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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r 12. 2021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Misbehaving

리처드 탈러

박세연 옮김

리더스북

2016년 1월


행동경제학


인간은 ‘경제적 동물(homo economicus)’이라고 한다. 이때 ‘경제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동일한 이익에 대해서 상반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동일한 이익이라면 이를 추구하기 위한 결정이 동일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말은 인간이 늘 ‘경제적’으로 판단하는 건 아니라는 말일 수도 있고, 인간의 판단을 지배하는 ‘경제적인 요소’를 모두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이와 같이 “인간은 경제적인 동물”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한 것이 전통경제학이라면 “인간의 판단이 늘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 행동경제학이다. 그래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에서는 인간이 어떤 경우에 비합리적으로 판단하는지, 또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의사결정이 어떤 패턴을 보이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경제학에 적용시키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일부 전통경제학자들은 행동경제학의 시도를 웃음거리 정도로 여기기도 한다.


행동경제학은 1958년경에 경제학자가 아닌 심리학자에 의해 학문적인 기틀이 만들어졌으며, 본격적인 학문으로 등장한 것은 ‘인간의 비합리적인 심리 특성(anomaly)’을 경제이론 모형 내로 끌어들여서 경제 주체의 의사결정을 경제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한 대니얼 카너먼 이후로 여겨진다. 대니얼 카너먼은 행동경제학 발달에 대한 공로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는데, 바로 이 책의 저자이며 같은 행동경제학 연구로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탈러의 스승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화장실 소변기에 가짜 파리를 붙여놓아 소변이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걸 80%나 줄였다는 스키폴공항의 사례가 화제에 오른 일이 있었다. 당시 그것을 ‘넛지(Nudge)’의 성공사례로 언급한 리처드 탈러의 동명의 책 역시 관심을 끌었는데, 그것을 읽으면서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있는 줄 알게 되었다. 경제야 모든 사람의 삶에 연관된 일이니 관심을 가져야 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그런데 이 책은 경제학에 문외한인 내게도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아서 그 이후로 행동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얼마 전에 그의 후속작인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읽겠다고 마음먹은 게 엊그제 같은데 출간한지 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읽었다.


주식거래와 바가지요금


행동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이기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조심해야 할 것은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비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가정한다는 점이다. 그런 사례를 여럿 들고 있는데, 그 중 이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사례가 주식거래가 아닐까 한다.


합리적인 세상이라면 주식거래는 이루어질 수 없다. 주식은 팔겠다는 사람과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야 거래가 이루어진다.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판단이 합리적인 것이라면 누구든 사려고만 하고 팔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주가가 내릴 것이라는 판단이 합리적인 것이라면 누구든 팔려고만 하고 사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동학개미니 서학개미니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너나 할 것 없이 주식에 뛰어들어 주식시장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주식시장이 활발하게 유지되는 것이 인간의 비합리적인 판단으로 보는 것이 옳은 것일까? 오히려 각 투자자가 가지고 있는 합리적인 기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어느 철물점이 눈 치우는 삽을 15달러에 판매하고 있었다. 눈보라가 몰아친 다음 날 가격을 20달러로 올렸다. 스키장 근처 어느 호텔에서는 다른 호텔과 달리 크리스마스 추가요금을 받지 않았는데, 크리스마스에 바가지요금을 경험한 사람이 다른 때 절대 다시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을 때 가격이 오르는 건 합리적인 경제 현상이다. 그러니 눈보라 때문에 눈 치우는 삽의 수요가 늘었으면 삽 가격이 오르고 스키장 근처의 호텔 수요가 가장 많은 크리스마스에 숙박료가 오르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철물점에서는 삽 가격을 올렸지만 호텔에서는 객실료를 올리지 않았다. 그러면 철물점은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이고 호텔은 비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인가?


철물점 사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MBA 학생들의 76%가 이 조치를 인정할만하다고 답했고 26%만 부당하다고 답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소비자들은 18%만 인정할만하다고 답했고 82%는 부당하다고 답했다. 나 같아도 그랬겠다. 그렇다면 과연 소비자가 오른 가격으로 삽을 샀을까? 아마 수고스럽더라도 싸게 파는 철물점을 찾았거나, (주변에 그런 철물점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오른 가격으로 샀다면 호텔 주인이 걱정했던 대로 이후에 그 철물점을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경우 경제적인 관점에서 어느 것이 합리적이고 어느 것이 비합리적인 선택이었을까? 앞서 인용한 대로 ‘경제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한다”는 말이라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객실료를 올리지 않은 호텔 주인이 오히려 경제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닐까?


어느 경제학자가 인기 절정의 레스토랑에 음식을 경매방식으로 가격을 매겨서 수익을 극대화하라고 조언하자 레스토랑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조언을 거부했다. “수요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그래서 고객들이 기꺼이 추가요금을 지불하려 한다 하더라도 절대 제품이나 서비스 가치 이상의 가격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고객들은 문을 나서면서 ‘좋기는 하지만 가격만큼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손님은 다시 그곳을 찾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불만을 수많은 잠재고객들과 나눌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판단이 늘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와 같이 그동안 전통경제학이 (당연히 고려했어야 했지만) 놓치고 있었던 ‘경제적 판단의 주요 요소인 인간의 심리’를 경제에 제대로 반영하려는 시도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지 않은가 싶다. 경제학에 심리학을 도입하는 게 무모한 일이라며 행동경제학을 비웃던 전통경제학자들은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고.


