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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r 24. 2021

[사우디 이야기 41] 자동차 구매

사우디 이야기 (41)

부임해서 이사할 때까지 렌터카를 이용했다. 유지관리에 신경 쓸 이유가 없으니 편의성만 생각하면 됐다. 이런저런 차를 타보다가 결국은 현대차를 타고 다녔다. 운전 시작할 때부터 현대차를 타고 다녔으니 익숙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른 나라 차들은 우리나라 차들처럼 오밀조밀한 맛이 덜했기 때문이었다. 없다고 딱히 불편한 건 아니지만 뭔가 아쉬운.


같은 등급의 차종인데도 이곳에 수출되는 현대차는 배기량이 월등하게 컸다. 게다가 가격도 천만 원 이상 낮았다. 당시 사우디에는 부가세가 없었기 때문에 가격이 한국보다 부가세 10%만큼 낮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차이가 났다. 아무튼 가격이 그렇게 차이나다 보니 귀국할 때 이곳에서 신차를 사서 가져가는 사람도 몇 있었다. 운송하는 절차도 그렇고 운반비도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그게 낫다고 했다. 국산차라고 해도 무관세로 수출한 것이니 귀국할 때 가져가면 세금을 매기지 않을까 했는데, 한국에서 생산된 것이라면 구매 시기에 상관없이 과세하지 않는다고 했다.


차를 살 때 사양과 가격만큼 중요한 것이 유지관리이다. 요즘은 부품이 모듈화 되어 있어서 예전처럼 부속 하나둘 갈아 끼워 해결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차체 대부분이 전자장치로 제어되다보니 문제가 생기면 꼼짝없이 정비공장에 가져가야 한다. 보증기간 안에는 수리비용이 많이 들지 않지만, 보증기간을 넘어서면 금액이 장난이 아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자동차 제조사에서 공급하는 순정부품이 상당히 비싸서 최대한 대체부품을 사용했다. 이를 위해서는 대체부품 유통망이 구축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무엇보다 자동차 대수가 많아야 한다.


2009년 부임 당시에도 운전할 때 시야에 항상 현대차가 보였다. 얼마 지나고 나서는 기아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전 아랍뉴스에 보도된 내용을 보니 작년 판매실적 1위 토요다, 2위 벤츠에 이어 현대차가 5위에 올랐고 기아차는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차가 많다는 건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니 유지관리가 그만큼 쉽고 값도 싸다. 그래서 토요다를 살까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찍 한국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 결국 현대차를 샀다.


당시 내가 산 현대차는 품질보증이 기간으로는 2년 주행거리로는 6만km였다. 품질보증에 해당하는 기간에는 무료로 정기점검을 받았다. (엔진오일 같은 소모품 교체도 포함) 다행히 집 앞에 현대차 정비공장이 있어서 돈 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차를 운행할 수 있었다. 문제는 보증기간이 끝나고 나서였다. 특별히 큰 고장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사고가 나거나 자잘한 고장이 나도 대체부품을 구할 수 없으니 현대차 대리점에 부품을 신청하고 받는 데까지 시간도 걸리고 값도 비쌌다.


정비공장에서 쓰는 용어는 우리말로 해도 이해가 쉽지 않다. 그래서 수리할 일이 생기면 우리 회사의 필리핀 기사에게 부탁을 해서 수리하곤 했다. (자동차 정비공장에 필리핀 기술자들이 상당히 많다.)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나오면 좀 싸게 해달라고 부탁은 했지만 설마 같은 나라 사람끼리 바가지를 씌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연식이 오래되어 가면서 고장이 잦아졌고 필리핀 기사도 퇴사해서 직접 고치러 다녔다. 그러다 보니 싸게 고치는 것은 그만두고 때로는 바가지를 씌우기도 했다는 걸 알았다. 주재원이니 바가지 씌워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현대차 지사장께서 그런 사정을 아시고 문제가 생기면 지사 사무실로 오라고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사장은 판매에만 간여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실은 정비공장 운영에도 간여하고 있었다.


한 번은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여느 때처럼 다니던 정비공장에 가져가니 오래되어서 중요부품을 갈아야 한다며 100만 원이 넘게 든다고 했다. 혹시나 싶어 현대차 지사에 가져가니 부품이 문제가 아니라 바닥 쪽에 있는 파이프가 구멍이 났다면서 금방 고쳐줬다. 5만 원 정도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정비공장에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불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장 원인을 잘못 찾았겠지.) 아무튼 그 이후로는 염치불구하고 현대차 지사 신세를 지고 있다.


