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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pr 29. 2021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민주주의의 감별기준

스티븐 레비츠기ㆍ대니얼 지블렛

박세연 옮김

어크로스

2018년 10월


들어가며


바이든이 대통령 취임 백일을 맞았다. 이를 앞두고 잇따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 일단 합격점을 얻었고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는 50%를 넘어서고 있다. 선거운동 때 미국을 끌고 가기엔 너무 나이든 게 아니냐는 염려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지만, 취임 후 백일 사이에 평생 정치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 그리고 국정 운영의 한 축을 담당했던 사람으로 쌓아올린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건’ 자체도 그렇고 재임기간동안 그가 일으킨 수많은 논란을 지켜보면서 과연 미국이 민주주의 선진국이 맞는지, 내가 뭘 잘못 알고 있었던 건 아닌지 회의가 들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 머리맡에 놓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 소식을 들은 이후 60년 가까이 지켜본 미국 대통령 중에 그처럼 드러내놓고 국가 분열을 조장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그것이 일시적인 일탈인지, 그가 물러나면 이전으로 회복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여러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따라야 할 민주주의 모델이 미국이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미국 말고도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나라가 여럿 있다. 하지만 그런 나라 중에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로서는 미국만한 나라가 없는데다가 우리가 그 모델을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최근 몇 년 미국 정치계에서 일어난 현상이 과연 일반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돌출적인 특수한 현상인지에 따라 우리 정치의 앞날을 예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우리 정치가 그에 못지않은 극단적인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과 이번에 치러진 보궐선거 와중에 이 책을 인용한 글을 몇 번 읽게 되었다. 제목 그대로 민주주의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 이유와 과정을 찾아내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길이 되지 않겠나 싶었다. 그리고 당면하고 있는 우리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잣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각 정당에서 말하고 있고 행하고 있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감별기준으로서 말이다.


민주주의라는 착각


저자는 민주주의가 쿠데타처럼 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도 많지만 무너진 줄도 모르는 사이에 무너진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선출된 권력이 눈에 잘 띄지 않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서서히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그 방식은 의회나 법원의 승인을 얻어 이행되기 때문에 심지어 합법적이기까지 하다. 쿠데타나 계엄령 또는 헌정질서의 중단처럼 독재의 경계를 넘어서는 명백한 경계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스스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다. 저자는 차베스 집권 당시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민주주의 상태를 1점과 10점 사이에서 평가하도록 했는데 그 결과 응답자 가운데 51%가 8점 이상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는 예로서 이런 설명을 뒷받침한다.


또한 저자는 이런 반민주적인 집단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고 설명한다. 헌법과 선거시스템, 그리고 다양한 제도를 바꿈으로써 저항세력을 약화하고 경쟁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운동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종종 ‘공공의 선’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며, 이들은 매번 ‘국민의 뜻’이라는 명분으로 이를 정당화하고, 심지어는 ‘국민의 뜻’이 헌법 위에 있는 것으로 여긴다고 말한다. 그러니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경쟁자에게 국가적 위협세력이라는 낙인을 찍음으로서 그들의 권력집중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설명은 매우 익숙하다. 마치 우리나라 어떤 정치평론가가 우리 현실에 대해 쓴 책이라고 해도 될 만큼 말이다.


‘전제주의자’에 대한 감별기준


저자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사람들을 ‘전제주의자’로 여긴다. 그리고 그런 전제주의 행동을 가리키는 주요한 신호를 네 가지로 정리해 표로 만들고, 매 사례를 검토할 때마다 이를 기준으로 그 사례가 전제주의에 해당하는지 판단한다.


1) 민주주의 규범 거부; 헌법을 부정하거나 이를 위반할 의사를 드러낸 일이 있는가? 선거제도를 철폐하고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이 있는가? 권력을 잡기 위해 헌법을 넘어선 방법을 시도하거나 지지한 일이 있는가? 선거 불복 등 선거제도의 정당성을 부정한 일이 있는가?


2) 경쟁자에 대한 부정; 경쟁자를 국가전복세력이나 헌법질서의 파괴자라고 비난한 일이 있는가? 경쟁자가 국가안보와 국민의 삶을 위협한다고 주장한 일이 있는가? 상대 정당을 근거 없이 범죄 집단으로 몰아세운 일이 있는가? 경쟁자가 외국과 손잡거나 외국의 스파이라고 주장한 일이 있는가?


3) 폭력 조장이나 묵인; 폭력조직과 관련되어 있는가? 개인적으로 혹은 정당을 통해 폭력을 지원하거나 부추긴 일이 있는가? 지지자들의 폭력행위에 암묵적으로 동조한 일이 있는가? 과거나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정치폭력을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걸 거부한 일이 있는가?


