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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r 29. 2021

[사우디 이야기 42] 자동차 운행

사우디 이야기 (42)

부임해서 거주허가(이까마)를 받을 때까지 국제면허증(IDP, International Driving Permit)으로 운전을 하고 다녔다. 알고 보니 사우디는 1968년 비엔나 통행협정에 가입했기 때문에 국제면허증으로 운전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는 일반 렌터카업체에서는 국제면허증으로 차를 빌려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비싼 대형 렌터카가맹점에서 차를 빌렸다. 당시에는 국제면허증이 불법이기는 하지만 외국인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서 묵인하는 것이고, 그래서 일반 렌터카업체에서는 안 빌려주는 줄 알았다. 누군가 그것은 여성 운전을 막기 위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사우디에 여성운전을 금하는 법은 없고 단지 운전면허를 발급하지 않는 것으로 운전을 못하게 했는데, 국제면허증을 허용할 경우 외국인 여성이나 국제면허증을 가진 사우디 여성의 운전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교통경찰에게 국제면허증을 보여야 할 때마다 한참씩 실랑이를 벌여야 해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어쩌면 면허증이 아니라 다른 문제로 그랬는지도 모른다. 말이 통하지 않아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지금도 당연히 외국인 방문객이 국제면허증으로 운전할 수 있다. 이때 여권과 자국 면허증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방문객이라고 해도 국제면허증을 3개월 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이상 사용했고, 렌터카에서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설령 문제 삼는다고 해도 렌터카 회사를 바꾸면 3개월 이상 사용한 걸 확인할 수 있는 절차도 없다.


이까마가 나오고 사우디면허증을 받기 위해 면허시험장에 가서 신청서와 함께 한국면허증을 제출하니 주행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신청서 낼 때 필요하다고 해서 면허시험장 앞에서 혈액형검사를 했다. 주행시험이라고 해봐야 10미터쯤 직진한 후 좌회전해서 그만큼 갔다가 그대로 후진해서 돌아오는 간단한 시험이었다. 별 것 아니었지만 수동변속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떨어지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주행시험 마치고 반시간 남짓 기다려 사우디 운전면허증을 받았다. 이때 한국면허증도 함께 돌려받았다. 요즘은 한국면허증만 제출하면 주행시험 없이 바로 사우디면허증으로 바꿔준다고 한다. 단, 한국면허증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아예 제출해야 한단다. 아예 제출하지 않으려면 주행시험을 봐야 한다는데, 한국에 가서 재발급 받으면 되는 일이라 다들 그냥 제출하고 사우디면허증을 받는 모양이다.


사우디면허증은 유효기간이 최대 10년이고 그 안에서 기간을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당연히 10년짜리를 받아서 작년에 새로 갱신했다. 면허증 갱신은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가능하다. 면허증을 갱신하기 위해서는 신체검사를 해야 하고 이상이 없으면 즉시 발급된다. 오프라인에서 갱신할 경우 면허시험장 앞에 가면 이를 대행해주는 조그만 사무실이 널려있다. (면허시험장 위치는 구글지도에서 Driving School이라는 이름으로 찾을 수 있다.) 이곳에서 신청서류를 만들어주고 신체검사하는 병원까지 데려다준다. 신체검사를 마치면 모바일로 문자가 오는데 문자 받고 면허시험장에 들어가 기다리면 이삼십 분 안에 면허증을 받을 수 있다. 면허시험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무부 Absher 포털에서 방문 예약을 해야 한다. (사우디 관공서의 모든 대민업무는 이렇게 예약해야 출입ㆍ처리할 수 있다.) 모바일 앱으로도 예약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게 어려우면 면허시험장 정문 앞에 늘어선 사람들에게 예약을 부탁하면 된다. 정문 앞에서 손에 모바일을 들고 예약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 50리얄(1만5천 원) 정도 달라고 한다. 


온라인으로도 갱신이 가능한데,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 받은 후 온라인에서 갱신하고, 갱신된 면허증은 택배로 받는다. 5년짜리로 갱신할 경우 신체검사를 포함해 온라인으로는 350리얄(10만 원) 정도 들고 오프라인으로는 이보다 100리얄(3만 원, 대행수수료) 정도 더 든다. 택배는 늦어도 일주일을 넘지 않는다. 시간이 나고 100리얄이 큰 부담이 아니다 싶으면 오프라인에서 갱신하는 게 권할 만하다. 어차피 신체검사 하러 병원에도 가야하고 면허증 택배로 받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면허시험장에 가면 한 자리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에 거주하는 사람이 한국 아닌 다른 나라에 가서 운전하려면 국제면허증이 있어야 한다. 국제면허증은 유효기간이 1년이니 한국에서 국제면허증을 받아와도 정작 사용할 때 유효기간을 넘기기 일쑤이다. 사우디면허가 있으면 이곳에서도 국제면허증을 받을 수 있다. 국제면허증은 SATA(Saudi Automobile and Touring Association)이나 SAF(Saudi Automobile Federation)에서 발급한다. SATA나 SAF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SATA에 가입된 여행사 사무실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는데, 신청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10~20분이면 충분하다. 사진ㆍ이까마ㆍ여권ㆍ사우디면허증이 있으면 되고 비용은 150리얄(4만5천 원) 정도이다. 온라인의 경우 택배비 100리얄(3만 원)이 추가된다. 국제면허증 신청하기 전에 교통범칙금을 모두 납부해야 한다. 인근 아랍에미리트ㆍ카타르ㆍ바레인ㆍ쿠웨이트ㆍ요르단에서는 국제면허증 없이 사우디면허증만으로 운전할 수 있다.