행동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여러 이론


보유효과(endowment effect);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소유하게 됐을 때 해당 물건에 대한 가치를 이전보다 더 크게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넷플릭스 한 달 무료 이용권을 얻게 되면 이용권이 없었던 이전보다 넷플릭스 콘텐츠에 대한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다.


현상유지편향(status quo bias); 귀찮은 일이나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는 그냥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려고 한다. 구독서비스의 경우 일정 기간 무료 이용한 후 구독을 해지하지 않으면 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현상이 구독의 해지를 막는 기제로 작용해 무료 이용기간이 종료되어도 서비스를 해지하지 않고 계속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탈러 교수는 연금관리기구에 퇴직연금에 자동가입을 기본으로 하고 원할 때 탈퇴의사를 표시하도록 하는 자동가입방식(opt-out)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는데, 그러자 퇴직연금 가입률은 49%에서 86%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심적회계(mental accounting); 우리가 언제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경제 주체라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 50달러와 오다가 주운 돈 50달러는 그 돈의 배경과 관계없이 동일한 가치를 지녀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내가 번 돈보다 주운 돈이 덜 소중하게 느껴지고 쉽게 써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동일한 비용을 두고 그 돈의 맥락ㆍ성격ㆍ목적 등에 따라 심리적으로 다른 가치를 책정하게 된다.


단순측정효과(mere-measurement effect); 의도에 대한 질문을 받을 경우 자신의 답변에 행동을 일치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선거일 전날 투표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것으로 투표율을 무려 25% 끌어올릴 수 있으며, 향후 6개월 안에 신차를 구매할 의사가 있느냐는 간단한 질문만으로 신차 구매율을 35%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완성후 오류(post-completion error); 주요 임무를 끝내고 나면 그 이전 단계에 관련된 사항을 잊기 쉽다. 주유를 마치고 주유구 뚜껑을 닫지 않는다던가, 현금을 인출한 후 현금인출기에 카드를 그대로 꽂아두고 돌아간다. 그래서 주유구 뚜껑을 차체에 연결하고, 카드를 먼저 뽑아야 현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만든다.


행동경제학에서 거론되는 이와 같은 이론을 살펴보면 결국 인간의 심리적 기제가 의사결정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심리학을 배제한 전통경제학의 이론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그렇게 많은 것이고, 그것을 경제학에 심리학을 도입한 행동경제학이 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빌프레도 파레토(1906)은 이렇게 말했다지 않는가.


“정치, 경제, 좀 더 보편적으로 말해서 모든 사회과학을 떠받치고 있는 학문은 명백하게도 심리학이다.”


일반인이 읽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책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갖게 한 저자의 전작 <넛지>를 읽은 게 벌써 십 년이 넘었다. 그 이후로 행동경제학에 관심을 가졌지만 마땅한 책을 읽지 못했다. 그래서 저자의 후속작인 이 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읽으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런 이유로 기대를 가지고 600쪽이 넘어가는 이 책에 도전하게 되었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행동경제학의 다양한 성과를 독자들과 나누는 데는 행동경제학 연구를 시작한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행동경제학과 함께한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어떤 관점으로 자신과 타인의 선택을 조율할 것인지, 어떻게 ‘넛지’를 활용할 것인지 온전히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이 책을 논문이나 교과서가 아니라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불행하게도 저자는 재미있게 쓴다고 썼는데 내게는 전작인 <넛지>보다 훨씬 어려웠다. 지루한 건 둘째 치고 우선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저자가 <넛지>를 발간한 다음 해인 2009년에 한국을 방문해 골프장을 찾은 일이 있었는데, 당시 캐디가 그 책을 읽었다고 해서 매우 놀랐다고 인터뷰한 기사를 본 일이 있다. <넛지>는 캐디나 나 같은 경제학에 문외한인 일반 독자가 재미있게 읽을 만큼 친절한 책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꺼내 읽어봤는데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가 스스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밝힌 것이어서 기대가 더욱 컸지만, 일주일 넘게 매달려 겨우 읽기를 마친 지금도 뭘 읽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 이 글이 서평이라는 건 가당치 않은 말이고, 그저 위에 언급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내가 이해한 것을 잊지 않도록 남긴 메모 정도로 여기는 것이 맞겠다.


하나 궁금한 것이 있다. 저자가 노벨상을 수상한 2017년까지만 해도 저자의 이름 Richard H. Thaler를 모두 리처드 탈러로 표기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리처드 세일러라는 표기가 눈에 많이 뜨였다. 탈러와 세일러 표기가 워낙 차이나 처음에는 다른 사람인 줄 알았을 정도이다. 궁금해서 유뷰트를 검색해보니 노벨상 수상 다음 해인 2018년 시카고 대학에서 ‘행동경제학; 과거, 현재와 미래(Behavioral Economics: Past, Present, and Future)’라는 제목으로 한 시간 넘게 강연한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이에 따르면 저자의 이름은 테일러와 세일러의 중간쯤(θ)으로 들린다. 탈러와 테일러는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탈러와 세일러는 너무 다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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