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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Sep 23. 2021

[사우디 이야기 68] 국가 재정

사우디 이야기 (68)

많은 사람들이 사우디는 돈이 무한정 있는 나라인 줄 안다. 석유를 사겠다는 사람들은 언제나 줄서있고 그래서 그저 땅에 묻혀있는 걸 캐내기만 하면 되니 놀고먹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서 사업을 하면 모두 떼돈을 버는 줄 안다. 매장량으로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2위인데 들리는 바로는 매장량을 모두 공개하지도 않고 매장량을 확인하지 않은 유전도 꽤 있다고 한다. 산유량도 미국에 이어 2위이다. 이 정도면 돈이 무한정 있다고 하는 것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선 확인 가능한 지표 몇 개를 살펴보자.


2020년 사우디 국내총생산(GDP)은 7,000억 달러이고 인당 GDP는 20,718달러이다. 한국은 GDP가 1조6,300억 달러이고 인당 GDP가 31,497달러이다. GDP는 한국의 43%, 인당 GDP는 66%이다. 2021년 9월 현재 외환보유고는 사우디가 4,412억 달러 한국이 4,639억 달러로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 2011년 3,064억 달러에서 계속 증가한데 반해 사우디는 2014년 7,444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유가 하락으로 적자 재정을 편성하면서 2017년 5,095억 달러까지 급격하게 내려온 후 최근 들어 감소세가 완화되고 있는 정도이다. 2021년 사우디 국가 지출예산은 2,260억 달러인데 수입예산에 그보다 380억 달러 적은 1,880억 달러이다. 2021년 한국 국가 지출예산은 4,850억 달러이고 추경예산을 감안하면 5,000억 달러를 훌쩍 넘는다. 금액으로만 보면 사우디 국가 지출예산이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2010-2020 사우디 외환보유고>


이렇게만 보면 사우디는 경제규모도 그렇고 개인소득도 한국에 훨씬 못 미친다.


사우디 정부의 수입은 주로 석유 생산(oil revenue)에 의존한다. 국가 재정수입을 보아도 oil revenue가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살만 국왕이 즉위하고 무함마드 왕세자가 실질적으로 내정을 이끌어가기 시작한 이후로 국가재정 다각화를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어 이 비중은 매년 조금씩이라도 줄어들고 있기는 하다.



