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론

싫다고 말하는 것

구역예배 나눔

by 박인식

온라인 예배가 일상화 된지 일 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이제는 구역예배도 줌으로 드립니다. 저희 구역장께서 구역예배 때 십 분 정도 시간을 맡으라고 하셔서 얼마 전부터 함께 생각해볼만한 주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 금요일에 구역예배가 있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조해진 작가의 소설 ‘단순한 진심’과 오래 전에 읽었던 김지혜 교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바탕으로 우리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차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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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걸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권력이라고 합니다. 심한가요? 그러면 이렇게 바꿔서 이야기해보지요. 여러분은 싫으면 싫다고 말하세요? 아니면 싫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나요? 그럴 때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건가요, 아니면 못하는 건가요? 하지 못하는 거라면 왜 하지 못하는 건가요?


최근에 아내와 아주 인상 깊게 읽은 소설이 하나 있습니다. 서너 살 때 프랑스로 입양 간 사십 대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여인은 철길에 버려진 기억을 더듬으며 한국에 옵니다. 그리고 입양아로 살던 시간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나는 양부모에게 원하는 것을 요구하며 떼쓴 적이 없다. 비싼 학용품, 여행, 왁자지껄한 생일파티 같은 것. 몸살 기운이 있어도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잠든 척했고, 같은 반 남자아이들에게 인종차별 섞인 성희롱을 당해도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외식이라도 하는 날엔 양부모가 고른 것보다 싼 음식을 찾느라 메뉴판을 샅샅이 살폈다. 양부모가 선생님에게 불려가 귀찮은 일을 당하지 않도록 모든 규율에 순종했다.”


그리고 자기를 버린 엄마를 왜 만나고 싶어 했는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원하는 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 순간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만인 것을 눈치 보지 않고 표현하는 것, 왜 버렸고 왜 다시 찾지 않았는지 아픈 마음을 숨기지 않은 채 물어보는 것. 혹시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런 게 하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아무리 사랑을 받고 자랐더라도 자기가 버려졌다는 기억은 벗어나기 힘든 굴레입니다. 그래서 많은 입양아들이 다시 버려지지 않도록 모든 것을 절제하고 삽니다. 이 여인은 혈육을 찾으면 다른 게 아니라 늘 감추고 살았던 자기를, 자기감정을 내놓고 싶었다고 고백합니다.


사장이 어떤 직원을 싫다고 말할 때, 선생님이 어떤 학생을 싫다고 말할 때, 이건 단순한 개인 취향이 아니라 바로 권력 그 자체가 됩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싫다”고 하는 말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이 싫다”고 하는 말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이 “난민이 싫다”고 하는 말은 난민이 “한국인이 싫다”고 하는 말과 같을 수 없지요.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방송에서 어떤 소수집단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그 소수집단을 사회 바깥으로 밀어내는 신호”라고 말입니다.


여러분과 생각이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형편이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그래서 불편하십니까? 그래서 싫다고 말하고 싶으십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말하십니까? 그럴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권력을 가진 겁니다. 그리고 이미 그 권력을 사용한 겁니다. 차별이나 폭력이 대단한 것 같지만, 별 거 아닙니다. 싫어서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거, 그거 멋있는 거 아닙니다. 그게 권력이자 차별이고, 또한 폭력입니다.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했다고 하십시다. 물론 칭찬하고 격려하는 뜻에서 한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에게 아주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말일 수 있습니다. 엉뚱한가요? 아니요.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건 장애인의 삶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기준으로 남의 삶에 가치를 매기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지난 주 예배 때 들었던 간증에서 입양한 자식이 장애인이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비교하는 게 감사의 제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다 아는 일입니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대중 앞에서 자식이 장애인이 아니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설교단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건 차별을 넘어선 범죄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멀리 나왔습니다. 그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차별은, 그리고 폭력은 이렇게 우리 삶 곳곳에 매우 은밀하고 집요하게 스며들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문제인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누군가가 싫어서 싫다고 말하기 전에,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그게 권력일 수 있고 폭력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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