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by 박인식

선교 (2019.07.06)


교회의 존재이유는 선교에 있다고 한다. 나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르게, 남을 배려하며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선교라고 생각한다.



아내 (2019.07.07)


이웃 하나가 황망하게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제 일흔을 조금 넘기셨으니 일러도 너무 이른 나이가 아니신가. 그러고 보니 주변에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는 분이 참 많이 보인다. 생각하니 은근히 걱정스럽다. 아내가 나보다 오래 살 거라는 걸 너무 당연히 여기고 아내 건강에 무심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자리보전하고 누워 아내와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고 죽기 살기로 운동을 하고 있으니,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당장 손잡고 동네 걷는 것부터 함께 해야겠다.



욕심 (2019.07.10)


좋은 욕심이란 건 없다. 욕심은 그저 욕심일 뿐이다. 욕심이 생기면 몸에 힘이 들어가고, 몸에 힘이 들어가면 행동이 자연스럽지 못하며,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아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욕심을 버린다는 건 뭘까? 내 능력으로, 내가 열심히 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닫는 일이 아닐까. 아니, 세상사는 일이라는 게 내 능력이나 내 의지 너머에 있다는 걸 깨닫는 일이 아닐까.



운동하는 이유 (2019.07.10)


나중에 가족에게 짐이 안 되겠다고 죽기 살기로 운동을 하고 있다. 죽기 살기로 운동한다고 짐이 안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 이제 그 생각을 버려야 할까 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니 그것을 감당할 뿐, 처분은 그분께 맡기고.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을 덜면 운동하는 게 덜 힘들겠다.



목숨을 거두어 가시는 은혜 (2019.07.10)


병이 들면 병을 거두어 가시기를 구하겠지. 병을 거두어 가시지 않으면 병을 이길 힘을 구하지 않겠나. 고통이 심해지면 차라리 목숨을 거두어 가시기를 구하겠고. 그러고 보면 목숨을 거두어 가시는 것도 은혜일 수 있겠다.



돕는 손길 (2019.07.12)


나는 겁이 참 많다. 나이 들며 그걸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 뿐. 그렇게 애쓴 덕에 문제가 생겨도 겉으로는 무심해 보이지만 내심 얼마나 당황해하는지 모른다. 참으로 다행한 건 도무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오히려 차분해진다는 것이다. 내 성정으로 보면 어림없는 일인데. 나를 도우시는 손길이 있다는 말이다.



반려동물 (2019.07.14)


글에서 아내를 반려자로 표현할 일이 있었는데 문득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이 떠올라 아내를 그렇게 부르기가 민망해졌다. 무릇 모든 생명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나 그렇다고 인격을 지닌 사람과 같다고 할 수야 있겠나. 반려자란 서로 인격을 존중하는 사이이니, 아무리 좋은 뜻으로 만든 말이겠지만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은 지나친 감이 있다.



탈수증 (2019.07.14)


엊그제 근무하다 어지러워 일찍 집에 돌아왔다.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어지럼증과는 증상이 달라 당황스러웠다. 며칠 전 교회 이사한다고 뙤약볕 아래서 한나절 땀을 뺐는데, 그게 힘에 부쳤으면 몸이 뻐근할 일이지 웬 현기증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탈수증이란다.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운동을 하고 살아서 건강 하나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막노동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열심히 운동한 결과로 건강해진 게 아니라 건방져졌다. 정신 차리자.



강경대응 (2019.07.17)


나는 강경대응 방식에 매우 부정적이다. 강경대응은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고,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오래 버티기 어렵다. 결국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소진하면서 소리만 요란하고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금지 조치로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정부의 강경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보다 정부가 먼저 칼을 뽑아들고 나서 강경대응 국면으로 몰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유감스럽게도 칼은 뽑았는데 어디를 찔러야 할지 모르고 그저 허공만 가르는 것으로 보인다. 한정된 에너지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겠고. 이미 칼은 뽑았으니 도로 넣을 수도 없는 일. 지금이라도 호흡을 가다듬고 냉정을 되찾기 바란다. 위기에 강한 민족이니 거기서부터 출발하면 수습할 길을 찾지 않겠나. 그러니 우선 목소리부터 좀 낮추라. 빈 수레라고 동네방네 소문 낼 일 있나.