사우디가 석유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계산하는 건 어렵지 않다. 석유 생산은 석유수출기구(OPEC)에서 정해놓은 쿼터에 따르는데 대체로 하루 1천만 배럴 정도 생산하며, 이 중 30%는 내수로 사용하고 70%를 수출한다. 그러니 한 해 석유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은 ‘700만 배럴*365일*유가’이다. 올해 평균유가를 배럴당 50달러로 계산할 때 올해 수입은 1,278억 달러쯤 된다. 석유수입이 국가 재정수입의 70%라고 하니 1,278억을 70%로 나누면 1,825억 달러이다. 사우디 정부에서 편성한 올해 수입예산 1,880억 달러와 큰 차이가 없다. 한해 석유생산량의 70%를 수출해 벌어들인 것이 정부 재정수입의 70%이니, 결국 한해 석유생산량에 유가를 곱한 것이 정부 전체 재정수입이라고 보면 크게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물론 oil revenue가 석유 뿐 아니라 각종 석유화학 제품을 포함한 것이고 정부와 아람코가 석유 판매수입을 어떻게 나누는지 잘 모르지만, 십 년 넘게 살면서 이렇게 대충 계산한 것과 실제 수입예산이 크게 차이나는 걸 보지 못했다. 앞으로도 석유 내수소비량과 국가 수입예산 중 oil revenue가 차지하는 비중만 감안한다면 이 방식이 계속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미국이 중동에서 한 발 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산유국으로서 중동의 위상이 많이 떨어진 결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우디는 아직도 매장량이 세계 2위를 지키고 있고 매장량이 확인되지 않은 유전까지 포함하면 1위인 베네수엘라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석유가 각종 신재생에너지로 대체되면서 산유국으로서의 위상이 전만 못해졌을 뿐 아니라 그런 변화가 재정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웃인 두바이는 일찍이 산유국에서 금융 및 물류 허브로 전환한데다가 이제는 관광대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OPEC의 주축인 아부다비와 카타르 도하도 그 대열에 합세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상황이 되었다. 최근 사우디 위상이 급격하게 약화되기는 했지만 이런 조짐이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니니 사우디 정부라고 왜 이를 극복할 계획을 세우지 않았겠나. 그래서 사우디 정부에서는 재정사업으로 진행되던 수많은 사업을 이미 민간투자사업으로 전환했고 석유산업 일변도의 경제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각종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우디는 세계에서 산유국으로서의 위상이 이미 상당히 후퇴했을 뿐 아니라 중동 맹주로서의 자리도 위협받고 있으며, 요즘에는 걸프협력체(GCC) 중에서도 예전처럼 주장이 먹혀들지 않는다. 오만은 GCC에 속해있기는 해도 예전부터 다른 나라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바레인은 시장이 사우디에 종속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쿠웨이트는 워낙 경제규모가 작으니 결국 GCC는 사우디ㆍ아랍에미리트ㆍ카타르가 주축인 셈이다. 그런 와중에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이란과 가깝게 지내려는 카타르를 혼내려다가 결국 체면은 구길 대로 구기고 카타르 기세만 살려줬다. 아랍에미리트도 이젠 대놓고 반기를 든다. 오랫동안 가장 가까운 우방으로서 불만스러운 것까지 군말 않고 열심히 도왔지만 사우디는 정작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아랍에미리트에 귀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이제는 아랍에미리트의 밥그릇을 뺏어오겠다고 글로벌기업의 지역본부를 리야드로 옮기라고 요구하고, 각종 레저관광단지를 개발하고, 거기에 제2국영항공사를 세워 허브공항을 만들겠다며 대놓고 싸움을 걸어오는 형편이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니 GCC가 내일 당장 해체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닌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사우디의 산업다각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그런 산업다각화의 일환으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추진계획을 발표한 각종 개발사업과 이에 소요되는 예산은 참으로 엄청나다.


홍해 북쪽 해안에 세우는 신개념 인공지능도시인 네옴(NEOM) 개발에 5,000억 달러,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800억 달러, 리야드 남쪽에 건설하는 종합레저시설인 키디야(Qiddiya) 개발에 640억 달러, 리야드 디리야(Diriyah) 유적지 개발에 500억 달러, 네옴 인근에 이와 별개로 개발하는 복합휴양시설 홍해개발사업에 300억 달러, 선사시대 유적지인 알울라 관광단지 개발에 150억 달러. 이것만 해도 7,390억 달러에 이른다. 한화로 물경 850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사우디 올해 정부 재정수입이 1,880억 달러이니 무려 4년 수입예산에 가까운 금액이다. 여기엔 허브공항 건설이나 제2국영항공 설립, 구체적인 예산을 확인하지 못한 몇몇 사업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사우디 정부에서는 부족한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2018년 1월부터 부가가치세 5%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모든 경기가 위축되자 2020년 7월 전격적으로 이를 15%로 올렸다. (아무런 예령도 없었다.) 얼마 전에 왕세자가 부가가치세 15%는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것이고 조만간 경기가 회복되는 대로 5%로 환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15%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어디에서도 그런 언급은 없었던 걸 생각하면 국민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임기응변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환원시기가 언제가 될지, 과연 환원되기는 할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니 국가 재정 수입 중에서 앞서 설명한 그 엄청난 사업의 재원을 일부라도 충당하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어디선가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바에 따르면 재원은 외국 투자자를 유치해 해결하겠다는 것이고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할 방법은 국부펀드(PIF, Public Investment Fund) 자금과 아람코 지분 5% 매각하는 게 전부로 보인다. 당초 아람코의 가치를 2조 달러로 기대했고 그래서 5% 매각대금이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현재 주가는 그에 미치지 못해 전체 가치가 1조6천 억 달러 정도로 평가되고 있고, 따라서 5% 지분 매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재정은 800억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국부펀드가 자금력이 막강하다고는 하지만 기왕의 모든 투자를 중단하지 않는 한 투자 규모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으니 해외 투자자로부터 유치해야 할 재원은 가히 천문학적인 규모에 이른다.


