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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Feb 19. 2021

[사우디 이야기 35] 세금

사우디 이야기 (35)

사우디에 부임하면서 덕본 것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곳에 소득세가 없다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본사에서 사우디 현지법인으로 이직한 것이니 소득세가 없는 사우디 세법을 적용받게 된 것이다. 퇴직할 날도 멀지 않았고 이미 세금이 만만치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것이 노후를 준비하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시중에 외국인 근로자에게 소득세를 매기겠다는 루머가 돌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외국인에게 과세할 계획이 없고 내국인에 대해서는 그런 루머조차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사우디에서 근무하는 모든 한국인이 나처럼 사우디 세법을 적용받는 건 아니다. 사우디에서 근무한다고 해도 한국에 있는 본사소속 직원으로 현지에 파견 나온 상태라면 한국 세법의 적용을 받는다. 소득의 원천이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우디 현지법인에 소속된 모든 한국인이 사우디 세법을 적용받느냐? 그렇지는 않다. 이 경우에는 근로자의 생활근거가 어디인지, 즉 ‘어느 나라 거주자’*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한국과 사우디는 조세조약을 맺고 있어서 나와 같은 이중거주자는 ‘항구적 주거를 두고 있는 나라’, 즉 ‘인적ㆍ경제적 관계가 더 밀접한 나라’가 어디인지 살펴서 그 나라 거주자로 판단해 해당 세법을 적용한다. 사우디에는 소득세가 없으니 사우디 국세청에서 과세 목적으로 내가 ‘어느 나라 거주자’인지 구별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이와 관련해서는 한국 국세청의 판단만 의미가 있다.


만약 근로자가 한국 국세청에서 규정한 ‘국내거주자’에 해당한다면 외국에서 올린 소득도 한국에 세금을 내야 한다. 이때 ‘국내거주자’란 국내에 ‘주소’가 있거나 2과세기간(2년)에 걸쳐 183일 이상 한국에 체류하는 사람을 말한다. (2014년까지는 2년 동안 12개월 이상 체류해야 ‘국내거주자’로 분류했는데 이제는 6개월 이상 체류하면 국내거주자로 분류한다. 소득세가 없는 사우디에서 근무할 경우는 과세기준이 강화된 셈이지만, 소득세가 한국보다 높은 곳에서 근무할 경우는 오히려 완화된 셈이다.)


그런데 ‘주소’라는 개념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주소는 ‘생활 근거지’를 뜻하는 것으로 주민등록과는 무관하다. ‘생활 근거지’는 국내에서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이 있는지, 국내에 소재하는 재산이 있는지와 같이 생활관계를 나타내는 객관적 사실에 따라 판단한다. 워낙 경우의 수가 많아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사우디 현지법인에서 근무하는 본인과 가족이 모두 사우디에 거주하면 주소가 사우디인 것이고, 본인만 사우디에 거주하고 가족은 모두 한국에 거주하면 주소가 한국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족이라야 아내뿐인데 이곳에서 같이 거주하고 있으니 사우디 거주자이고, 그래서 지금까지 현지법인으로 소속이 변경된 이후 소득세를 내지 않고 있으며, 한국으로 송금한 돈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 받지 않았다. 가족이 모두 한국에 있고 본인만 사우디에 거주하는 경우는 2년에 걸쳐 183일 이상 한국에 체류하는 게 실질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니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에 소득세를 내야 한다. 공교롭게도 내 주변에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어 실제로 소득세가 과세되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해외근로자가 한국에 있는 은행계좌에 송금한 내역은 있는데 오랫동안 소득세를 내지 않았을 경우 국세청에서 소득세를 추정해 부과하기도 한단다. 그런 경우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앞에 언급한 기준으로 소명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우디에서 일하는 외국인근로자의 해외송금액이 2020년의 경우 400억 달러에 달했다. 사우디 예산의 15%에 해당하는 큰돈이니 그렇지 않아도 유가가 떨어져 재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우디 정부로서 소득세를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내국인은 과세하지 않고 외국인만 과세할 경우 형평성이 문제가 되고, 내국인에게도 과세하자니 평생 세금이란 걸 모르고 산 국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어서 소득세 도입을 망설이는 게 아닐까 짐작한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근로자 해외송금액에 수수료(라고 쓰고 세금이라고 읽는다)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런 방안을 검토한다는 발표가 난 건 아니고, 그런 걸 검토한 일이 없다는 발표만 났다. 운을 띄워보니 시기상조라고 생각해서 거둬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외국인근로자에게든 모든 근로자에게든 소득세를 걷게 되지 않을까 싶다.


