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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r 15. 2021

[사우디 이야기 39] 주택

사우디 이야기 (39)

2012년 대통령 국빈방문의 성과로 사우디 정부 주도의 주택건설에 한국이 참여하기로 해서 한동안 들썩거렸던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 꽤 여러 팀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우디를 찾았다. 결국은 가격이 맞지 않아 불발에 그치고 말았는데 어쩌다 그 중에 휘말려 전말을 지켜볼 수 있었다. 사우디 정부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맞추려면 평당 건축비가 300만원은 되어야 했지만 사우디 정부의 예산은 200만원이었다. (이곳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인테리어라고는 벽에 페인트칠하고 화장실에 변기ㆍ욕조 설치하는 정도가 전부이다. 전등도 달지 않고 부엌에 싱크대도 설치하지 않는다.) 그때 사우디 정부에서 서민용 국민주택이라고 제시한 모델이 건평 180m2(55평)였다. 그게 9년 전 일이었는데 3~4년 전까지만 해도 국민주택의 규모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최근 들어 그 규모가 120~180m2(36~55평)으로 하향 조정되었다.


이곳도 젊은 세대들은 예전처럼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다. 국민주택 규모가 줄어든 것은 그런 영향도 있지 않을까 한다. 아무리 과거에 가족이 많았다고 해도 서민용 국민주택 규모가 55평에 이르렀다는 건 놀랍다. 하지만 이곳의 관습을 고려하면 이해가가지 않는 건 아니다.


이곳은 남녀구별이 엄격하다. 이전에는 아주 가까운 가족 아니면 여성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말하자면 시아주버니가 제수씨 얼굴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요즘은 길에서도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으니 이전과는 다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주택의 구조도 옛날 우리 양반집 가옥처럼 외간남자와 내외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집집마다 대문도 두 개, 현관도 두 개씩 있다. 출입문도 그렇고 머무는 공간도 남성용과 부녀자용이 나뉘어 있으니 마치 사랑채와 안채가 떨어져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30평대 주택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이곳의 주택은 대부분 단독주택이지만 아파트 형태의 공동주택도 없지 않았고 최근 십여 년 사이에 그 규모가 상당히 늘기도 했다. 공동주택에도 남녀분리의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다. 현관에 들어서면 남성 손님을 맞을 수 있는 거실과 화장실이 있고, 거기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시 가족용 거실이 나타난다. 그래서 바깥 거실로 향하는 문을 닫으면 가족공간이 남성손님용 공간으로부터 온전히 분리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카페ㆍ식당 같은 접객업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는데, 작년부터 그런 분리제도가 모두 철폐되었다.)


서민용 국민주택 규모가 그 정도이고 중산층 주택은 규모가 엄청나다. 교민 중에 단독주택을 빌려서 사는 분들이 많은데 화장실이 보통 대여섯 개가 넘는다. 어느 분은 이사 갈 때가 되어서 구석에 가려져 있던 화장실을 하나 더 찾았다고 해서 어이없어 했던 일도 있었다. 중산층이 이 정도이고 부유층으로 가면 주택 규모가 상상을 뛰어넘는다. 업무로 가까이 지내던 메디나 시청의 부장급 직원 자택은 3층이었는데 거실이 서너 개 되고 집 안에 엘리베이터가 두 대가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갖춘 집도 있다고 한다. 우리 회사 사우디 파트너 집 마당에는 25미터 수영장도 있다.


요즘에는 분위기가 상당히 바뀌기는 했어도 (미비한 대중교통과 사회적 제약 때문에) 여성이 출입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외부 시선으로부터 부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담장은 2층도 가릴 정도로 높여놔서 집 안에 있으면 갇혀있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워낙 그런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야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은 이런 곳에서 사는 것을 견뎌하지 못한다. 그래서 컴파운드라는 독특한 주거단지를 선호한다. 컴파운드의 울타리 안쪽은 그저 우리나라 어느 아파트 단지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된다. 무엇보다 복장이 자유롭다. 모든 컴파운드 안에서는 여성이 아바야를 입지 않아도 되는데, 아예 아바야 착용을 금지하는 곳도 있다. 소매나 종아리가 드러나는 옷을 입어도 무방하다. (이곳에서는 남성이라 하더라도 반팔ㆍ반바지 차림으로 외출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남녀분리도 적용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저 사람 사는 곳 같다.


컴파운드에는 단독주택(빌라)도 있고 공동주택(아파트)도 있다. 규모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부대시설이 많이 갖추고 있다. 수영장이나 체육시설(Gym)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고 레스토랑ㆍ카페ㆍ슈퍼마켓ㆍ세탁소도 대부분 갖추고 있다. 요즘에는 가구나 가전을 제공하지 않는 곳도 생겨나기는 하는데, 기본적으로 컴파운드는 모든 가구와 가전을 제공하고 관리도 해준다. 그 대신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빌라는 보통 복층형인데 3-bedroom의 경우 년 임대료가 6천만 원 정도이다. (이곳에서는 임대료를 연간으로 계산하고, 일 년에 한 번 또는 두 번에 나눠 낸다.) 비싼 곳은 9천만 원을 넘기도 한다. 아파트는 원룸(스튜디오) 2~3천만 원, 2-bedroom 3~4천만 원 정도 한다.


