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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y 03. 2021

클로리스

견딘다는 것, 그리고 끝내 견뎌낸다는 것

라이 커티스

이수영 옮김

시공사

2020년 12월


클로리스, 루이스, 그리고 머베크


초등학교 교사이자 사서로 근무하다 은퇴한 72세의 클로리스는 작은 목장을 운영하는 남편과 50년 넘게 텍사스 작은 마을에서 살아왔다. 여행다운 여행을 가보지 못했던 이들 부부는 친구가 여행 다녀온 걸 자랑하는 이야기를 듣고 몬태나 비터루트 국립공원에서 며칠을 보내기로 한다. 이를 위해 경비행기를 대절해 날아가다가 깊은 산속으로 추락한다. 조종사와 남편은 죽고 혼자 남은 클로리스는 야생의 자연에서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한다. 야생동물에게 쫓기고, 비탈에서 미끄러져 벼랑으로 떨어지고, 급류에 휩쓸리고, 갑작스러운 추위에 떤다. 그런 와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의 도움으로 허기를 면하고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결국 80여일 만에 스스로 귀환한다.


비터루트 국립공원 산림경비대원인 루이스는 경비행기 추락으로 사고를 당한 클로리스의 구조 요청을 받는다. 그는 남편이 자기 말고도 네브래스카와 몬태나에 아내를 둔 3중혼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혼한지 3개월 된 여인으로, 경비대원으로 11년째 근무하고 있다. 메를로 와인을 입에 달고 살며, 수색구조대원인 블루어와 함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클로리스를 찾는 일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손이 축축해지는 게 싫어서 강박적으로 백묵가루를 손에 묻히는 블루어, 블루어가 데리고 온 딸 질과 수색 과정 내내 함께 한다. 정부에서 파견한 수색팀이 해산되고 난 후에도 주변 사람들을 모아 더욱 깊은 곳까지 수색한다.


영화관 매표원으로 일하던 머베크는 여름 캠프에서 열두 살 소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해고 되고 영화관에서도 비슷한 일로 해고되었다. 체포되거나 기소된 적은 없지만 조사를 받기는 했으며, 소녀용 속옷을 산 일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FBI는 그가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열 살 소녀를 납치한 용의자로 추측하고 수배한다. 이를 피해 비터루트 국립공원으로 숨어든 머베크는 경비행기 추락 사고를 목격하고 무엇이라도 건질까하는 기대로 추락 지점을 찾았다가 클로리스가 살아남은 것을 발견한다. 숨어서 먹을 것과 불 피울 것을 마련해주던 그는 결국 클로리스와 마주앉게 되지만 자기가 왜 그곳으로 숨어들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오두막에서 클로리스와 한 달 남짓 시간을 보내던 그는 오두막 화재로 큰 화상을 입고 결국은 숨을 거둔다. 머베크가 납치한 것으로 여겨지는 소녀는 클로리스가 이 글을 쓰고 있는 20년 후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소설이 말하지 않는 것


미국 남부 텍사스에서 살다가 북동부 몬태나에서 사고를 당한 클로리스는 북서부 버몬트 요양원에서 삶을 마무리하며 이 글을 쓴다. 남부 멕시코 국경 근처 피닉스에서 소녀 납치사건의 용의자로 수배된 머베크는 북동부 비터루트 국립공원으로 숨어든다. 텍사스에서 몬태나로 여행간 것은 경치 때문이라고 하지만 텍사스 살던 사람이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버몬트로 옮겼다거나 수배를 피해 피닉스에서 비터루트로 숨어든 것은 뜬금없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거리의 열 배가 넘는 먼 곳이니 말이다.


루이스는 끊임없이 메를로 와인을 마신다. 와인을 박스로 사오고 병 채로 마신다. 그런 상태로 일하고 운전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고 작가도 그것을 문제로 여기는 것 같지 않다. 블루어는 축축해지는 게 싫다고 매번 백묵가루를 손에 묻힌다. 그리고 그렇게 백묵가루 묻은 손으로 사방에 백묵가루를 묻힌다. 블루어의 아내는 생전에 그것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뭔가 등장인물을 설명하려는 것 같기는 한데 아둔해서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루이스는 희박한 생존 가능성에도 집요하게 클로리스를 구출하기 위해 힘쓴다. 그러나 정작 클로리스와는 만나지 못한다. 클로리스는 그런 루이스의 노력을 알고 그를 찾지만 만나지도 못하고 20년 후 이 글을 쓰기까지 소식도 듣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이 수색에 나섰지만 클로리스는 스스로 귀환한다. 많은 이들이 노력이 클로리스의 귀환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소설은 클로리스와 루이스를 중심으로 하는 에피소드를 번갈아 배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왜 두 사람이 끝내 만나지 못하는지, 왜 많은 이들의 노력이 귀환으로 이어지지 않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고통을 견딘다는 것


‘책걸상’이라는 독서 방송을 들으면서 오랫동안 손 놓고 있었던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졸업하고 난 이후로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다. 평생 보고서를 쓰고 살아오다 보니 글을 정보전달의 도구로만 여겼던 모양이다. 그렇게 소설을 다시 읽게 되기는 했는데 몸에 밴 습관은 달라지지 않았는지 읽으면서도 뭔가 정보가 될 만한 것이 없는지 하다못해 교훈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지 살피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 대해 “절체절명의 상태에 있는 주인공이 겪는 긴박한 상황과 그에 대처하기 위해 내리는 판단을 건조하게, 하지만 짧고 긴장감 있게 표현했다”는 평가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말하자면 ‘상황에 대처하는 지혜’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시선은 읽는 내내 상황과 판단을 쫓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클로리스는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모험을 건 일도 없고 과감하게 포기한 것도 없었다. 그저 상황을 따라갔을 뿐이다. 그리고 80여일이나 되는 긴 시간동안 끔찍한 고통과 공포를 견뎌낸다. 견딘다는 것, 그리고 끝내 견뎌낸다는 것. 어쩌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상황을 이겨낸 판단’이 아니라 ‘상황을 견뎌낸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포기하고 싶었던 유혹이 없지는 않았다. 걸을 수 없어서 뱀처럼 배를 깔고 기어야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상황에서 남편과 함께 죽었더라면 더 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클로리스는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죽음을 선택한다. 스타킹으로 올가미를 만들고, 올가미에 나무에 달고, 거기에 머리를 넣는다. 그러나 자살은 무위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러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그리고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위기를 당한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사람도 있고, 적절한 판단으로 지혜롭게 극복하기도 한다. 반면에 위기를 넘지 못해 낙오하기도 하고 때로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그저 견딘다.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낸 힘으로 삶을 이어나간다.


작가는 클로리스의 입을 빌려 그런 끔찍한 고통을 겪고 나온 이래 2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어느 누구도 살아갈 그럴듯한 이유를 찾을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사람은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으로 소설을 마무리한다. 결국 작가의 관심은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판단’이 아니라 ‘지난한 고통을 견뎌낸 것’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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