4) 언론이나 경쟁자의 기본권 억압; 정치적인 비난을 금지하는 것과 같은 시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정책을 지지한 일이 있는가? 경쟁자나 시민단체나 언론에 법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협박한 일이 있는가? 과거나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정부의 억압행위를 칭찬한 일이 있는가?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이며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2016년 미국 대선을 미국의 민주주의 규범이 허물어진 결과로 이해한다. 트럼프 취임 이후 2년 동안 다른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는 전조였던 행동을 미국 정치인들이 행하는 전례 없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주의 실험실이었던 미국이 전제주의의 실험실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닐까,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가장 성공적인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붕괴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한다. 그 염려가 이 책을 집필한 동기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의 행동이 저자가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전제주의 감별기준에 부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놀라운 것은 이 또한 우리 정치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민주적인 행태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굳이 차이를 꼽자면 트럼프는 스스로 선봉장이 되어 그런 행태를 저질렀으나 우리는 측근이나 극단적인 지지자들에 의해 그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정도가 아닐까 한다.


민주주의 유지 동력


그렇다면 트럼프가 와해시키기 전까지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유지되어 온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트럼프 같은 극단주의 선동가가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수정헌법 때문이었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아무리 잘 만든 헌법이라고 해도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법이란 워낙 완전할 수 없는 것이어서 수많은 공백과 애매모호함이 존재하며, 따라서 다양한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농후하고, 문구를 있는 그대로 기계적으로 해석할 경우 법의 취지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성문화된 것은 아니지만 오래도록 유지되어온 규범이 제대로 지켜져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이 규범이 미국 민주주의 작동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규범이 잘 지켜진 동력으로 ‘자유와 평등에 대한 확고한 믿음, 역사적으로 탄탄한 중산층, 높은 수준의 부와 교육, 광범위하고도 다각화된 민간 영역’을 꼽는다.


사실 미국 대통령의 연임 제한은 법률로 정한 것이 아니라 ‘자제의 규범’으로 이러져 내려온 것이다. 1952년 수정헌법에 연임 제한 규정이 추가되기 전까지 헌법에서 이를 명시하지 않았다. 다만 조지 워싱턴이 두 번 임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 선례로 남았을 뿐이다. 토머스 제퍼슨도 그런 건전한 선례를 무시하면서까지 두 번의 임기를 연장하고 싶지 않다며 스스로 물러났고, 그 이후의 야심 있고 인기 높은 대통령조차도 선례에 도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례가 미국 공화국 시스템의 일부로 자리 잡은 것이다.


루즈벨트는 압도적인 차이로 재선에 성공했고 민주당 인사들은 양원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미국 대통령 중 그처럼 강력한 우위를 누린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는데도 루즈벨트의 사법관련 개혁안은 전면적인 반대에 부딪쳤다. 언론이 가차 없는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의회 또한 즉각 반발했다. 공화당은 물론이거니와 민주당에서도 많은 의원이 반대했다. 사실상 독재를 향한 걸음, 미국 역사상 법치주의에 대한 가장 중대한 도전이라고 경고했기까지 했다. 뉴딜정책의 충실한 지지자들조차 등을 돌렸다.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대통령을 정치권과 언론이 자제시킨 것이다.


민주주의 유지 동력으로서의 정당


그런 선례는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다. 언제나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야심을 가진 선동가는 있게 마련이다. 저자는 미국인들은 종종 그들의 정치문화가 전제주의 위협에서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잠재적 독재자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사회를 지켜준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지 뿐 아니라 민주주의 문지기, 다시 말해 미국의 정당 체제도 큰 몫을 차지했다고 말한다.


정당이 문지기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정당 스스로 극단주의자를 걸러낼 수 있어야 하고, 반민주적인 정당이나 후보자와 모든 연대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럼에도 극단주의자가 유력 후보자로 떠오를 경우 다른 정당과 연합전선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의 정당은 상당 기간 동안 그런 기능을 발휘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도전하는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정당은 서서히 무력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를 대신할 수 있는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고 그런 배경에서 각 주의 유명인사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에는 이러한 시스템으로 극단주의자를 걸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 시스템도 오래 가지 못해 유명인사 대신 정당지지자를 선출하게 되었다. 정당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함으로써 극단주의자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게 막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됨으로서 그 장치가 더 이상 문지기로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정당이 극단주의 후보를 배제하는 기능을 잃게 된 데는 두 가지 중요한 직접적인 이유가 있는데, 선거운동에 필요한 외부자금을 훨씬 쉽게 끌어들일 수 있게 되어 자금이 풍부한 후보자들이 약진할 수 있었고, 대체 언론 특히 케이블뉴스와 소셜미디어의 성장으로 쉽고 빠르게 인기와 대중적 지지를 끌어 모을 수 있데 된 그것이다. 그로 인해 극단주의 후보자의 등장을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극단주의 후보자를 허용하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당파적 양극화’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양극화는 정책 차이를 넘어서 인종과 문화에 걸친 본질적인 갈등으로까지 뻗어있어 민주주의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통계를 인용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설명한다.


“1960년 정치학자들은 미국 국민을 대상으로 자녀가 상대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면 기분이 어떨지 물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 중 4% 공화당 지지자 중 5%가 언짢을 것이라고 답했다. 2010년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 중 33% 공화당 지지자 중 49%가 다소 혹은 상당히 불쾌할 것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이나 공화당을 지지한다는 말은 단지 정치 성향만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까지 드러내는 것이 되었다. 2016년 Pew Foundation이 실시한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의 49% 민주당 지지자의 55%가 상대 당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며, 정치 분야의 사람들은 민주당의 70% 공화당의 62%가 그렇게 느낀다고 답했다.”


