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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탄호이저, Tannhäuser>

by 박인식

자식이 성악을 시작한 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노래하는 걸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늘 아슬아슬했지요. 잘한 점보다는 부족한 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공부할 때도 그랬고 심지어는 오페라 단원으로 무대에 섰을 때조차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처음으로 성악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겠다는 느낌이 든 무대가 바로 바그너 <탄호이저>였습니다.


베이스는 음역의 특성상 오페라에서 주인공 역할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저음이 가지는 무게감 때문에 왕이나 제사장 또는 장군 같은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음역이 낮다보니 다른 성부에 비해 체격이 크고, 맡는 역할의 특성상 다른 출연자들과 함께 서있는 경우보다는 떨어져 서있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무대에서 확연히 두드러져 보입니다.


베이스 박영두는 <탄호이저>에서 여주인공의 삼촌인 튀링겐 영주 ‘헤르만’ 역을 맡아 노래했습니다. 노래하는 분량이 많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극 전체의 중심을 잡는 역할이라고 할까요. 역할 자체가 아주 돋보이지요. 한 마디로 아주 폼 납니다. 이 오페라에 출연한 게 오페라가수 8년차일 때였으니 어느 정도 관록이 붙었을 때였지요. 역할이 멋있어서 그랬을까요? 처음으로 자식 공연을 보면서 흡족했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장손인 자식을 끔찍이 아끼셨던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깐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독일 오페라에서는 바그너 오페라를 해야 오페라가수 대접을 받는답니다. 물론 이전에도 바그너 오페라에 간간이 출연했지만 제가 본 것도 처음이었고 기량도 눈에 띄게 발전한 것 같아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 비스바덴 극장, 튀링겐 영주 역

[2017년] 11/19, 11/24, 12/3, 12/17

[2018년] 1/10, 1/28, 3/30, 5/27, 6/30

[2019년] 3/9, 3/17, 4/21, 5/26


<비스바덴극장 2017.12 공연>


작곡배경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 오페라 공연이 사실상 금지되어 있답니다. 바그너 오페라가 반유대주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는 분위기는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단지 바그너가 정치색이 있는 인물이기는 했지만 반유대주의라고 할 만한 주장이나 행동을 보인 일이 없고, 바그너 사후에 나치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데서 그런 분위기가 생겨났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을 뿐입니다.


독특한 것은 바그너 오페라 애호가들이 그저 작곡자로서 바그너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거의 숭배의 대상으로 여길 정도라는 겁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바그네리안’이라고 부르고 바그너 오페라 축제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열리는 바이로이트를 성지처럼 여기지요. 말하자면 독일에서는 오페라=바그너=바이로이트라는 등식이 성립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뛰어난 오페라가수라고 해도 바그너 오페라 무대에 서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 어렵답니다.


<탄호이저>는 <로엔그린>과 함께 바그너 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이 오페라가 성공하면서 오페라 작곡가로서 입지를 굳히게 됩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예전의 오페라 형식을 과감하게 벗어버립니다. 예전의 오페라는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대사를 노래로 만든 것)로 구성되고 그 사이는 동작만 이루어졌는데, 바그너는 여기에 드라마적인 요소를 더해 전체적으로 성악과 관현악이 어우러지는 음악극 형태로 바꾼 것입니다. 그래서 오페라 내내 관현악 연주가 이어질 뿐 아니라 반주에 그치지 않고 무대를 이끌어나가지요. 또한 오페라 안에서 라이트모티프(Leitmotiv)라는 주제 선율이 여러 형태로 변주됩니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를 바그너는 ‘교향악적 음악극’이라고 불렀습니다.


연주시간이 세 시간이 넘는 대작이다 보니 다른 오페라와 달리 중간에 휴식 시간을 두 번 주더군요. 극장에 들어가서부터 나올 때까지 다섯 시간은 좋이 걸린다는 말이지요. 이 오페라를 즐기시려면 단단히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등장인물


○ 탄호이저; 테너. 음유시인

○ 베누스; 소프라노. 사랑의 여신

○ 엘리자베트; 소프라노. 영주의 조카딸

○ 볼프람; 바리톤. 음유시인

○ 헤르만; 베이스. 튀링겐 영주

○ 발터; 테너. 음유시인

○ 비테롤프; 베이스. 음유시인

○ 하인리히; 테너. 음유시인

○ 라인마르; 베이스. 음유시인


줄거리


음유시인이면서 기사인 탄호이저는 튀링겐 영주 헤르만의 조카딸인 엘리자베트와 순수한 사랑을 나누지만 곧 그에 싫증을 느낍니다. 그러던 중 관능적인 사랑의 여신 베누스의 유혹을 받고 쾌락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쾌락마저 권태를 느낀 그는 다시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돌아옵니다. 성에서는 영주 헤르만이 ‘사랑의 본질’을 주제로 하는 노래경연대회를 열고 있었고 많은 음유시인들이 나와서 순수한 사랑을 예찬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이어 등장한 탄호이저는 사랑의 본질은 쾌락이라며 쾌락의 여신 베누스를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지요. 이에 많은 참가자들이 신성한 전당에서 쾌락의 세계를 찬미하는 것을 보고 분노해 그를 공격하자 엘리자베트가 탄호이저에게 참회의 기회를 주자며 그들을 설득합니다. 그러자 영주 헤르만은 탄호이저에게 속죄하라며 로마 순례를 명합니다. 시간이 흘러 로마 순례를 마친 사람들이 <순례자의 합창>을 노래하며 돌아오는데 순례자의 행렬 속에 탄호이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엘리자베트는 절망합니다.


