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Apr 23. 2021

[사우디 이야기 46] 이슬람 성지; 메카ㆍ메디나

사우디 이야기 (46)

선지자 무함마드는 서기 570년에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40세가 되던 610년에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처음 ‘알라’(하나님)의 계시를 받는데, 이후 632년에 ‘메디나’에서 죽을 때까지 23년 동안 ‘알라’로부터 받은 계시를 그의 사후에 제자들이 집대성한 것이 이슬람 경전인 ‘꾸란’(코란)이다.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를 ‘선지자’라고 부르지만, 이와 같은 실상을 감안할 때 그를 ‘이슬람의 창시자’로 불러도 무방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첫 계시를 받고 나서 스스로를 ‘알라의 사자’로 여기고 친구와 친족을 모아놓고 ‘유일신 알라’의 전지전능함ㆍ만물의 창조ㆍ최후의 심판ㆍ천국과 지옥을 설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따르기는커녕 오히려 무시하고 비난한다. 그런데도 그는 ‘메카’의 ‘카바’(신전)를 찾은 순례객들에게 우상 숭배를 중단하고 ‘알라’가 유일신인 것을 믿으라고 설교하는데, 그러다가 탄압을 받게 되고 급기야 622년에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이전한다. 이슬람에서는 이것을 ‘헤지라(성스러운 천도, 聖遷)’라고 하며 그 해를 이슬람의 기원으로 삼는다.


구약성경 창세기 21장에는 사라(아브라함의 아내)가 자기 아들 이삭을 하갈(사라의 하녀이자 아브라함의 첩)의 아들 이스마엘이 희롱하는 것을 보고 분을 내어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기를 요구하는 기사가 나온다.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그때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데려다 놓고 떠난 곳이 ‘메카’이다. (아브라함은 유대교ㆍ기독교ㆍ이슬람교 모두 조상으로 여긴다. 기독교에서는 적자인 이삭이 정통성을 이은 것으로 여기지만, 이슬람에서는 장남인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정통성을 이은 것으로 여긴다.) ‘메카’를 도시로 개발한 것은 이스마엘의 장남 느바욧인데 요르단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인(Nabataeans) 족속의 조상이다. 요즘 사우디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하고 있는 알울라(Al Ula) 유적지도 나바테인 족속이 건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원전 1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메카’에서는 당시에도 ‘카바’를 이미 신성한 곳으로 여기고 숭배하는 풍습이 있었다. 말하자면 ‘메카’는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창시하기 전에 이미 이스마엘의 후손에 의해 세워지고 유지되던 ‘유일신 알라’를 숭배하던 성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무함마드 당시에는 다신교를 섬기는 우상 숭배의 본거지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러니 ‘유일신 알라’를 믿어야한다고 설교하던 무함마드의 눈에 그런 ‘메카’가 개혁해야할 대상으로 비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무함마드는 그곳에서 우상숭배를 중단하라고 설교하는데, 이러한 설교는 우상숭배를 돈벌이로 삼은 사람들의 반발을 사게 되고 결국 무함마드는 그들에 의해 ‘메카’에서 쫓겨나 ‘메디나’로 옮기게 된다.


무함마드가 ‘메디나’로 옮기고 나서도 ‘메카’ 사람들이 ‘메디나’를 계속 공격해오자 무함마드가 624년에 메디나 남서쪽에서 이들을 격파해 무슬림의 사기를 크게 높인다. 그리고 630년에 1만 명의 무슬림을 이끌고 ‘메카’에 무혈 입성한다. 이때 무함마드는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가장 위대하다)”를 외쳤고 무슬림들이 따라 외쳤다고 한다. 근래에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테러를 저지를 때 이 말을 부르짖고 그들이 휘두르는 깃발에도 써놓고 테러 현장에도 곳곳에 이 말을 써놓아 마치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구호인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워낙은 이런 역사가 있는 말이고 지금도 무슬림(이슬람교도)은 하루 다섯 번 기도를 드릴 때 양손을 귀볼까지 올리며 “알라후 아크바르”를 말하며 시작한다.


