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이야기 (47)
무슬림(이슬람교도)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다섯 가지 의무가 있는데 이것을 ‘이슬람의 다섯 기둥(Five Pillars of Islam)’이라고 한다. ‘알라는 유일한 하나님이며 무함마드는 그의 선지자’라는 신앙을 고백하고, 매일 다섯 번 기도하고, 자선을 베풀며, 라마단 낮 시간동안 금식하고, 평생 한 번은 메카를 순례해야 한다.
앞서 설명했지만 메카는 선지자 무함마드가 태어난 곳이고 메디나는 그가 죽어 묻힌 곳이다. 그러나 모든 무슬림이 평생 한 번은 메카를 순례해야 하는 것은 선지자 무함마드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유일신 알라의 신전인 ‘카바’가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카바’를 세웠으며, 노아의 홍수 때도 모두 없어지지 않고 흔적이 남아 있었고, 후일에 아브라함이 이를 재건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순례의 중심에 ‘카바’가 있고, 이 ‘카바’를 일곱 번 도는 것으로 순례를 시작한다.
아무 때나 순례의식을 행한다고 해서 모두 ‘다섯 기둥’의 하나인 순례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헤지라력으로 12월 8일부터 13일까지 엿새 동안 정해진 모든 순서를 마칠 경우만 순례로 인정받는다. (금년 2021년에는 7/18~23에 해당한다.) 이 순례절 기간을 ‘핫지(Hajj)’라고 하고 그 기간 동안 이루어진 순례를 또한 ‘핫지(대순례)’라고 부른다. 순례절이 아닌 때 수행한 순례는 ‘움라(Umrah, 소순례)’라고 구분한다.
2015년 기준으로 전 세계의 무슬림 인구는 18억 명이었으니 지금은 20억 명이 넘을 것이다. 한 해 ‘핫지’를 수행하는 인원이 250만 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모든 무슬림이 평생 한 번은 ‘핫지’를 수행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사우디 정부에서는 2030년까지 이를 500만 명으로 늘이겠다지만 그래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핫지’를 수행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핫지’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우디 정부(순례부, Ministry of Hajj and Umrah)에서 발행하는 ‘핫지 비자’를 얻어야 한다. 사우디 순례부에서는 매년 국가별로 비자 할당량을 결정해 발표한다. 무슬림에게는 평생의 의무가 걸린 일이어서 무슬림 국가에서는 비자 할당량을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려고 할당량 발표를 앞두고 대표단을 파견하는 일이 종종 보도되기도 한다.
사우디 순례부에서는 국가별로 무슬림 1천 명 당 1장 꼴로 ‘핫지 비자’를 할당한다.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네시아로 전체 인구 2억 7천만 명 중에 2억 6천만 명이 무슬림이다. 실제로 2017년에 기준에 다소 못 미치는 22만 1천 장을 할당받았다. 이 나라에서는 매년 3백만 명이 넘는 무슬림들이 ‘핫지 비자’를 신청하며 평균 대기기간이 37년에 이른다고 한다.
이처럼 ‘핫지 비자’를 얻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사우디가 아니라 전 세계 무슬림을 대표하는 기관에서 순례를 관장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물론 사우디는 이런 비판에 아랑곳하지는 않지만 매년 시설을 확장ㆍ개선할 뿐 아니라 교통편을 확충하기 위해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두 성지 메카와 메디나 사이 453km 구간에 시속 300km ‘하라메인 고속철도’를 건설해 2018년부터 운행을 시작했으며, 메카의 관문인 제다 공항에 초현대식 터미널을 건설하고 2020년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외국에 거주하는 무슬림과는 달리 사우디에 거주하는 무슬림은 내외국인 구분 없이 사우디 내무부의 허가만 얻으면 5년에 한 번씩 ‘핫지’를 수행할 수 있다. 함께 일하는 수단인 동료에게 ‘핫지’를 수행했냐고 물으니 네 번이나 다녀왔다면서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여러 자료를 찾아봤지만 워낙 이슬람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정리를 못하다가 ‘핫지’를 네 번이나 수행한 이 동료의 도움으로 대략적인 내용은 정리할 수 있었다.
‘핫지’는 ‘신체가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여행할 능력이 있는 성인 신자’라면 평생 한 번은 해야 하는 의무이다. 놀랍게도 그 이유 때문에 순례를 위해 돈을 빌리거나 집을 비우는 동안 가족들이 평소와 같은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핫지’를 수행해도 무효가 된다.
‘핫지’가 되었든 ‘움라’가 되었든 순례기간 동안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이 상당히 많다. 모든 무슬림 남성은 국적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똑같이 재봉선 없이 통천으로 된 두 쪽의 흰 옷을 입는다. 이를 이흐람(Ihram)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큰 타월 하나로 상체를 가리고 다른 하나로 하체를 가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성은 정숙한 복장을 입으면 된다.
