난 사람들 국적이 20개 남짓 되는 셈이다.


사우디에 외국인근로자가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석유가 발견되고 나서부터이다. 처음에는 유럽에서 석유개발과 관련한 기술자나 전문직이 유입되었고 뒤이어 동남아에서 비숙련근로자나 가사근로자가 유입되어 궂은일을 맡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 아랍국가에서 일자리를 찾아 엄청난 인원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전체 인구의 1/3을 훌쩍 넘는다. 외국인 대다수가 취업 목적으로 유입된 것이고 게다가 저임금근로자들은 아예 가족동반을 허용하지 않으니 자연히 남성 위주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외국인 인구 1260만 명 중 여성은 채 400만 명이 안 된다.


이미 옛말이 되었지만 석유의 위세는 정말 대단했다. 사우디 정부는 그 위세에 취해 자국민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보다는 그때그때 필요한 인력을 수입해 충당하는 길을 택했다. 필요한 인력은 언제든 조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우디라고 하면 대체로 부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한국보다 소득이 뒤쳐진지 이미 오래 되었고, 그나마 부유함도 일부 특권층에 편중되어 있어 가난한 국민들이 생각보다 많다. 가난한데다가 역량이 갖춰지지 않았다면 궂은일이라도 해야 하는데 사우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리자가 되기를 꿈꾸지 그런 자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 취업자가 자국민을 넘어서는 걸 지나서 오히려 압도하기에 이른다. (2018년 통계청 자료; 전체 취업자 1,254만 명 중 내국인 311만 명, 외국인 943만 명)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Financial Times, 2020 July>


사우디 통계청에서는 외국인근로자 중에서 가사근로자를 따로 분류해 통계를 낸다. 2018년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취업자 943만 명 중 가사근로자가 246만 명에 이르는데 이 중 가정운전기사가 150만 명(여성운전을 허용한 이면에 이런 경제적인 이유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가사도우미가 80만 명 정도이다. (일반 외국인근로자 697만 명 중 여성근로자는 24만 명) 가사도우미 중에는 필리핀ㆍ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이곳에서는 대체로 가사도우미를 하녀 정도로 여긴다. 그러다 보니 가사도우미와 같은 국적의 남성들도 사회에서 대체로 그 정도 대우 밖에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중동에 근로자를 내보낼 때 가사도우미도 함께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대통령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현재 사우디에서 한국인의 위상은 매우 높은 편이다. 만약 당시에 가사도우미를 보냈다면 한국인의 위상은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 신문에도 중동에서 일어나는 가사도우미 학대 기사가 심심치 않게 실리지만, 이곳에서 가사도우미의 위상은 우리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낮다. 이곳 언론에 보도되는 가사도우미 학대 기사를 보면 하녀만큼도 대우하지 않는다. 성폭행과 구타가 비일비재할 정도로 인권은 무시되고, 살해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1년과 2015년에 그런 폭력을 견디다 못한 인도네시아 가사도우미가 고용주 가족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는데, 사우디 법원은 원인은 살피지 않고 죄만 물어 참수형을 처함으로서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2018년에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고용주를 둔기로 살해해 사형을 선고받은 인도네시아 가사도우미가 참수형을 앞두고 있자 자국 정부가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그런데도 사우디 정부는 가사도우미를 참수했고, 인도네시아 정부에서는 한동안 가사도우미 송출을 중단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사도우미 송출을 재개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2월 8일 성명을 통해 “인권보호와 투명성 강화를 목표로 개인신분법, 민사거래법, 임의선고에 대한 형법, 증거법 등 4가지 법안을 곧 공포할 것이며, 명확한 법적 기준이 없어 피해를 받았던 개인들, 특히 여성들이 해당 법안의 시행으로 더 이상 피해 받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우디 인권문제를 압박하고 나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린 조치이기는 하지만, 과연 이것이 외국인근로자까지도 포함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시대의 흐름으로 보아 이 대상에서 외국인근로자를 배제하거나 되돌리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그런 조치로 취약계층인 가사근로자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대우를 받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아무튼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가사도우미 송출을 재개한 것은 그들의 송금 규모가 자국 외화수입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은행(World Bank)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사우디에서 외국인근로자가 본국으로 보낸 송금액이 무려 380억 달러였다. 2017년 외국인에게 부양가족세를 부과하는 통에 100만 명을 훨씬 넘는 외국인이 떠났음에도 2020년에는 송금액 규모가 오히려 400억 달러 규모로 증가하였는데, 이는 같은 해 사우디 정부 예산 2,700억 달러의 15%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느 나라건 자국민의 인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고 해도 쉽사리 인력 송출을 중단하기 어렵다. 같은 이유로 사우디 정부에서는 자국민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외국인근로자 취업조건을 더욱 까다롭게 하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