무함마드는 ‘메카’에 무혈 입성할 때 ‘카바’의 우상들을 다 부숴버렸고 ‘유일신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포한다. 무함마드는 그곳에서 보름을 지내고 ‘메디나’로 돌아온다. 632년 다시 ‘메카’의 ‘카바’에 참배하러 갔던 무함마드는 ‘메디나’로 돌아오던 중 심각한 열병에 걸려 죽고, ‘메디나’에 있는 ‘선지자의 모스크(Prophet’ Mosque)’에 묻힌다.


무슬림들은 기도할 때 반드시 ‘메카’를 향한다. 이슬람 할랄 방식으로 도축할 때도 동물의 머리를 ‘메카’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무슬림에게 ‘메카’ 방향이 매우 중요한데, 이 때문에 이슬람 세계에 천문학이 발달했다고 하기도 한다. 사우디의 모든 호텔은 방마다 천정에 ‘메카’ 방향을 표시하고(Qibla) 탁자 서랍에 ‘꾸란’과 엎드려 기도할 때 바닥에 까는 매트(Sejadah)를 넣어놓는다. 오래전에 노르웨이 오슬로에 출장 갔다가 일정이 뒤엉켜 어쩔 수 없이 상당히 고급스러운 호텔에 묵은 일이 있었는데, 천정에 메카 방향이 표시되어 있었고 탁자 서랍에 꾸란과 매트가 들어 있어서 매우 놀랐다. 중동의 부자 손님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짐작했다.


<메카의 '카바' (신전)>


사실 이슬람 두 성지를 ‘메카ㆍ메디나’로 적고는 있지만 이들이 실제로 발음하는 건 ‘마카ㆍ마디나’에 더 가깝다. 영어로도 ‘MakkaㆍMadinah’로 적는다. ‘메카’는 이슬람 성지 중 하나를 가르치는 말이지만, 어느새 특정한 일에 대해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 있거나 특정한 일이 가장 번창하는 곳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사우디 정부에서는 이를 구분하기 위해 1980년대에 공식 영문 표기를 ‘Mecca’에서 ‘Makkah’로 변경했다.


이와 같이 ‘메카ㆍ메디나’는 이슬람에서, 특히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에서 위상이 매우 높다. 인구로도 수도인 리야드(750만 명), 홍해의 관문인 제다(400만 명)에 이어 ‘메카’(200만 명)와 ‘메디나’(150만 명) 3ㆍ4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사우디 정부에서는 사우디 국왕의 공식 호칭을 ‘이슬람 두 성지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The Custodian of Two Holy Mosque, Makka and Madinah)’로 쓰고 있기도 하다. (십여 년 년 전에만 해도 신문에서 국왕을 호칭할 때 이 긴 명칭을 다 쓰다가 어느 새인가 ‘메카ㆍ메디나’는 빼더니만, 요즘은 어지간한 공식행사에 대한 기사가 아니고서는 이 명칭을 쓰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이슬람 색깔을 빼려는 것인지, 단지 명칭을 간소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2015년 제다 주재 한국총영사의 방문 때 일행으로 처음 ‘메디나’를 방문했는데, 그러고 나서 지금까지 좋이 스무 번 넘게 방문하지 않았나 싶다. 무슬림이 아닐 경우 ‘메카ㆍ메디나’ 방문이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첫 방문은 외교사절을 따라간 것이니 방문 허가를 위해 어떤 절차를 밟았는지 모른다. 이후에 시청 요청으로 찾았을 때는 책임자들과 ‘하람(무슬림만 출입이 허용된 지역)’ 외곽에 별도로 마련한 비무슬림용 회의실에서 만났다. ‘하람’ 안에 있는 시청에 가기 위해서는 주지사의 출입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그 경우 시청에서 차를 보내줘서 그 절차를 건너뛰곤 했다. 한 번은 한국 본사에서 스무 명 넘게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편법으로 넘어가기엔 인원이 너무 많아 정식으로 주지사 출입허가를 얻었다. 하지만 하루 회의하자는 허가를 얻기 위해 꼬박 한 달을 매달려야 했다.


