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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r 12. 2021

[사우디 이야기 38] 쇼핑몰

몇 년 전에 사우디 발주처 손님을 모시고 폐기물 종합처리시설인 하남의 유니온센터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 옆에 큰 건물에 차가 줄지어 서있는 게 보여 물어보니 당시 개장한 ‘스타필드 하남’이라는 쇼핑몰이라고 했다. 내친 김에 그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손님들과 함께 둘러보았다. 연면적이 14만 평(46만m2)이라고 하니 쇼핑몰이 사방에 널려 있는 사우디에서도 비교할 대상을 찾을 수 없는 대단한 규모였다. 손님들 경탄에 어깨가 으쓱하기는 했는데, 그게 쇼핑몰로서는 국내 첫 번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사실을 알면 더 놀라지 않을까 싶었다.


이곳에 부임할 때만 해도 쇼핑몰이 정확하게 어떤 형태의 시설인지 알지 못했다. 그때까지 한국에는 집합 상업시설로 시장과 백화점이 있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길 하나를 사이로 마주보고 있었던 화신백화점과 신신백화점은 당시 서울의 명물이었는데, 말이 백화점이지 조금 더 깔끔한 공간에 들어선 시장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가 1969년에 신세계 백화점이 직영으로 전환되면서 비로소 백화점다운 백화점이 생긴 것이었다. 그때까지는 건물 주인이 따로 있고 가게마다 주인이 다른 연쇄점에 가까웠다. 그래서 화신백화점에 비해 건물의 격이 조금 떨어진 신신백화점을 신신연쇄점이라고 깎아 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을 떠나온 지 십 년이 훌쩍 넘었으니 이런 설명이 뜬금없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리야드에 처음 오니 제일 눈길을 끄는 것이 쇼핑몰이었다. 어지간한 상업시설은 물론 어린이 놀이터 같은 위락시설에 음식점까지 들어선 낯선 모습이었다. 백화점도 아니고 시장도 아닌 것이. 나중에 살펴보니 쇼핑몰 나름대로 특징이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의류ㆍ신발ㆍ귀금속ㆍ장신구ㆍ전자제품ㆍ스포츠용품 등 다루지 않는 상품이 없었고 거기에 슈퍼마켓과 레스토랑ㆍ푸드코트도 빠지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어린이 놀이시설도 모두 갖췄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느 쇼핑몰은 아이스링크가 있기도 했고, Snow City라는 눈썰매장이 있는 곳도 있었다. 말하자면 원스톱으로 모든 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이다.


지내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시설의 최대 사용자는 부녀자들인데, 여성이 운전할 수도 없고 대중교통도 없어 결국은 가족이 모두 함께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니 한 번 이동한 그곳에서 모든 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쇼핑도 하고, 장도 보고, 그 사이에 아이들은 놀이시설에서 놀고, 배고프면 밥 먹고.


리야드의 대표적인 쇼핑몰이라면 당연히 Kingdom Tower를 꼽는다. Kingdom Tower 주변에 AkariaㆍFaisaliahㆍLocalizerㆍPanoramaㆍRiyadh Gallery가 있고, 동쪽으로 가면서 SaharaㆍHyatt, 조금 더 나가 Granada가 있다. 남쪽으로는 눈썰매장이 있는 Othaim. 최근 들어 Granada 주변에 NakheelㆍHamraㆍAtyaf가 생겼다. 그러나 이 중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리야드 쇼핑몰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Riyadh Park가 아닐까 한다.



5년째 계속되는 지하철 공사로 리야드 중심도로인 Olaya Street와 주변 상권은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지하철 공사 이전부터 이미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Akaria는 물론이고 AkariaㆍFaisaliahㆍLocalizerㆍPanoramaㆍRiyadh Gallery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교통이 막혀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Faisaliah는 이 기간 동안 전면적인 개보수공사를 하고 있어 지하철이 개통되고 나면 오히려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나머지 쇼핑몰은 그 사이에 여러 쇼핑몰이 새로 생겨 고객이 분산된 데다가 다른 쇼핑몰을 압도하는 규모와 콘텐츠를 갖춘 Riyadh Park의 영향으로 과거와 같은 호황을 회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앞쪽이 Kingdom, 뒤쪽이 Faisaliah. 모두 외관이 독특하다.>
<Kingdom Tower Shopping Mall>
<Granada Mall>


그동안 리야드의 모든 상업 활동은 쇼핑몰 중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지간한 상점은 모두 쇼핑몰에 있었고 외부 단독건물에 매장이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런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중교통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이제 여성 운전이 허용되었고 거기에 조만간 지하철이 개통되고 버스 연계 수송이 이루어지면 이런 시설의 주이용객인 부녀자들의 이동이 자유로워질 것이고, 따라서 굳이 한 곳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야할 필요가 급격하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결국 다시 이전의 호황으로 돌아가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요즘은 리야드 이곳저곳에 서울의 홍대앞을 연상시킬만한 핫플레이스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각종 상점과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고 영화관도 빠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쇼핑몰을 열린 공간에 펼쳐놓은 양상인데, 이런 모습으로 볼 때 특색 있는 콘텐츠만 갖추고 있다면 이동이 쉬워진 소비자들의 이목을 쉽게 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이동이 쉽지 않으니 한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고, 그래서 모든 것을 갖추어야 했기 때문에 쇼핑몰은 결국 규모의 싸움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개장한 Riyadh Park가 규모나 종류 면에서 압도적이어서 다른 쇼핑몰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힌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도 다른 쇼핑몰의 고객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런 Riyadh Park 조차도 이런 변화의 영향을 피해가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극장가가 생긴다거나, 학생이나 청년과 같은 특정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카페거리가 생긴다거나,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패션거리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특색을 갖추고 있다면 굳이 규모가 크지 않아도 될 것이니 이런 지역이 생길 가능성은 쇼핑몰이 새로 생기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소비자가 이렇게 분산된다면 슈퍼마켓이 굳이 쇼핑몰을 고집해야 할 이유도 줄어들 것이고. 이래저래 쇼핑몰의 앞날은 그다지 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리야드 도심 모습이 2009년 부임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변한 것을 생각하면, 그 변화도 최근 몇 년에 집중적으로 일어난 것을 생각하면 이런 변화가 일어날 날이 그리 먼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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