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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Review

소금 눈물

화염의 바다

by 박인식

피에트로 바르톨로

한뼘출판

2020년 7월


2015년 9월, 터키 해변에 밀려온 어린아이의 시신 사진이 세계 모든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전쟁을 피해 가족과 함께 소형보트에 몸을 의지하고 시리아를 탈출했지만 배가 전복되어 엄마와 함께 숨진 알란 쿠르디라는 세 살짜리 어린아이였다. 이 때문에 많은 나라 많은 사람들이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난민 문제를 남의 일로만 여겼던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관련해 많은 기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내전을 피해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한동안 몸살을 알았다. 그때 입국했던 예멘인이 ‘불과’ 500여명이었다.


2010년 봄,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격랑으로 몰아넣었던 ‘아랍의 봄’ 혁명의 여파로 많은 아랍 국가들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갔다. 이로 인해 수많은 난민이 생기고, 그 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난민이니 여권인들 제대로 있었겠으며, 여권이 있다한들 그 난민을 받아줄 나라는 또 어디 있을까. 그렇게 흩어진 난민들은 작은 보트에 몸을 의지해, 때로는 폐선에 가까운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넜다. 유럽으로 가면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일념으로.


지중해 한복판, 이탈리아 땅이지만 북아프리카에서 더 가까운 람페두사라는 작은 섬이 이들의 첫 번째 목표지였다. 넓이라고 해봐야 여의도 세 배가 조금 안 되고 5천여 명 주민이 사는 좁은 섬에 지난 20년간 난민 40만 명이 상륙했고, 그 과정에서 15,000명 정도가 목숨을 잃었다.


저자인 피에트로 바르톨로는 이 섬에서 태어나 이 섬에서 의사로, 의료책임자로 제일 먼저 난민을 만나고, 그들을 치료하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한다. 어부의 아들로 자라난 그는 난민들을 구조하는 일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다. 저자는 평생 그 일을 해왔음에도 배 안에 짐짝처럼 내던져져 숨도 못 쉬고 몸부림치며 죽어간 시신을 확인하는 일, 물에 빠져서도 붙들고 있던 자식을 기진하여 어쩔 수 없이 떠내려 보내고 고통스러워하는 부모를 보는 일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흔히 난민들의 어려움은 그저 바다를 횡단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다를 건너는 것은 마지막 단계일 뿐이다. 그들은 “사막은 지옥”이라고 말한다. “사륜구동 차에 짐짝처럼 잔뜩 실려서 물도 마시지 못한 채 달려가야 하고, 자세를 잘못 잡으면 차 밖으로 튕겨 나가서 죽음을 맞기 십상이다. 물이 떨어지면 살아남기 위해서 오줌을 마실 수밖에 없다. 리비아에 다다르면 그 악몽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또 다른 고난의 시작일 뿐이었다. 감방에 갇히고, 가혹행위를 당하고.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그런 고통을 견뎌내야만 배를 탈 수 있다. 그리고 바다에서 죽지 않아야 마침내 육지에 도착해서 다시 삶을 시작하리라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난민들은 비싼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쪽 콩팥을 판다. 매일 무수한 사람이 그런 일을 한다. 저자는 그것을 믿고 싶지 않았고 그저 과장이기를 바랐지만, 난민들을 검진하면서 그런 사실을 확인하고 분노한다. 그들은 탈출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르지만 아무도 그 희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장기밀매와 관련해서 무시무시한 비즈니스가 벌어지고 있는 걸 확인한다. 세계보건기구가 서구에서 이식되는 콩팥의 10%가 불법 적출이라고 발표한 일도 있단다. 충격적인 것은 그 모든 일의 배후에 의사와 전문기술자, 생체정보 분석가 네트워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떠밀려온 난민을 살리려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는 그 여비를 마련하려는 사람의 장기를 불법 적출해 자기 배를 불리는 의사가 있다는 말이다.


람페두사의 임시 난민캠프 수용능력은 750여명에 불과하다. 식량과 의약품이 부족하고 위생환경도 열악하다. 그런 섬에 매년 수만 명 난민이 상륙한다. 결국 모든 부담은 주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그곳 주민들은 힘을 다해 난민을 돕고, 난민을 실은 배가 풍랑으로 좌초되거나 침몰되기라도 하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들을 구조할 뿐 아니라 희생자마저 찾아내려고 애쓴다. ‘검안이 끝난 시신을 잘 씻기고 정성을 다해 관에 모시는 일’을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고투를 벌였던 사람들의 존엄성을 지키고 그들에 대한 존중을 표시하는 일로 여겼다.