<메디나 '선지자의 모스크'>


업무로 자주 방문하다 보니 어느 샌가부터 시청의 안내 없이도 ‘하람’을 무시로 드나들게 되었다. 그래도 차마 ‘하람’ 한복판에 있는 ‘선지자의 모스크’까지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한 번은 시장에게서 ‘선지자의 모스크’ 하부에 지하수위가 계속 높아져 지하주차장이 침수된다고 해법을 제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하람 관리청’의 안내로 ‘선지자의 모스크’ 안에서 전동카트를 타고 다니며 샅샅이 살펴보기도 했다. 그렇게 다니면서 보니 ‘하람’ 안으로 들어가는데 무슬림인지 확인하는 절차도 하나 없고, 심지어는 ‘선지자의 모스크’에 들어갈 때도 신분증 보자는 사람이 없었다. (여권을 가진 외국인은 순례비자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고 거주허가를 가진 외국인은 이까마에 무슬림 여부를 표시하게 되어 있으니 신분증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메디나 '선지자의 모스크' 출입문>
<지하수위 상승으로 침수가 발생한 메디나 '선지자의 모스크' 지하 주차장>
<메디나 '선지자의 모스크' 경내>


‘메디나’ 도심 한복판에 ‘선지자의 모스크’가 있고 그 주변을 직경 1~1.5km의 순환도로(ring road)가 감싸고 있다. 외곽으로 나가면 역시 ‘선지자의 모스크’를 중심으로 하는 직경 7~8 km의 순환도로가 도심을 감싸고 있는데, 이 안쪽이 무슬림만 출입이 가능한 ‘하람’이다. 무슬림이 아닌 사람이 ‘하람’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주지사의 허가가 있어야 하지만 ‘하람’ 경계에 커다랗게 표지석만 세워놨을 뿐 무슬림인지 확인하는 경우는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숙박은 이보다 엄격해 주지사의 허가가 없으면 호텔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하람’ 외곽에 있는 호텔 중에 예약이 가능한 곳은 메르디앙호텔 뿐인데 하루 숙박비가 20만 원이 넘다보니 출장 갈 때마다 부담스러웠다. 그것도 자주 다니다 보니 요령이 생겨 요 몇 년은 숙박허가 없이도 ‘하람’ 안의 호텔에서 묵는다.


처음에 ‘메디나’에 출장 갔을 때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이슬람 성지답게 리야드보다는 모든 면에서 보수적이고 엄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선지자의 모스크’를 비롯한 이슬람 성소 몇 곳을 빼놓고는 다른 도시와 아무런 차이도 발견할 수 없었다. 거리에 얼굴을 내놓고 다니는 젊은 여인들도 많고, 공개된 장소에서 특별히 남녀가 유별한 모습도 보기 어려웠다. (사우디 내륙에 있는 보수적인 도시인 ‘부라이다’는 여인들이 하나같이 눈만 내놓고 다니고 남녀가 같이 있는 걸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금식월인 라마단이나 순례절인 하지 때는 몰려드는 무슬림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여러 제한조치가 취해진다고는 하는데, 처음 총영사의 일행으로 방문했을 때 빼놓고는 가본 일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무슬림용 도로와 비무슬림용 도로를 구분한 '메카'의 이정표>


그러나 ‘메카’는 이와 크게 다르다. ‘메카’로 들어가는 도로 곳곳에 검문소가 있어서 무슬림이 아니면 통과시켜주지 않는단다. 그래서 이정표에 무슬림용과 비무슬림용 도로를 구분해서 표시하고 있을 정도이다. 라마단(금식월)이나 하지(순례절) 때는 무슬림이거나 사우디 국민이라 해도 순례 허가를 받지 않으면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가보지도 않았고 가본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으니 이렇게 전언을 전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한 번 ‘메카’ 시청에서 폐기물 소각처리와 관련해서 회의할 기회가 있어 잔뜩 기대했던 일이 있다. 출입허가를 얻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아쉽게도 그 기회가 무산되어 ‘메카’를 방문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래서 ‘메카’는 궁금하지만 빈 칸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우디 이야기 45] 교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