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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r 07. 2021

[사우디 이야기 37] 관광

사우디 이야기 (37)

왕세자가 세계 최첨단 스마트 도시인 네옴(Neom)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이래로 사우디에는 관광 열풍이 불고 있다. 네옴은 실리콘밸리ㆍ할리우드ㆍ프랑스의 세계적인 휴양지 코트드쥐르를 합해놓은 개념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위락ㆍ휴양 도시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닌가 싶다. 사업 참여자를 위한 시설이기는 해도 공항도 이미 문을 열었고 이미 공정이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고대도시의 유적인 알울라(Al Ula)도 2019년 12월 개막축제가 열렸다. 네옴 남쪽으로 해안 200km를 개발해 호텔 수십 개를 짓는 홍해개발사업도 이미 착공되었다. 계획보다 조금씩 늦어지기는 했어도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며칠 전에는 사우디 국부펀드에서 홍해 남쪽 아시르지역 관광개발을 위해 30억 달러를 들여 Soudah Development Company를 설립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재 네옴ㆍ알울라ㆍ홍해개발ㆍ키디야로 이어지던 관광개발사업이 아시르까지 이어진 것인데 보도에 따르면 그것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고 한다.


시설만 잘 갖춰놓는다고 관광객이 오는 건 아니니 관광객이 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래서 도무지 열 것 같지 않던 국경을 사우디 정부가 어느 하루아침에 활짝 열어젖혔다. 비자 얻기 어렵기로 악명 높던 나라가 전자비자를 허용해 온라인에서 즉각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관광객에 한한 것이기는 하지만 여성의 아바야 착용 의무도 풀어버렸다. (요즘에는 관광객이 아닌데도 아바야를 입지 않은 여성이 상당히 많아졌다. 아내도 그렇고, 우리 교민 여성 대부분이 아바야를 입지 않는다.)


이와 같은 개발사업이나 획기적인 개방조치는 모두 국가개조사업인 Vision 2030의 일환으로 실질적으로 왕세자가 이 모든 계획을 주도하고 있다. 물론 사우디로서는 원유 수요가 오일셰일이나 셰일가스로 대체된 것이나 탄소저감 때문에 그동안 누렸던 산유국으로서의 위상이나 영향력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져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는 하다. 그래서 이와 병행해 외국기업의 중동지역본부를 사우디로 이전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고, 그들을 유치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겉으로는 관광사업만 크게 부각되고 있을 뿐 다른 움직임은 크게 눈에 뜨이지 않는다.


사우디에 관광자원으로 꼽는 것이 여러 개 있지만 그 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알울라, 홍해 산호초, 아시르지역의 우거진 숲을 대표적인 곳으로 여긴다.


알울라는 카라반 무역이 융성하던 고대왕국의 수도였으며 요르단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인 왕국의 주요 남부도시였다. 요르단의 페트라는 신전형태의 무덤 뿐 아니라 도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것에 반해 알울라는 현재까지는 무덤 외에 치수시설 같은 고대인들의 주거흔적이 일부 확인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에서는 현재 겉으로 드러난 유적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해 계속 유물을 발굴할 계획이다. 이러한 유적 외에도 사막 지형 특유의 풍광이 펼쳐져 있어 독특한 볼거리를 자랑하기도 한다.