부임하기 전에 파트너 회사에 집을 알아봐달라고 하니 18만 리얄(5천4백만 원)이라고 해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보다는 가격이 낮은 집을 골랐지만, 현지법인에서 임대료를 내주기 전 한 해 동안 본사에서 임대료를 지불했는데 직원 연봉에 해당하는 돈을 임대료로 신청하기가 무척 미안스러웠다. 지금은 그 임대료도 옛말이 되었다. 이곳은 주재원들이 국적을 불문하고 대부분 그렇게 살아서 요즘은 둔감해졌지만, 한 달 오백만 원 월세로 산다면 누구든 호화판이라 비난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회사에서 임대료를 내주니 그렇게 살지 그걸 돈으로 주고 알아서 살라고 하면 과연 몇이나 컴파운드를 선택할까 싶다.


이곳에 오래 살아온 교민들은 대부분 자영업을 하거나 현지회사에 다니고 있어 자기 주머니에서 임대료를 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분들 중에 컴파운드에서 사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컴파운드라고 해도 울타리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과 부대시설이 있다는 것 빼고는 집 자체는 일반 주택과 큰 차이가 없다. 앞서 설명한 대로 단독주택은 4~50평대, 공동주택이라고 해도 3~40평대 정도이다. 물론 가구와 가전을 스스로 갖춰야 하지만, 잠시 머무르다 돌아가는 주재원과는 달리 이곳에 평생 사는 교민들에게는 그건 큰 차이가 아니다. 하지만 임대료는 컴파운드와 크게 차이가 난다. 4~50평대 단독주택은 2~3천만 원, 3~40평대 공동주택은 1~2천만 원 정도 한다. 교회가 얼마 전에 단독주택을 얻어 이사했는데 건평만 140평이 넘는 걸 6천만 원에 계약했다. (이게 개인이 살던 집이다.) 우리나라야 월세로 사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만, 사실 30평대의 공동주택이 월 100만 원 정도라면 어지간한 나라 수도의 집값으로는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지 않을까 한다.


사우디도 이제 대가족 사회에서 점차 핵가족 사회로 변하고 있다. 자녀도 예전처럼 대여섯 명 씩 낳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슬람에서는 부인을 네 명까지 얻을 수 있다지만 이제는 전설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택이 부족한 터에 이렇게 가족 구성도 바뀌니 주택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Vision 2030에 따라 2017년 현재 주택보급률 45%를 2030년까지 70%로 올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개인이 단독주택을 짓는 것은 보기 어렵고 대부분 공동주택이나, 단독주택일 경우 대규모 단지 형태로 개발하고 있다.


<리야드 교외에 건설 중안 대규모 주택단지>


직접 관계는 없지만 호기심으로 주택단지 건설현장을 몇 번 찾은 일이 있다. 개발업체에서 전시관을 열고 주택모형을 보여주기도 하고, 골조가 완성된 일부 주택을 실제처럼 꾸며놓고 보여주기도 했다. 규모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고, 예전처럼 내부구조를 남성과 부녀자 공간으로 엄격하게 분리하지는 않았어도 (거실을 필요에 따라 나눌 수 있도록 문을 설치한다던가 하는) 그 흔적은 아직 남아 있었다.


<주택 전시관에 설치해놓은 단지 모형>
<모델하우스. 눈에 보이는 것 중에 제공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 전등도>


오늘 신문에 제다에 400세대를 분양한다는 공고가 났는데 복층이고 연면적이 242~357m2 (73~108평)이라고 한다. 아마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업체에서는 앞으로 조립식 주택 30만 호를 공급하고 주택융자도 알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리야드에서 건설 중인 5천 호는 이미 90% 이상이 분양되었고, 얀부의 위성도시인 알바하에는 99% 분양을 마쳤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주택건설사업은 사우디 주택부와 주택공사(National Housing Co.)가 주도하는 Sakani Program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를 위해 2020년에 138,300 가구에 총 40조 원에 달하는 주택융자가 제공됐는데, 이는 규모로는 전년 대비 83% 증가했고 가구 수로는 27% 증가했다.


물론 이것은 내가 사는 큰 도시 이야기이고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리고 같은 리야드에 살아도 저임금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곳은 집이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다. 그렇다고 쓰러져가는 집에 산다는 말은 아니다. 우중충하기는 해도 겉보기에는 우람하다고 할 만큼 그럴 듯하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난민수용소가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집을 여러 사람이 나눠 쓴다. 언젠가 위성안테나를 달아줄 기술자를 찾느라 그들 숙소에 가봤는데, 심지어는 한 방을 몇 사람이 나눠 쓰기도 하고 세간도 변변히 없고 부엌도 따로 없는 것 같았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십여 년 전만해도 도심을 벗어나면 별장이 많았다. 2~3백 평 정도 되는 넓이에 베드윈 천막 같은 것도 쳐놓고 수영장도 만들어 놓았다. 리야드에 교회가 몇 곳 있는데 모두 그런 곳을 빌려 수영장을 덮어 본당으로 사용하고 (더위 때문에 수영장이 대부분 가건물 안에 들어 있다) 천막을 부속 건물로 사용하곤 했다. 이젠 그런 곳이 모두 개발되어 주택가로 변모하고 있다. 우리 교회는 이미 이사했고 다른 곳도 임대계약을 연장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우리 교회가 있던 곳은 헐려서 공동주택과 빌라가 들어섰는데, 모두 30가구 정도는 되어보였다. 그 주변으로 빈곳이 많기는 하지만 2017년 주택보급률이 45%에 불과했다고 하니 조만간 더는 빈 땅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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