사우디 인적자원부가 발표한 2021년 최저임금은 월 120만 원이다. 사우디 정부는 오래 전부터 자국민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자국민 의무고용정책(Saudization)을 실시해오고 있다. 이에 따르면 사우디 취업자 월급이 120만 원에 미치지 못할 경우 비록 한 사람을 고용했더라도 이를 0.5인으로밖에 인정하지 않는다. 최저급여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고용의무비율을 맞추기 위해 오히려 비용이 더 커지도록 설계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외국인근로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앞서 설명한 것 같이 외국인근로자 상당수는 비숙련근로자나 저임금근로자이다. 최근 몇 년 메디나에서 폐기물 정책수립에 관한 용역을 수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쓰레기수거원이나 청소부의 월급이 채 15만 원이 되지 않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랐다. (숙식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차마 숙소라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우리 회사에서 얼마 전까지 일하던 50대 필리핀 운전기사는 월급이 60만 원, 사무실 청소하고 커피 심부름을 하는 방글라데시 직원은 월급이 30만 원 수준이다.


UN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사우디에서 일하는 외국인근로자는 인도가 189만으로 가장 많고 인도네시아(129만), 파키스탄(112만), 방글라데시(97만), 이집트(73만), 시리아(62만), 예멘(58만), 필리핀(49만)이 뒤를 잇는다. 이것은 비자를 받고 정식으로 입국한 사람들의 자료인 것으로 보이고, 성지순례에 참여했다가 이탈한 사람들이나 전쟁난민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막이나 광야를 건너 무단으로 사우디로 월경한 예멘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The Yemen Review는 2020년 9월 기사에서 예멘 700만 명 인구 중 사우디에 200만 명이 거주하는데 이들이 송금한 것으로 자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생활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예멘 근로자는 100~150만 명을 쉽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월급은 대체로 60~75만 원을 넘지 않고 생활비로 쓰는 돈보다 송금액이 더 크다.


나라가 잘 살고 못 사는데 따라서 사람을 달리 대접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출신국가가 개인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인원이 많다면 국가별로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에 집단적으로 대응할 만도 한데 그런 모습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지금까지 지내면서 들은 것이라고는 필리핀의 OFW(Overseas Filipino Worker) 뿐이다. 물론 일체의 집단행동을 금하는 왕정국가이니 조심스럽기는 하겠지만 자국민끼리 협력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유난하게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편이어서 자료가 필요할 때마다 아주 애를 먹는다. 어디를 가든 인도사람은 있게 마련이어서 동료 인도 직원들에게 협력을 요청해보라고 해도 도무지 해결하지 못한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게 우리 직원의 문제가 아니더라. 한국인끼리는 그저 같은 국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쉽게 협력하는데, 자국민이 수십만 수백만 되는 나라들은 잘 만나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숫자가 작은 나라 사람들은 서로 협력을 하는데 말이다. 숫자가 작은 나라 사람들은 우리를 포함해 미주나 유럽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렇다면 그건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수준의 문제는 아닌 건지 모르겠다.


이곳에서는 나라의 등급이 나눠져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 순전히 내 주관적인 느낌에 지나지 않지만 그동안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나눠보자면, 선두로는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협력체 6개국과 미국 그리고 유럽선진국 정도, 다음으로는 중동국가로는 레바논ㆍ요르단 아시아국가로는 한중일 삼국을 꼽을 수 있고, 여기에 들지 않은 국가들은 다 고만고만한 대접을 받는다. 중국은 최근 들어 물량공세로 나와서 그렇지 사회적 인지도는 아직 우리와 같은 수준으로 보기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 일본 기업이나 일본인의 활동은 좀처럼 확인하기 어렵다. 활동이 적은 것인지 물밑으로 움직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다 보니 내심 우리나라가 선두 그룹에 속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근거 없는 막연한 느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2009년 부임한 이래 지금까지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일은 없었다. 발주처에서는 기술수준이 앞선 나라로, 우리 선배들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근면 성실하고 약속을 지키는 나라로, 요즘 젊은이들은 K팝과 드라마의 나라로 여겨서 모두들 환대에 가까운 모습으로 한국인들을 대한다. 얼마 전 코로나 백신 접종 받을 때 진행요원인 사우디 아가씨 하나가 내 신분증을 보더니 정확한 우리말 발음으로 “한국분이세요?” 하고 물어서 놀랍고 신기해했던 일도 있었다. 한국제품은 모두 고급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운전하다 보면 언제든 시야에 한국자동차가 서너 대는 들어온다. 나는 그저 한국에서 일하는 방식으로 일해오고 있을 뿐인데 그 방식이 내가 출입하는 발주처에서는 ‘코리언 스타일’이라는 브랜드가 되었다.


아, 그런데 외국인근로자 이야기가 어쩌다 이렇게 국뽕이 차오르는 이야기로 전개되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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