[1막 1장]


베누스베르크 산속에 있는 베누스의 궁전에서 탄호이저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베누스와의 쾌락에 빠져 있습니다.


[1막 2장]


하지만 향락에 권태를 느낀 탄호이저는 지상 세계를 동경합니다. 베누스는 좀 더 기쁨을 나누자며 유혹하지만, 그는 그간 보여준 사랑에 감사하다면서도 바깥세상이 그립다고 답합니다.


이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비스바덴극장에서는 전라의 무용수들을 출연시키더군요. 무척 놀랐습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요. 상상해 보세요, 눈앞에서 전라의 남녀 무용수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말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그런 어색함이나 당황스러움은 곧 없어지더군요. 5분도 안 걸렸던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는 모두 그렇게 표현하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서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하긴 극장 옆에 있는 온천이 남녀혼탕이니 이상할 일도 없지요.



[1막 3장]


탄호이저는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평화스럽기 그지없는 대지를 바라보며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이때 순례자의 행렬이 로마를 향해 지나가며 <순례자의 찬가 Pilgrims Chant>를 부릅니다.


합창 <순례자의 찬가 Pilgrims Chant>

https://www.youtube.com/watch?v=yObMCvH3cfs


[1막 4장]


영주 헤르만과 음유시인들이 산에서 내려오다가 기도하는 탄호이저를 발견하고 그가 떠난 다음 엘리자베트가 상심하고 있고 있다고 전합니다. 그 말을 들은 탄호이저는 깜짝 놀라며 그들과 함께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그들을 따라 나섭니다.


[2막 1장]


음유시인들에게서 탄호이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자베트가 감격에 겨워 <노래의 전당, Dich teuer Halle>을 부릅니다.


엘리자베트 <노래의 전당, Dich teuer Halle>

https://www.youtube.com/watch?v=rFAwVU5ffDw


[2막 2장]


엘리자베트를 만난 탄호이저가 그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엘리자베트는 그가 돌아왔음을 기뻐합니다. 두 사람이 기쁨에 차 노래를 부르자 평소 엘리자베트를 연모해오던 볼프람은 엘리자베트를 단념하는 가슴 아픈 노래를 부릅니다.


[2막 3장]


영주 헤르만이 노래 경연 개막을 선포하려는데 평소 ‘노래의 전당’을 외면하던 엘리자베트가 그곳에 나타난 것을 보고 <너를 여기 전당에서 만나다니? Dich treff ich hier in dieser Halle>라고 반가워하면서 노래 경연의 시작을 알립니다.


헤르만 <너를 여기 전당에서 만나다니? Dich treff ich hier in dieser Halle> - 박영두

https://www.youtube.com/watch?v=ZJuw13OoptA



[2막 4장]


영주 헤르만이 노래자랑을 시작하겠다고 선포하고 음유시인들이 차례로 순수한 사랑의 기쁨을 표현하는 노래를 이어갑니다. 그러다가 탄호이저가 육감적인 사랑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자 청중이 술렁대고, 다른 음유시인들이 나와서 탄호이저를 질타하고, 다시 탄호이저의 반박이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탄호이저를 죽이려고 하자 엘리자베트가 막아섭니다. 이 모습을 본 탄호이저는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후회합니다. 영주 헤르만은 탄호이저에게 속죄를 위해 로마 순례 여행을 다녀올 것을 명하지요.



[3막 1장]


엘리자베트가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드리는데 순례자들이 로마에서 돌아옵니다. 엘리자베트는 탄호이저를 찾지만 보이지 않자 실망하여 그가 죄를 용서받을 수만 있다면 자기의 목숨은 버려도 좋다는 내용의 유명한 아리아 <전능하신 성모시여, 저의 간구를 들으소서! Allmächtge Jungfrau hör mein Flehen!>를 간절히 부릅니다.


엘리자베트 <전능하신 성모시여, 저의 간구를 들으소서! Allmächtge Jungfrau hör mein Flehen!>

https://www.youtube.com/watch?v=Fox19jgNgSg


[3막 2장]


한편, 엘리자베트를 연모하던 볼프람은 이 모습이 안타까워 생명이 다해가는 엘리자베트를 굽어 살펴달라며 별에게 간구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3막 3장]


탄호이저가 기진맥진한 채 돌아와 볼프람에게 자신이 로마에 가서 죄 사함을 받고자 빌었지만 교황이 용서 받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합니다. 볼프람은 그를 위로하지만 탄호이저는 다시 베누스에게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베누스의 환영이 나타나 탄호이저를 유혹하지요. 이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엘리자베트의 간절한 기도 때문에 탄호이저가 극적으로 마음을 돌린 것입니다. 그러자 베누스도 사라지고 마법의 영상도 사라집니다. 그리고 엘리자베트의 장례행렬이 지나갑니다. 탄호이저가 울부짖으며 그녀의 관 옆에서 죽어갈 때 놀랍게도 교황의 지팡이에서 꽃이 피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순례자들이 <만세! 만세! 은총의 기적 만세! Heil! Heil! Der Gnade Wunder Heil!>라며 탄호이저의 구원을 알리는 합창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합창 <만세! 만세! 은총의 기적 만세! Heil! Heil! Der Gnade Wunder Heil!>

https://www.youtube.com/watch?v=zX9a1NirS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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