이런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는데도 살만 국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이 지역이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부임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교우 한 분이 알울라(당시는 ‘마다인살레’로 더 알려져 있었다)를 함께 가려느냐고 물은 일이 있었다. 승용차로 왕복 3,500km 거리를 다녀올 엄두가 나지를 않아 우리는 가지 않고 교우 몇 가정만 다녀왔다. 살만 국왕이 즉위하고 나서 그곳을 개발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 번 가볼까 생각했지만 이미 그 때는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왕세자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관광사업의 중심축 중의 하나가 바로 알울라인데 이곳에서 2019년 12월 개막축제가 열렸고 이어서 2020년 1월 일디보(Il Divo), 2월 야니(Yanni)ㆍ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 공연이 이어졌다. 또한 2021년 1월에는 GCC 정상회의를 이곳에서 개최해 왕세자가 알울라 공항에서 각국 정상을 영접하는 광경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이 행사가 2017년 단교한 이후 3년7개월 동안 대립했던 카타르가 사우디와 외교를 복원하기로 합의한 후 첫 번째 행사여서 왕세자가 카타르 국왕을 영접하는 장면이 유독 관심을 끌었다. 아무튼 사우디 정부에서는 알울라 흥행을 위해 이와 같이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홍해는 세계에서 가장 손상되지 않은 수중 보물 중 하나로 예전부터 스쿠버다이버들이 와보기를 꿈꾸는 곳이라고 한다. 제다ㆍ얀부ㆍ알리쓰 지역이 특히 유명한데, 산호초를 비롯한 다양한 해양생물과 난파선ㆍ암초로 가득 차 있는데다가 오염이 되지 않아 가시성이 매우 좋다. 또한 수온이 25-35도를 유지하고 있어 일 년 내내 스쿠버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홍해 연안을 따라 흩어져 있는 난파선도 스쿠버다이버들에게 더 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요소이다.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는데도 내게는 낯선 일이고 관심도 없어서 얀부를 그렇게 여러 번 갔으면서도 들러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홍해 스쿠버다이빙을 검색하다 보면 레저숙박시설이 상당히 잘 갖춰진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소개된 호텔에 묵어본 일도 있고 눈에 익숙한 호텔도 여럿 있지만 실제 모습은 이와 상당히 다르다. 홍보라는 것이 워낙 좋은 사진만 골라 올려놓는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 시설은 사진으로 보고 기대한 것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범국가적으로 추진하는 홍해개발사업이 이미 진행되고 있으니 이러한 문제는 조만간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한반도는 동고서저 지형인데 반해 아라비아반도는 서고동저 지형이다 홍해 쪽으로 가면 내륙으로 100km 정도 떨어져서 홍해와 평행하게 높은 산맥이 이어지는데, 남쪽 예멘 국경 근처의 아시르지역에 이르면 해발고도가 3천 미터를 넘는다. 고산지대이다 보니 한여름에도 20도 내외로 아주 선선하고, 사우디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숲이 곳곳에 있고 계곡도 있어 여름 피서지로 각광을 받는다. 업무 때문에 가까이 지내는 킹사우드대학 지질학과에서는 여름마다 이곳에서 실습캠프를 차리는데, 몇 년 전에 교수들의 초청을 받아 참석한 일이 있다. 좀처럼 보기 드문 숲과 계곡, 거기에 기암괴석까지 어우러져 있어 아주 매력적이었다. 이곳은 관광입국의 기치를 내건다면 앞선 두 관광지와 함께 당연히 대상으로 꼽힐 만한 곳이고, 역시나 예상대로 사우디 정부에서 개발을 위한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이상에서 언급한 관광지는 사우디 사람들에게는 이견 없이 첫손가락에 꼽히는 곳이다. 거기에 어마어마한 재정을 투입해 개발하겠다니 그 결과가 어떻게 드러날지 기대가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곳이 과연 사우디 정부가 기대한 만큼의 관광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알울라가 고대국가의 유적과 더불어 독특한 풍광을 자랑하지만, 과연 그것이 관광객을 얼마나 끌어 모을 수 있을까? 네옴 또한 관광 레저도시를 겨냥하고 있어 여기도 관광객을 끌어와야 하는데 황량한 사막에 시설을 만들어 넣는 것은 얼마나 지난한 일일까? 여기에 만들어 넣는 것은 모두 인공시설이어야 할 것이니 결국은 가까이는 두바이 멀리는 라스베가스와 경쟁하는 모델이 될 텐데 그것과 차별되는 경쟁력을 갖추는 게 가능할까?


그런데 네옴이 허브공항이 되지 않고도 허브도시로서 두바이와 경쟁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궁극적으로는 네옴을 허브공항으로 만들려는 계획이 있는 건 아닐까? 같은 중동지역 안에서 두바이ㆍ아부다비ㆍ도하에 이어 허브공항을 꿈꾸는 게 현실적인가? 이런 상황이라면 지역본부 유치와 함께 두바이에 전면전을 선포하는 셈이 될 텐데, 그런 상태에서 GCC를 유지하는 게 가능할 것인가? GCC 유지는 사우디 국가정책의 우선순위에 어디쯤 들어있을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그런 면에서 홍해 스쿠버다이빙도 마찬가지다. 바다 속은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그 비경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뭍으로 나오면 정말 황량한 벌판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역시 인공구조물로 나머지를 모두 채워야 한다는 점에서 네옴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시르지역의 숲과 계곡은 아름답다. 하지만 한국 어느 산에 가도 그보다는 낫다. 사우디 사람들에게야 매력적인 곳이겠지만 과연 외국인 관광객이 그 경치를 즐기자고 그곳을 찾을까?


결국 이러한 이유로 사우디 정부에서 추진하는 관광사업은 향락시설이 관광객 유치의 중심이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과연 이슬람 종주국에서 그 한계를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2019년 전자비자 발급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여성 관광객의 아바야 착용의무를 면제했다. 그 영향으로 분위기가 적지 않게 달라졌지만, 아직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보도는 접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슬람에서 금지한 도박장이나 향락시설을 허용하는 것을 이와 같은 반열에 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도박장이나 향락시설을 제외하고도 과연 사우디 정부가 기대하는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나는 거기에 매우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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