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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Sep 08. 2021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

조해진

민음사

2013년 7월


소설을 읽다가 도중에 덮었다. 그것도 조해진의 소설을. <단순한 진심>으로 그의 작품과 인연을 맺은 후 <환한 숨>, <로기완을 만났다>를 읽어오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짜임새 있게 엮은 그의 글에 매료되었다. 긴장을 풀 수 없도록 상황을 전개해나가는 그의 필봉에 그저, 그러나 기꺼이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끌려가면서도 지금까지 어떻게 왔는지, 지금이 어디쯤인지 놓치지는 않았다.


이 소설을 반쯤 읽어갈 때까지 등장인물이 몇 명인지 혼란스러웠다. 심지어 등장인물의 성별을 알아차리는 데까지도 꽤 시간이 걸렸다. 읽다가 앞으로 돌아가기를 몇 번. 결국은 책을 덮었다. 그리고 그간 써놓았던 그의 작품에 대한 내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러면서 이것이 조해진의 소설이라면 내가 틀림없이 뭔가를 놓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열고 등장인물을 메모해가며 다시 읽었다. 그러고 나니 씨줄날줄로 잘 엮인 그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빚 독촉을 하던 폭력배들이 폭발사고가 난 것을 기화로 채무자의 아들을 사망자로 꾸미고 보상비를 받아낸다. 그리고 그 아이를 사망한 것으로 처리한다. 살아있으되 살아있는 흔적을 없앤 것이다. 집에 돌아와 동생이 폭발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누나는 시신조차 찾지 못한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할머니와 동생과 삼촌 집에 얹혀살던 누나는 할머니가 죽자 집을 나온다. 살아있으나 죽은 이로 남아있는 동생, 그리고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누나. 누나를 맴도는 동생과 그가 어딘가 살아있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누나.”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조해진 소설의 주인공은 늘 피해자이다. 그런데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피해자인 주인공에 감정이 이입되는 게 아니라 마치 내가 그들을 곤경으로 몰아넣은 가해자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 삶에서도 그렇게 누군가를 가해하고 있는 게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이 소설은 조해진의 다른 소설과 달리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이 뒤섞여 나타난다. 다른 소설에서도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을 넘나들기는 하지만 그 경계를 혼동할 정도는 아니었다. 읽고 나서야 뒤섞인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번번이 앞으로 돌아가야 했다. 혹시나 스토리라인을 선명하게 끌어가던 그의 작법이 변한 건 아닐까 싶어 확인해 보니 이 소설은 <로기완을 만났다> 2년 뒤, <단순한 진심> 6년 전에 발표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노선이 달라진 게 아니라 잠시 변주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다시 읽었고, 하마터면 좋은 소설 하나 놓칠 뻔 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가난하게 자랐지만 단지 가난했을 뿐 부모형제의 사랑과 격려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가난이라면 이해하겠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채 살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한다. 이해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노력해서 가능한 이해가 온전한 이해일리 없지 않은가.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이 세상에서 흔적이 지워진 채, 자기를 그렇게 만든 폭력조직의 비호 아래서 살며, 바로 그들 때문에 강제로 헤어져야 했던 누나 주위를 맴도는 열여덟 살 소년. 집나간 엄마가 동생이라며 낳아온 아이와 함께 삼촌 집에 눈칫밥 먹으며 살아온 소녀가 어느 날 동생이 폭발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로소 자기가 돌본 동생이 자기 삶을 지탱하게 만든 큰 의지였다는 걸 깨닫는 모습. 그리고 가진 것 없이 의지할 곳 없이 세상을 사는 고단함. 제대로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그들 때문에 마음이 시리다.


그 시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그래서 내가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할 수 있다면, 그들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음성에 반응할 수 있다면, 그 때문에 세상은 조금 덜 삭막해지고 어쩌면 조금씩 나아져갈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조해진이 꿈꾸는 것은 그런 그의 소설을 높이 평가하는 것보다는 그런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한걸음 다가가고 손 내미는 일이 아닐까. 문득 그것이 조해진의 소설을 바로 읽는 방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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