그렇다 해도 모두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섬에 상륙하는 난민이 늘어나면서, 또는 알려지지 않아도 좋을 정보나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나돌면서, 난민캠프 근처에 있는 학교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일도 생겼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탈리아 정부는 난민을 시칠리아 본섬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튀니지에서 건너온 난민들에게 6개월짜리 비자를 발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EU국가 사이에 자유여행을 보장한 셍겐 조약 때문에 불법이민자들이 이웃 국가로 퍼져나갔고, 프랑스를 비롯한 이웃 국가들은 이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표출하고 이탈리아의 연대요청을 팔짱을 낀 채 바라보기만 했다.


1997년 발효된 더블린 규약에 따르면 난민이 처음 발을 디딘 나라에서만 망명을 신청할 수 있고, 최초로 도착한 나라에서 난민 관리에 필요한 지문 등 신원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해야 한다. 말하자면 난민에 대한 부담을 오롯이 도착 국가에서 져야한다는 말이다. 급기야 이탈리아 정부는 북부연합당과 보수당의 압력에 밀려 “불법 체류자를 실은 배는 이탈리아 영토에 정박할 수 없다”는 피니보씨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배를 타고 온 난민들이 육지에 상륙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배가 전복됐을 때 인근을 지나던 선박이 구조에 나서는 것을 망설이기까지 했다.


2013년 10월 3일 람페두사 섬 인근 바다에서 난민을 가득 태운 배가 침몰했다. 밀입국을 위해 리비아를 출발한 작은 배는 목적지인 해안을 불과 몇 백 미터 앞두고 가라앉았고, 배에 타고 있던 승객 36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람페두사의 어부들이 근처를 지나다 이를 보고 해양구조대에 긴급구조를 요청하고 50여 명을 직접 구조했다. (이후 이탈리아 국회에서 난민구조를 펼친 어부들과 의사들을 노벨평화상에 추천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양구조대는 구조를 요청한지 한 시간이나 지나 도착했고, 서두르지도 않았다. 오히려 난민구출 작업을 하는 어부들에게 피니보씨법을 들어 난민들로부터 떨어질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국회가 노벨평화상을 추천하자고 제안하는 그 시간에 피니보씨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어부들을 연행했다.


범법이라는 이유로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구조조차 못하게 할 수 있느냐고 이들을 비난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 난민캠프 주변에 있는 학교에 학생을 보내지 않는 학부모들은 또 어떤가? 우리 사회에서 너무 자주 일어나 이젠 익숙해지기까지 한 모습이 아닌가. 불과 오백여 명 남짓한 예멘 난민이 입국했을 때 그렇게 소란을 떤 사람들이니, 몇 만 명은 고사하고 몇 천 명이 입국했으면 온 나라가 절단 나는 줄 알지 않았을까.


어느 날, 기품 있어 보이는 신사가 저자를 찾아온다. 영화 소재를 찾으러 섬에 온 영화감독 잔프랑코 로시였다. 그는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거장이었다. 세계 많은 언론과 수십 번 인터뷰를 했음에도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던 저자는 자기 발로 섬을 찾아온 그를 그대로 떠나게 놔둘 수 없었다. 저자는 로시 감독에게 지난 25년 동안 저자의 고통과 수난이 담긴 모든 자료를 USB에 담아 건넨다. 그리고 그 기록은 ‘화염의 바다(Fire at Sea)’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되어 2016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대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한다.


때로 다큐멘터리 영화는 극영화보다 더 큰 감동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경악할만한 장면을 너무나 담담하게 그리고 있어 오히려 충격적이다. 해양구조대원들에게 사경을 헤매는 난민 환자들은 짐짝에 지나지 않았고, 가방에 담긴 시신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들도 그저 물건을 싣듯 경비정에 던져 넣었다. 선창 바닥에 시신이 무더기처럼 쌓여 있는데 사방이 너무도 고요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영화는 2017년 EBS 국제 다큐영화제에 출품되어 EBS에서 방송하기도 했는데, 이 장면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줬는지 모르겠다. 국내 언론은 대체로 사상자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잔인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국내 보도지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다 보니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제대로 깨닫기 어렵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국내와 달리 사상자에 대한 사진이 여과 없이 그대로 언론에 노출된다. 전에는 전쟁이 피해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들어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피해야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는데, 전쟁의 참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언론보도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싶다.


전쟁을 겪지도 않고 더구나 전쟁피해에 대한 적나라한 사진조차도 보기 어려운 상태에서는 전쟁에 대한 생각이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이라면 불가피할 경우 전쟁을 선택한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겠다. 이 책을 통해서, 이 영화를 통해서 난민의 아픔을 이해할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일어나서 안 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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