순례는 이흐람을 입고 순례 출발을 선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제다에 출장가다 보면 기내에서 언제나 이흐람을 입은 승객들을 마주친다. 동료에게 왜 메카에 가서 갈아입거나 제다 어디쯤에서 갈아입지 않고 이흐람으로 갈아입은 채 비행기를 타느냐고 물으니 이흐람으로 갈아입는 곳이 정해져있다고 했다. 메카에서 수십km~백km 정도 떨어진 데 지정된 몇 곳에서 이흐람으로 갈아입어야 하고, 이흐람으로 갈아입지 않은 채로 그 지점을 지나치면 순례는 무효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제다공항은 그 지점을 지나쳐 있으니 순례를 무효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그 이전부터 이흐람을 입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카바’가 모셔져 있는 경내에 들어서면 알라에게 자신이 성전에 들어왔음을 고하고 ‘카바’ 주위를 일곱 번 돌며 경의를 표한다. 그런 후 사파(Safa)와 마르와(Marwah)라는 두 언덕을 일곱 번 왕복한다.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아내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을 메카에 두고 떠난 후 하갈이 이스마엘에게 먹을 물을 찾기 위해 나서는데, 그 와중에도 아이를 잃어버릴까봐 걱정돼서 언덕에 뛰어올라 아이에게 별 일이 없는지 살폈다고 한다. 그래서 이것을 기리기 위해 두 언덕을 번갈아 오르는 것이다. 하갈이 천사의 도움으로 물을 얻은 곳을 ‘잠잠 샘(Zamzam)’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이곳에서 샘물이 나온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이 샘물을 마시고 물병에 담는다. 실제로 제다 공항에 가면 순례객 수하물에 ‘잠잠 샘물’이 빠지지 않고 들어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렇게 ‘카바’를 돌고, 두 언덕을 일곱 번 왕래하고, ‘잠잠 샘물’을 먹는 것까지가 소순례 ‘움라’이다. 말하자면 소순례인 ‘움라’는 하루 과정이다. ‘핫지’가 아닌 경우에는 여기까지만 수행한다.
소순례가 끝난 후 대순례 첫째 날이 되면 ‘미나(Mina) 평원’으로 가서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평원에는 사우디 정부가 에어컨을 갖춘 텐트를 약 5만개 마련해 놓는다. 대순례 둘째 날 아침 일찍 ‘아라파트(Arafat) 산’으로 이동해 일몰 때까지 머무른다. ‘아라파트 산’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번제물로 바치려고 한 곳이자 무함마드가 마지막 설교를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한 시간 정도 홀로 기도한다. 자신이 살아온 날과 지은 죄를 반성하고 알라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데, 이를 행하지 않으면 순례 자체가 무효가 된다. 해가 지면 ‘아라파트 산’을 떠나 ‘무즈달리파(Muzdalifah) 평원’으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작은 돌을 줍고 노숙한다. 그리고 다음 날 동트기 전에 ‘미나 평원’으로 이동한다.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미나 평원’에서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번제물로 바치지 못하게 유혹하는 사탄을 돌을 던져 쫓아버렸다고 하는데, 이를 기념해 사탄을 상징하는 돌기둥 3개 중 가장 큰 것을 향해 ‘무즈달리파 평원’에서 주워온 돌 일곱 개를 던진다. 그러고 나서 아들을 기꺼이 바치려 했던 아브라함을 본받아 짐승을 번제물로 삼는 희생제를 지낸다. 이 희생제를 ‘이드 알아드하(Eid Al Adha)’라고 하는데, 순례에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도 세계 곳곳에서 희생제를 지내며 이웃과 음식을 나누며 공동체 의식을 함양한다.
한정된 지역에 사람이 이렇게 몰리다 보니 순례 때마다 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1990년 메카로 향하는 보행용 터널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1,462명이 사망했고 1997년에는 메카 인근 텐트촌 화재로 343명이 사망했다. 사탄에게 돌을 던지는 의식을 치를 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질서 있게 움직이지 않아서 치명적인 압사사고가 자주 일어나는데 1994년과 1998년에 각각 270명, 180명이 사망했고 2015년에는 2천 명 넘게 사망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핫지’나 ‘움라’는 ‘카바’가 있는 메카에서 이루어지지만 순례객 대부분은 무함마드가 묻혀있는 메디나 ‘선지자의 모스크’도 아울러 방문한다. 물론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 의무는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의 순례객이 이곳을 방문하며, 실제로 통계도 그것을 뒷받침한다. 우리 회사에서 메디나 쓰레기 처리계획을 수년간 검토했는데, ‘핫지’로 입국한 순례객이 메카에는 평균 7일, 메디나에는 평균 2일 체류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메디나는 단지 성지 순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흐람을 입지는 않고 그저 평상복으로 방문한다.
메카와 메디나를 잇는 ‘하라메인 고속철도는’ 2009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2018년에 운행을 시작했다. 이는 메카-제다-제다 국제공항-킹압둘라경제도시(KAEC, King Abdullah Economic City)-메디나에 이르는 453km 구간을 시속 300km로 하루 5회 운행하며, 메카-메디나 구간은 2시간 20분 소요되고 요금은 우등석 7만5천 원 일반석 4만5천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