거주허가를 받고 나서 승용차를 샀는데 차량등록은 딜러가 처리해줘서 그 절차는 잘 모른다. 차를 넘겨받을 때 우리 주민등록증처럼 생긴 플라스틱 차량등록증(Istimara)을 받았고, 보험사도 딜러가 정해줬다. (나중에 보니 현대차와 내가 가입한 Tawuniya가 특약이 되어 있어서 사고처리가 수월했다. 차량 구입할 때 딜러가 추천해주는 보험사를 고려할만하다.)


내가 차를 살 당시와는 달리 요즘은 내무부 Absher 포털에 개인별로 이까마ㆍ비자ㆍ부양가족 뿐 아니라 주택ㆍ차량ㆍ운전면허ㆍ교통범칙금 등 모든 내용이 등록되어 있다. 자기 소유의 차량이 있으면 차량등록증에 기재되어 있는 모든 정보가 등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차량등록증이나 면허증을 갱신할 수 있다.


차량등록증은 유효기간이 3년이고 유효기간 만료일 180일 이전부터 갱신이 가능하다. 차량등록증을 갱신하려면 우선 차량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예약을 받지 않으니 차량검사소에 차를 가지고 가서 줄서서 기다리면 된다. 몇 번 검사받는 동안 짧게는 30분 길어도 1시간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차량검사소 위치는 구글지도에서 Fahas 또는 MVPI(Motor Vehicle Periodic Inspection)라는 이름으로 찾을 수 있다. 검사료는 차종에 따라 다른데 승용차의 경우 85리얄(2만5천 원)이다. 검사에 불합격할 경우 28리얄(8천 원)을 내고 불합격한 부분만 다시 검사받으면 된다.



차량검사에 합격하면 출구에서 아래와 같은 차량검사 합격 스티커를 나눠준다. 혹시 차량검사에서 합격한 이후 갱신한 차량등록증을 받기 전에 유효기간이 끝나면 불법운행이 되는데, 이 경우에 차량검사 합격 스티커로 차량등록증을 갱신하는 중임을 입증하면 된다. 하지만 유효기간 만료일 이전에 갱신된 차량등록증을 받을 수 있으면 굳이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차량검사에 통과하면 먼저 갱신수수료 300리얄(9만 원)을 납입하고 내무부 Absher 포털에서 갱신한다. 갱신수수료는 온라인뱅킹이나 현금지급기(ATM)에서 납입할 수 있다. 거래은행의 자기 계정에 로그인한 후 Government Payment 또는 MOI Service-Motor Vehicle-Renew Vehicle Registration을 선택하면 차량소유주 이까마 번호와 차량등록번호 열자리를 입력하라고 요구한다. 차량등록번호는 차량등록증 하단에 있는 바코드 위에 표시되어 있고, Absher 포털 Dash Board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전에는 차량등록증을 갱신할 때마다 매번 유효기간이 적힌 플라스틱 카드를 새로 발급해줬는데 최근에는 유효기간을 기재하지 않고 내무부 시스템에서만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실 교통사고가 나지 않는 한 차량등록증을 볼 일이 없으니 유효기간 때문에 3년마다 플라스틱 카드를 갱신하는 것도 낭비라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한다.


부임 당시 일반휘발유 가격은 리터에 135원(0.45리얄)이었다. 당시 한국은 1,500원을 넘나들었고 이웃인 아랍에미리트는 600원(2디르함)이었다. 그때 유류가격은 정부고시가격을 따랐기 때문에 어딜 가나 같았는데 몇 년 전부터 가격이 자율화 되어 주유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부임하고 12년이 흐르는 동안 일반휘발유 가격은 리터에 570원(1.9리얄)로 4배 이상 올랐다. 처음에는 가득 주유할 때 8천 원 남짓해서 매번 행복했는데, 며칠 전 주유할 때는 꼭 3만 원이 되었다. 그것도 싼값이기는 하지만, 이미 싼값에 익숙해 있기도 하고 한국이나 아랍에미리트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으니 주유할 때마다 슬며시 짜증이 난다.


리야드는 지하철 개통을 앞두고 있다. 아무리 연계 수송이 잘 되어있다고 해도 과연 뜨거운 여름날 시민들이 얼마나 지하철ㆍ버스 연계수송을 이용할지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휘발유 가격을 지금의 1.5~2배 정도까지 올려 대중교통 이용을 촉진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휘발유 가격은 전국적으로 같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니 단지 리야드 대중교통을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요즘엔 각종 세금과 공과금이 하나같이 인상 일변도여서 시민들이 가격인상에 따른 피로를 호소하고 있는 마당에 과연 정부에서 그런 모험을 할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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