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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pr 16. 2021

[사우디 이야기 45] 교육

사우디 이야기 (45)

2009년 초 사우디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모든 것이 황토 빛이었다. 리야드 공항에서 내려 시내로 들어오는데 그런 광야가 끝없이 이어졌다. 이듬해 그 허허벌판에 타워크레인 수백 대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의 여자대학을 짓는다고 했다. 이 대학을 세운 선왕 압둘라 국왕은 왕자 시절에 외가가 강성한 다른 왕자들에게 밀려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는데, 그때 고모인 누라 공주가 특별히 아껴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은혜를 기려 세운 것이 바로 Princess Nourah University이다. 정원 4만 명, 250만 평 부지에 건물이 600동 넘게 들어서는 엄청난 규모인데 (캠퍼스 안에 모노레일을 운행할 정도이다) 이를 짓는데 2년 남짓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


세계 최대의 여자대학인 Princess Nourah University


사우디는 내륙에 위치한 수도 리야드, 홍해안의 제다, 걸프해안의 담맘ㆍ알코바 세 곳에 인구의 70% 정도가 몰려있다. 그러다 보니 상위 대학인 킹사우드대학(KSU)ㆍ프린세스누라대학(PNU)이 리야드에, 킹압둘아지즈대학(KAU)ㆍ킹압둘라과학기술대학(KAUST)이 제다에, 킹파드석유광물대학(KFUPM)이 담맘ㆍ알코바에 있는 등 모두 이 지역에 있다. KSU과 KAU은 학생 수가 7만 명 내외인데 반해 이름에서 보듯이 석유광물분야에 특화되어 있는 KFUPM은 1만 명, 과학기술 연구중심대학인 KAUST는 1천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 중 KAUST는 내국인은 30%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60여 개국 출신 학생들이다. 사우디의 첫 번째 남녀공학대학이라고도 한다.


King Fahd University for Petroleum and Minerals
King Abdullah Univerist for Science and Technology


사우디에는 대학이 50개 정도 있고 전체 학생은 170만 명 정도로 알려졌다. (예전에는 ‘교육부’와 대학교육을 관할하는 ‘고등교육부’가 따로 있었는데 2015년에 현재와 같이 ‘교육부’로 일원화되었다.) 앞서 언급한 대학은 모두 국립대학이고 따라서 등록금을 내지 않는다. 한국에서 KSU로 유학 온 학생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등록금이 무상인 것은 물론 기숙사를 제공하고 한 달에 30만 원 정도 보조금도 준다. 그러나 사립대학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등록금을 내는데, 대학교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1년 등록금은 인문계 1천5백만 원, 공대 2천만 원, 의대 2천5백만 원 수준이고 대학원은 대학의 두 배가 넘는다.


사우디 대학에서는 영어로 강의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공대의 경우는 대부분이 영어로 강의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영어 강의 수강에 필요한 정도 어학실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해당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1년짜리 예비학교(preparatory)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과나 공과 계열의 학과에는 외국인 교수가 상당히 많고 이들은 대부분 영어로 강의한다. 과학기술에 특화되어 있는 KFUPMㆍKAUST는 교수 다수가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이다. 이는 모든 공과대학이나 과학기술대학 학생들은 최소한 영어 강의를 듣고 이해할 정도는 된다는 말이다. 한 번은 업무 때문에 가까이 지내던 KSU 교수들의 초청으로 여름 현장실습에 동행한 일이 있어 그때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언어 때문에 불편한 일은 없었다. KSU와 KFUPM에 한국인 교수가 몇 분 계신데, 모두들 같은 의견이셨다. 실제로 학생들이 만든 과제물이나 발표물을 봐도 그렇다. 물론 예외적으로 뒤떨어지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마는.


사우디에서는 의사의 경우 국가고시(Saudi Medical License Exam)를 통과해야 의사 자격을 얻지만 변호사나 엔지니어는 자격시험이 없고 관계법령에 따라 구성된 자격심사위원회에서 심사해 자격을 부여한다. 변호사는 대학 법학과 졸업 후 3년 경력, 또는 법학대학원 졸업 후 1년 경력을 보유하고 Code of Law Practice에 의거해 구성된 법무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법무부 자격심사위원회 심사를 통과해야 자격을 얻는다. 엔지니어는 공과대학 졸업 후 The Practice of Engineering Professions Regulating Law에 의거해 구성된 사우디 엔지니어협회(SCE, Saudi Council of Engineers) 산하의 자격심사위원회 심사를 통과해야 자격을 얻는다. 이곳에서는 엔지니어를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자신이 엔지니어인 것을 자랑스럽게 밝히며, 명함에도 이름 앞에 Engineer라는 명칭을 꼭 붙인다.


엔지니어 등록 기준은 외국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그러다 보니 말도 되지 않는 경우가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대학에서 지질학을 대학원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했고 1989년에 기술사 자격(Professional Engineer)을 취득했다. 그러나 SCE에서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엔지니어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의 자격증도, 대학원에서 공학을 전공한 것도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고, 단지 공과대학이냐 아니냐만 따졌다. 결국 엔지니어로 인정받지 못했다. 오기가 나서 명함에 Engineer라고 표시하고 다니지만, 나 같은 경우가 종종 있어서 그런지 아직 SCE 인증여부를 묻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사우디 고등교육은 이곳으로 유학 오는 한국학생이나 졸업생을 채용해야 하는 기업이나 관심을 가질 뿐 교민 대부분은 사우디 대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교민 자녀 대부분은 이곳에서 고등학교까지만 다니고 대학은 한국이나 미국으로 진학하기 때문이다. 실속으로 따지자면 학비도 들지 않고 한국 기업에서 찾기 힘든 희소성으로 보아도 이곳 대학이 더 나을 텐데, 이곳 대학으로 진학시키는 건 고사하고 그렇게 고민하는 경우도 보지 못했다.


