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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ug 26. 2021

메시지 성경

신앙고백서로서의 성경

유진 피터슨

번역 김순현 외

감수 김회권 김영봉

복있는사람

2016년 7월


성경은 스스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사람이 쓰기는 했지만 사람의 손만 빌린 것이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성경의 일점일획도 바꿔서는 안 되고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렸을 때 이런 주장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어차피 성경은 우리말이 아닌데, 그렇기 때문에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 달라질 수 있는데, 그럴 경우 어느 것을 성경으로 여기고 믿어야 할 것인가 하는 의문 말이다. 성경의 원본은 없고 사본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의문은 더욱 커져갔다. 그 후로도 한참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믿어야 할 것은 성경의 글자가 아니라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십 수 년 쯤 전이었을 것이다.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발언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자연과학을 공부했고 평생 그 분야에서 생업을 이어온 내게 그들의 주장은 억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성경이란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유한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은유와 상징을 차용할 수밖에 없다는 기본적인 이해를 망각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비로소 성경의 역사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부터 은유이자 상징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그 후로 사본으로만 존재하던 성경이 정경으로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상당히 많은 성경이 한 순간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기록자에 의해 작성되고 추가되고 보완되었다는 신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면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보다는 은유와 상징이 훨씬 많을 뿐 아니라 어쩌면 역사적 사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최근 수 년 간 그와 관련한 책을 집중적으로 읽었는데, 그 결과 얼마 전부터 성경은 역사서가 아닌 신앙고백서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성경이 신앙고백서라면 현대인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놓은 것이 있을 만도 한데 지금까지 읽어본 바로는 우리말 성경도 그렇고 영어 성경도 전통적인 성경에서 사용한 용어를 쉬운 것으로 바꿔놓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과문한 탓일 것이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이 그 중에 쉽게 풀어낸 성경이라는 말을 들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 역시 나름대로 쉽게 풀어냈다는 성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 흘려버렸다. 언젠가 이 성경을 감수하신 김영봉 목사께서 몇 구절 인용하신 것을 읽었다. 성경을 쉽게 풀어썼다기보다는 성경을 읽고 자기 방식으로 이해한 것을 쓴 것처럼 보였다.


한영대조 메시지 성경이었지만 번역보다는 원문이 오히려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주로 원문에 주목했다. 그 중 다음과 같은 구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keep us safe from ourselves. (마 6:13, 내 자신이나 경계하게 하옵시고)
불법을 행한 자 All you did was use me to make yourselves important. (마 7:23, 자기 아쉬울 때만 하나님을 찾는 자) 
이만한 믿음; simple trust, the very people who are supposed to know all about God and how he works (마 8:10,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 지 아는 것)
자기를 부인하고; You're not in the driver’s seat; I am. (마 16:24,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깨어 있으라; Stay at your post. (막 13:37, 분수를 지키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If someone takes unfair advantage of you, use the occasion to practice the servant life. (눅 6:30, 못마땅해도 종의 삶을 연습한다고 여기며)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for a worker deserves three SQUARE meals. (눅 10:7, 일꾼은 삯으로 세 끼 넉넉히 먹을 정도만 받으라)
나라이 임하옵시며; Set the world right (눅 11:2, 정의를 세우며)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Great gifts mean great responsibilities (눅 12:48, 많이 받은 자는 책임을 크게 감당할 것이요)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Peter followed but a SAFE DISTANCE. (눅 22:54, 붙잡히지 않을 만큼 떨어져서 따라 가니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If you love me, show it by doing what I’ve told you. (요 14:15, 나를 사랑한다면 내 말을 듣는 것으로 증명하라)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사족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복음서만 훑어봐도 이럴 정도이니 남은 성경을 읽는 동안 어떤 경탄이 입에서 쏟아질지 자못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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