사우디 정부는 그동안 내외국민을 막론하고 전기요금ㆍ수도요금ㆍ유류대와 같은 에너지비용에 대해 싼값으로 원유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상당한 보조금을 지급해왔고, 그래서 에너지비용을 세계 최저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휘발유는 물론이고 전기는 대부분 원유화력발전으로 생산하고, 전체 상수도 공급량의 50%를 석유로 운전하는 담수화공장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원유공급가격이 원가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정부 곳간이 넉넉할 때 시작된 일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저유가 때문에 최근 들어 에너지생산시설에 공급하는 보조금을 대폭 줄이고 있다. 그 결과 2009년 부임할 때 리터당 130원 남짓하던 휘발유 값은 지금 480원으로 네 배 가까이 올랐고, 전기요금은 열 배 넘게 오른 곳도 있고, 수도요금도 다르지 않다. 결국 국민으로서는 그만큼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셈이다.


우리 회사에서는 오래 전부터 쓰레기소각장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이용해 발전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재정사업으로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것으로 판단해 민간투자사업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사업의 성패는 쓰레기 배출자에게서 그 비용을 어떻게 회수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래서 전기요금에 일정 비율로 쓰레기처리비를 추가해 징수하는 방안을 만들어 사우디전력공사 경영진에게 제안한 일이 있었다. 쓰레기발생량이 대체로 전기사용량에 비례하고, 소각장 폐열로 발전한 전기가 신재생에너지로 분류되어 사우디전력공사의 의무발전량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협상은 단번에 결렬되었다. 얼마 후에 전국 쓰레기 종합처리계획을 자문하고 있던 월드뱅크 관계자를 만나 그 이야기를 하니 그렇지 않아도 각종 세금이 생겨나고 보조금도 줄어들어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에 있어 누구도 거기에 부담을 추가할 생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거절했을 것이라고 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저유가로 걸프 산유국들이 재정난에 처하자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부가가치세 도입을 권고하고 나섰고 2016년 6월에 GCC 6개국이 부가가치세 도입에 합의했다. GCC 6개국은 이미 실질적인 경제공동체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그 중 어느 하나라도 합의를 깨고 부가가치세를 부과하지 않을 경우 무역수지가 급속하게 그 나라로 쏠리게 되므로 무엇보다 상호간의 합의가 중요했다. 2017년 1월 이 합의를 바탕으로 사우디 내각에서 2018년 1월부터 5% 부가가치세를 적용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계획대로 2018년 1월부터 부가가치세를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주변국 누구도 이에 대해 경험한 바가 없었고, 세금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며, 사우디정부에서 수립한 정책이 제때 적용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당시 각종 금융회사에서 개최하는 부가가치세 설명회나 정부의 교육 프로그램이 무척 많았고 우리도 적지 않게 쫓아다녔다. 그러나 많은 문제가 있었음에도 사우디 정부에서는 당초 계획한 대로 2018년 1월부터 이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부가가치세 도입을 서두르는 사우디 정부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돌이켜보니 한 해를 늦출 때 포기해야하는 세금이 무시하기에는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꼬박 한 해 넘게 우여곡절을 치른 끝에 5% 부가가치세가 적용되었는데, 그때로부터 불과 2년 정도 지나고 나서 코로나 신규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모든 경제활동이 얼어붙자 2020년 5월 사우디 정부는 이를 15%로 3배나 인상하겠다는 충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불과 두 달 후인 7월부터 이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경제계에서 제대로 논의 한 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금을 무려 3배나 올렸으니 큰 파장이 일어나는 것이 불 보듯 뻔했지만, 당시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통행금지가 시행되고 있을 때여서 결과적으로 누구하나 입도 한 번 뻥긋하지 못하고 당한 셈이 되었다. 한국 같으면 경천동지할 일인데 내각 결정 하나로 끝내버렸다. (GCC 6개국 중 사우디만 15%이고 나머지는 그대로 5%를 유지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2017년에는 국민건강증진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우기는 했지만 내각 결정 하나로 탄산음료ㆍ에너지드링크ㆍ담배에 죄악세(sin tax)를 신설해 하루아침에 가격이 2배가 되었다. 부가가치세를 5%에서 15%로 인상한다고 발표하던 날 식품에 대한 수입관세도 평균 10% 정도 인상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발표했다. 결국 수입식품의 경우 부가가치세 10%ㆍ관세 10%가 한꺼번에 추가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장바구니 물가는 10년 전에 비해 두 배쯤 되었다. 예전에는 슈퍼마켓의 카트 하나 채우는데 10만 원도 되지 않았는데 요즘은 15만 원으로도 채우기 어렵다. 물론 물가 자체도 적지 않게 올랐지만, 그보다는 세금이 물가인상의 주된 원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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