이곳 교민들 자녀 중에는 한국 명문대에 진학한 경우가 아주 많다. 물론 그만한 실력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교민 자녀에게 주어지는 특례입학 제도의 영향도 적지 않다. 특례입학은 3년 특례와 12년 특례로 나누어진다. 3년 특례는 ‘고등학교 1학년을 포함해 3년 이상’ 이수할 경우 대학 총 정원의 2% 이내에서 정원 외로 선발한다. 12년 특례는 대학 재량껏 선발할 수 있다. 이때 학생은 이수기간의 3/4 이상, 부모는 2/3 이상 현지에 체류해야 한다. 즉, 학생은 이수기간의 1/4 이상, 부모는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이수기간의 1/3 이상 현지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간혹 이곳에 근무하다가 한국으로 복귀하면서 특례입학 때문에 부인과 자녀만 두고 가려는 경우가 있는데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위배되는 일이어서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12년 특례는 한국에서 학교 다닌 기록이 아예 없어야 한다. 학생 하나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사우디로 이주한 후 다시 1학년에 입학해 12년 24학기를 꼬박 이수했는데도 한국에서 학교 다닌 기록이 남아 있어 12년 특례 자격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이곳의 초중등교육은 한국과 학제가 다르다. 우선 9월에 학기가 시작된다. 한국은 6년-3년-3년 학제인데 비해 이곳은 5년-4년-3년 또는 5년-3년-4년 학제를 따른다. 초중등교육이 12년이라는 건 다르지 않지만 초등교육은 5년이고, 중고등학교 과정은 3년-4년, 또는 4년-3년이다. 이곳 초중등교육기관은 사우디학교와 국제학교로 나뉜다. 사우디학교는 아랍어로 교육하며 영어는 외국어로 가르친다. 국제학교는 이와 반대로 영어로 교육하고 아랍어를 외국어로 가르친다. 리야드에는 한국 교육부에서 설립한 초등교육과정의 한국학교가 있다.


국제학교는 영미계 학교와 아랍계 학교로 나뉜다. 리야드의 대표적인 영미계 학교는 아메리칸 스쿨과 브리티시 스쿨이 있는데 등록금이 어마어마하다. 아메리칸 스쿨의 경우 입학금이 1천만 원, 1년 등록금은 유치원 과정이 1천5백만 원, 초중고등학교 과정이 3천만 원 선이다. 브리티시 스쿨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아랍계 (딱히 아랍계라기보다는 영미계 학교를 제외한) 국제학교는 이에 비해 학비가 훨씬 적다. 학교별로 편차가 크기는 하지만 1년 등록금이 대체로 유치원 과정은 2백만 원, 초중고등학교 과정은 5백만 원 정도이다. 한국에서는 올해부터인가 초중고등학교 전 과정 모두 무상교육이 실시될 예정이고, 작년의 경우에도 고등학교 등록금이 연 160만 원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이 금액도 결코 작은 건 아니다.


한국학교의 경우 등록금이 연 120만 원 수준인데, 한국 교육부에서 학교운영 예산의 대부분인 연 4억 원 정도를 내려 보내고 등록금 수입은 2천만 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무상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의무교육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한국학교의 커리큘럼이 다른 국제학교에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졸업식 때 졸업생이 각자 준비한 것을 발표하는데, 한국의 초등학교 졸업생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한다. (직접 보지는 못했고 영상으로만 봤는데, 충분히 그럴 만 했다.)


교민이 많은 나라에서는 사교육이 성행한다고 한다. 손녀들이 사는 프랑크푸르트에도 과외공부는 물론 한국 학원이 여럿 있고, 학원 선생님들의 보수도 상상을 뛰어넘는다고 했다. 강남 어느 학원가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곳 리야드는 워낙 교민도 적고 (1천 명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외수업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방학 때가 되면 이곳 학부모들은 으레 강남 학원가에 두어 달 방을 얻어놓고 학생들을 학원에 보낸다. 학원비도 많고 강남이니 방세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체로 방학 때 천만 원 정도는 든다는 것 같다. 회사에서 연 1회 한국행 항공권을 제공하고 있으니 항공료를 빼고 이 정도라는 것이다.


작년에 코로나 사태가 불거지면서 교민 대부분이 방학에 한국에 가지 못했는데, 그 대신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는다고 했다. 요즘에는 학부모들이나 학생들 모두 영상통화에 익숙해 있어 효과가 꽤 좋은 것 같다. 수업료가 어느 정도인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항공료에 방세에 학원비 생각하면 거저라고 생각할 정도가 아닐까 싶다. 경제적으로도 크게 절약이 되고,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효과도 기대를 충족시킬 정도라면 앞으로는 방학마다 자녀들 데리고 학원가에서 난민생활을 하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의 순기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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