가치 (2019.07.22)


문득 내가 지금까지 지키려고 했던, 지키고 있는, 지키려고 하는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생겼다. 별로 생각해보지 않아서 답을 할 수 없었다. 아직 갈 길이 머니 이제부터라도 생각해 봐야겠다.



마음에도 없는 말 (2019.07.23)


용인 수지에 송유관 터미널 공사할 때 일이다. 근교 농업을 하던 동네에 유류 탱크가 들어선다니 주민 반대가 여간 심하지 않았다. 나름 성의를 다해 설득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발주처에서는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을러대고 주민은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니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생각다 못해 장비 진입을 가로막고 서있던 동네 어른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어댔다. 분에 못 이겨 주먹질이라도 해대면 맞고 누울 참이었다. 눈 딱 감고 몇 대만 맞자, 그러면 뭔가 수가 나지 않겠나 했다. 생각했던 대로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한 분이 분을 참지 못하고 손을 올리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동네 청년들이 꼼수에 말리는 일이라며 막아서는 게 아닌가. 결국 일은 일대로 꼬이고 동네 어른께 마음에도 없는 욕만 해댄 셈이 되었다. 돌아서 나오는데 어찌나 부끄러웠던지.


그 후로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낯이 뜨겁다. 살다 보면 이렇게 정말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 놓을 때가 있는데,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여기면서도 남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게 되지 않는다. 평소와 다르게 아주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 이웃 하나 때문에 한참 씩씩대다가 문득 이때 일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마음에 없는 소리였겠구나, 그 이야기 해놓고 그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겠구나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깨달았으니 털어 버려야겠구나.



안치환 (2019.07.24)


며칠 전 광화문 집회에서 안치환이 이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자가, 더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는 자가, 너희가 만든 빨갱이라면, 나는 자랑스럽게 선언한다. 나는 빨갱이다. 나는 빨갱이다.” 나는 안치환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노래를 불렀는지 이해한다. 태생이 보수이니 마음 한 편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가사 그대로 동의했다. 그의 노래는 빨갱이에 힘이 실린 게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자’에 실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끝난 후 태어난 사람이라서 일제강점기에 대한 경험도 없고 이해도 없지만 전쟁으로 인한 이산의 아픔은 어머님을 통해 평생 겪어오고 있다. 그런 사연이 있어 ‘빨갱이’라는 말에 극렬하게 반응한다. 그런 내 관점에서도 안치환이 부른 노래가 빨갱이를 합리화 하는 것도 아니고 그를 고무 찬양하는 건 더욱 아니며, 단지 더 나은 세상을 갈망하는 부르짖음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넘길 수 있었다. 나도 참 많이 바뀌었다.



개방 (2019.07.25)


음악이 금기인 이곳에 슈퍼주니어가 다녀갔고 얼마 안 있어 방탄소년단도 온단다. 세월 이기는 장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급속하게 변할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제다 월드 페스티벌에 오기로 한 유명한 미국 래퍼 하나가 여성과 성소수자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연을 취소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대중음악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사우디 정부를 돕는 일이니 취소하는 게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고, 대중음악을 통해 경직된 사우디 사회를 좀 더 자유롭고 개방되도록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무산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나름 타당한 논리가 있겠지만, 십 년 넘게 살아온 내게는 사우디 사회의 개방을 앞당길 수 있는 기회를 무산시켰다는 의견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개방은 물결과도 같은 것. 비집고 들어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문이 열리면 그 물결을 어떻게 막겠나. 막는다고 막아지겠나 싶어서 말이다.



단맛 (2019.07.27)


담가놓은 막걸리가 너무 진하다는 생각도 들고 바닥도 드러나고 해서 사이다를 탔더니 마시기가 훨씬 낫다. 달짝지근하니 입에 붙는 맛도 나고. 서울에서 기억에 남았던 막걸리 그 맛이었다. 생각해보니 맛있다고 할 때 맛이라는 게 결국은 단맛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다이어트가 산업이 되는 게지.



나이 값 (2019.07.27)


교회가 이사하게 되어 교우 몇몇과 함께 이를 준비하고 있다. 의논할 때 가능한 개인적인 주장을 내세우지 않겠다고 마음먹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처음에 생각한 대로 결론을 맺는 일이 많아 매번 후회스럽다. 그렇게 결정한 게 옳았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의논을 마치고 결과를 정리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랐어야 했다는 걸 깨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더 큰 잘못을 막기 위해 늦게라도 이를 바로잡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회가 덜어지지는 않는다.