저자는 이를 “그동안 공화당은 보수주의를 민주당은 진보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나 2천년으로 접어들면서 민주당 내 보수주의자가 사라졌고 공화당 내 진보주의자가 사라졌으며, 그 결과 정당 간의 공통분모도 줄어들었고 정당 간 협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또한 두 정당은 인종과 종교를 기준으로 확연히 분열되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미국의 민주주의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침범되기 시작했고 2000년 들어서 가속화되고 있으며, 특히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많은 공화당 인사들이 민주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 자제의 규범을 저버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트럼프에 의해 가속화되었을지는 몰라도 그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민주주의의 회복 가능성


저자가 이 책을 쓸 당시 트럼프의 위상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사실 선거운동 당시 트럼프가 코로나에 감염되기 전까지는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저자는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민주주의가 신속히 회복되기를 바라지만 그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트럼프는 재선에 실패하고 바이든 정부가 들어섰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 민주주의는 회복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트럼프의 재선이 실패로 드러나자 그를 지지하는 극단주의자들이 대선을 부정선거로 몰아붙이고, 패배가 확정된 상태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소송을 이어갔다. 현직 대통령이 분노한 극단주의자들을 부추겨 의사당 난입을 독려하는 전대미문의 난장판이 벌어졌다. 이미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지 백일이 넘은 오늘까지 트럼프가 시원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기억이 없다. 지금 같아서는 똑같은 문제가 4년 후에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민주주의가 회복의 길에 들어섰다고 보는 게 가능한 일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분명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극단주의자인 트럼프를 정치 무대에서 퇴장시키기 위해 어떻게 연합할 것인지를 제시할 뿐이다. 아마 당시로서는 미국 민주주의의 회복보다는 그의 선행조건인 트럼프 퇴진에 마음이 급해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행간에 담긴 저자의 판단, 또는 기대를 읽어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2016년 선거 이후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민주당도 공화당처럼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재검표를 실시하고 부정선거를 조사하고 선거인단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하며, 법정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이 경우 우군이 될 수 있는 여당 안의 반대파조차 야당의 강경한 태도 때문에 단결하게 될 뿐 아니라 친정부 세력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이들을 탄압할 수 있는 빌미만 만들어준다고 지적한다. 설령 강경전술을 통해 트럼프를 무력화하거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그로 인해 다음 정권이 가드레일이 사라진 민주주의를 물려받게 만들어 오히려 당파적 적대감과 규범 파괴가 더욱 고착화될 것으로 예측한다.


과연 저자의 예측이, 기대가 맞을 것인가? 나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선거에 졌을 때 그렇게 하지 않았고,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해 트럼프 측이 같은 방식을 썼을 때 역시 이를 강제적으로 제압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바이든 정부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가며


글의 서두에서 말한 것 같이 미국 대선과 이번 보궐선거를 보면서 들었던 여러 가지 염려와 회의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책 곳곳에 서술된 내용이 글자만 바꾸면 바로 우리 사례가 될 것 같은 부분을 적지 않게 확인했다. 또한 ‘전제주의자’의 감별기준이 된 정치행위를 보면서 여야 할 것 없이 현 우리 정치권을 좌지우지 하는 인사들 대부분이 그 부류에 속한다는 불편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보궐선거는 보궐선거일 뿐이고 문제는 일 년 후로 다가온 대선이다. 지금으로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희망을 걸기 어렵다. 결국 이번 대선 또한 최선의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후보를 탈락시키는 선거가 될 모양이다. 가능성은 없으나 나서줬으면 싶은 사람이 몇이 있기는 하다. 가능성이 없으니 그들이 힘을 합치면 좋겠다. 하지만 추구하는 바가 다르니 그들이 과연 힘을 합칠 수 있을까 심히 염려스럽다. 이제 그들에게 저자의 주장을 빌어 당부를 전하고자 한다. 더 이상 미국 민주주의가 망가지는 걸 볼 수 없어 트럼프 재선을 막고자 민주당 지지자에게 보낸 저자의 기대와 격려가 담긴 조언이다.


“민주당이 상호 관용과 자제, 그리고 규범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때 다음 대통령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끌어내리려는 야당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트럼프보다 훨씬 위험한 대통령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반트럼프 세력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광범위한 연합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물론 이는 매우 힘든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동안 관심을 쏟아왔던 다른 사안을 잠시나마 제쳐두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진보운동가들이 낙태의 권리나 단일 의료보험과 같은 민감한 사안을 연합 조건으로 내세운다면 광범위한 연합전선을 절대 형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인내하고 힘든 양보를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핵심목표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공동의 도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서로 간의 차이를 잠시나마 접어두자는 의미다.”


당부하노니, 비열함을 비열함으로 맞서지 말 것이며,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서로의 차이를 잠시 접으라.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져오며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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