얼마 전에 리야드에 새로 부임한 분에게서 차를 살 때 뭘 고려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잠시 사용할 거라면 중고차도 선택지가 될 수 있겠지만, 차 상태를 믿을 수도 없고 또 꽤 오래 근무할 거라고 해서 토요다와 현대차를 비교하며 내 경험을 설명했다.


유지관리는 차량 대수가 가장 많은 토요다가 유리하지만 근무지인 리야드를 크게 벗어날 일이 없으니 그 차이가 별로 크지 않다. (대도시에는 부품 공급도 그렇고 정비공장도 여러 곳 있다.) 이젠 차체가 전자장치로 제어되기 때문에 무엇을 얼마나 고쳐야 하는지 알 수 없으니 기술자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자면 믿고 맡길 수 있는 공장을 찾아야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그러니 결국 기술력 있고 신뢰할 수 있어 부당한 대접을 받을 염려가 없는 현대차가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전했다. (물론 이건 현대차 지사장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리야드에 한한 일이기는 하다.)


작년 7월 국왕의 명령 하나로 부가세가 5%에서 15%로 인상되었다. 그래서 6월 판매량이 현대차 지사가 생긴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고 인상된 부가세가 적용된 7월에는 바닥을 찍었다고 한다. 올 초에 현대차를 사려는 분이 있어 가격을 확인해보니 한국에서 사는 값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물론 사양이 매우 다양하니 비교한 차종이 동일한 것인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이곳에서 차를 사서 한국으로 가져갈 만큼 싸지 않은 건 분명해 보인다.


그렇기는 해도 문제가 생기면 정확한 상태를 확인하고, 상식적인 가격 혹은 그보다 덜 들이고 신경도 덜 쓸 수 있는 현대차를 사는 걸 권할 만하다. 게다가 교민은 특별 할인도 적용한다고 하니 필요하면 현대차 지사장께 직접 연락해 보시라. (연락처가 필요한 분은 쪽지로) 올 초에 6년 가까이 근무하시던 전임 지사장께서 이임하시고 새로운 지사장께서 부임하셨는데 지금 설명한 이런 내용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현대차 지사는 순환도로(Ring Road) 18번 출구 근처에 있다.


품질보증은 예전에 비해 대폭 늘었다. 제네시스의 경우 주행거리에 상관없이 보증기간 5년, 나머지 차량은 기간으로는 5년 주행거리로는 10만km이다.


이렇기는 해도 교민 중에 현대차를 이용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곳은 조금만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광야나 사막이라서 SUV를 이용하는 교민이 많다. (통계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아는 교민 중에는 SUV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오프로드를 승용차로 접근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차에도 SUV가 있기는 하지만 사우디에 들어온 지도 얼마 되지 않고 오프로드용은 한두 종류에 불과하다. 이곳에 오래 거주한 교민은 옛날부터 익숙한 차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 주재원들은 귀국할 때 처분해야 하니 중고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토요다ㆍ혼다ㆍ닛산 같은 일본 차, 포드ㆍGMC 같은 미국 차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에 자가용 영업을 방지하기 위해 5인 가족 이상이 되어야 SUV를 살 수 있는 제한규정이 적용된 일이 있다. 반발이 많았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규정에 취소되었고 지금은 아무런 제한이 없다.


이곳은 산으로 들로 나갈 곳이 마땅치 않다. 그나마 바람 쐬러 나갈만한 곳이 사막이니 그런 생각으로 SUV를 사지만, 나는 십 년 넘게 살면서 승용차로 갈 수 없는 오프로드를 가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러니 이웃의 차에 동승하거나 꼭 필요하면 렌트해서 해결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그것이 차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2010년 제네시스를 사서 십 년 넘게 잘 타고 다닌다. 얼마 전에 발전시스템이 노후해서 교체한 것 말고는 큰돈이 들어간 일이 없다. 그러니 적어도 성능이나 유지관리 측면에서는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 현대차 지사 덕분에 차 때문에 골치 아플 일이 없어졌다. 중고가격이 다른 차에 비해 낮다고 하는데 이미 쓸 만큼 썼으니 내게는 해당 없다. 다만 에어컨의 성능이 다른 차에 비해 다소 뒤져서 아주 더운 날은 뒷자리에 사람을 잘 태우지 않는다. 요즘 신차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현대차의 에어컨 성능이 아쉽다는 건 교민들의 공통된 의견으로 보인다. 아무튼 주변에 현대차를 타는 교민은 다섯 손가락을 겨우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정도이다.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뭔가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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