왜 나보다 나은 생각을 받아들이는 데 그렇게 인색할까? 나보다 나은 생각을 받아들이는 게 체면 깎일 일도 아니고, 설령 그렇다고 한들 그게 뭐 대수이겠나. 더구나 서로 섬기는 게 일상이 되어야 할 교회공동체 안에서 말이다. 머리엔 서리가 내려 검은 머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나이를 먹었는데. 아무래도 나이 헛먹은 모양이다.



별 (2019.07.27)


교회학교 수련회에서 밤에 아이들과 바깥에서 지낼 때마다 별자리에 대해 좀 알아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쏟아질 듯 하늘을 뒤덮고 있는 별을 보며 그저 아름답다는 말만 하기보다는 이건 무슨 별이고 저건 무슨 별자리인지 설명하다 보면 아이들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도 같고, 그 시간이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다. 별자리 책을 읽으며 별자리를 익힌 기억은 나는데, 정작 아이들에게 그런 설명을 해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 집 앞 언덕을 오를 때 언덕 끝에 주먹만 한 별들이 걸려있었는데, 어린 눈에도 그게 그렇게 정다워 보였다. 겨울이어서 그랬는지, 그럴 만큼 마음이 열려있어서 그랬는지. 자라고 나서 별이 그렇게 가까이 있는 걸 본 일도 없고 그 모습이 정다워 보였던 일은 더더욱 없었다. 별을 바라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을 것이고 도시 불빛이 별을 보게 놔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침에 운동하면서 ‘사람 반, 별 반’이라는 경북 영양을 소개하는 방송을 들은 게 계속 머릿속을 맴 돌아 이곳에 나와 산지 십 년도 넘은 오늘 처음으로 밤하늘에서 별을 찾았다. 별이 다섯 손가락을 채울 만큼도 보이질 않는다. 밤에도 열기가 가시지 않는 사막이라서 그런 걸까? 혹시 이미 닫힌 마음의 눈이 육신의 눈마저 멀게 한 건 아닌가 모르겠다.



집단주의 (2019.07.27)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면서 일본 여행이나 일본제품 구매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대해 전문가들이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내겐 그저 국민감정을 존중하는 작은 배려이거나 굳이 나대서 눈총을 받지 않으려는 센스 정도로 여겨지는데. 거기에 그런 심오한 의미가 들어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마지막 잎새 (2019.07.31)


나는 짐승을 키워본 일이 없다. 나무도 화초도 키워본 일이 없다. 간혹 난 화분을 받기도 했지만, 보내준 사람에게 결례가 되지 않도록 잠시 곁에 두었다가 나누어 주곤 했다. 짐승이건 나무건 화초건 그들에게 모두 같은 생명이고, 그 생명을 잘 건사할 만큼 내가 부지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해도 이미 뿌리에서 잘려 나와 곧 시들어버릴, 그래서 생명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좋을 꽃은 고맙게 받고 곁에 두고 싶어서 일부러 사기도 한다.


몇 년 전에 선물할 화분을 사러 화원에 갔는데 아내가 같은 걸 하나 사가자고 했다. 몇 년이 되도록 아직 나무 이름이 뭔지도 모르지만, 자그마한 것이 화려하지도 않고 그다지 손이 많이 갈 것 같지도 않아서 얼른 들고 왔다. 그간 잘 자라더니 얼마 전부터 시들시들해지고 나뭇잎도 거의 다 떨어져 곧 죽게 생겼다. 마음이 쓰여서 며칠 공을 들이니 얼마 되지 않아 새잎이 나기 시작했다. 이젠 완연히 살아난 모양이다. 이만큼만 공을 들여도 살아나는 걸.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


생기를 되찾은 화분을 보면서 문득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떠올랐다. 죽음의 문 앞까지 간 존시가 마지막 담쟁이 잎 하나가 밤새 몰아친 비바람에 떨어지지 않고 견뎌준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처럼, 나도 이 화분에 힘입어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젠 참 별 거에 다 목매고 사는구나.

매거진의 이전글2019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