맨 처음에 홍해 연안에 네옴이라는 초대형 도시개발사업을 벌인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일까 궁금했다. 이 계획을 발표할 때 사우디 통치체제ㆍ법ㆍ세제가 적용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도시라고 선언했고 이후 (술과 향락과 같은) 이슬람 금기도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지는 걸 보면 주로 외국인을 겨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전 세계인구의 40%가 4시간 안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걸 보면 사우디 정부에서 계획하는 허브공항이 여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탄소제로 도시를 지향하고 있으며, 어느 곳이든 걸어서 2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도록 만든다니 계획대로 완성되면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한 도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지역은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지 않는 그야말로 황무지이다. 결국 이곳에 새로 만들어지는 모든 것이 인공시설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쾌적하게 만든다고 해도 인공도시로서 한계가 분명한데 과연 기대한 만큼 세계인의 이목을 끌 수 있을까? 십여 년에 걸쳐 리야드 중심가에 조성한 킹압둘라금융지구(KAFD) 마천루의 공실도 언제 채워질지 요원하다. 이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규모의 네옴을 완성하기까지 과연 얼마나 시간이 걸리고 그것이 기대한 대로 운영되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까? 그런 상황에 투자할 기업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국왕 명령 하나로 국가 방침이 바뀌는 리스크에 대한 투자자의 걱정을 어떻게 불식시킬 수 있을까?


이 지역에 이런 사업을 벌이는 것이 사우디 하나뿐이라면 모르겠는데 당장 아랍에미리트나 카타르와 경쟁해야 한다. 사우디는 제2국영항공사를 만든다고 하는데 이미 세계적인 항공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에미리트항공과 아부다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업고 사업을 확장해나가는 에티하드항공이 합병한다는 소문이 돈다. 두바이가 중동의 허브공항으로 안착했지만 카타르 도하의 도전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 좁은 중동 땅에 또 다른 허브공항을 만든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현재 많은 기업이 중동지역본부를 두바이에 두고 있다. 얼마 전 사우디 정부에서 지역본부를 리야드로 옮겨오지 않으면 공공입찰 참가 자격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음에도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640억 달러를 들여 리야드 인근에 개발하겠다는 레저시설 키디야는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지만 결국은 두바이로 몰리는 관광객을 뺏어오는 모양이 되지 않을까? 물론 두바이관광에 나서는 자국민을 유치하는 효과는 거둘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엔 투자규모가 너무 큰 것이 아닐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 것만 해도 이렇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나도 계산하는 이런 문제를 놓친 채 사업을 추진할 리는 없다. 투자할만한 구석이 보이니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사업을 풀어나가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사우디에서 계획하고 있는 사업의 대부분은 정부재정사업이 아니라 민간투자사업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우리 정부에서도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몇 년 전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를 사우디에 내보내 우리 기업이 수주할 수 있도록 발 벗고 지원에 나섰다. 나야 그 방면에 아는 게 없지만, 그저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만 살펴봐도 우리의 투자 규모는 이들의 규모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물론 어떻게 해서든 활로를 찾아야 할 것이고 또 찾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예전처럼 수주 잘 해서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발주처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기술력은 기본이고, 거기에 경쟁력 있는 가격과 자금, 그리고 운영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한 대안까지 마련해야 겨우 말석이라도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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