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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06. 2021

계간 <서울리뷰오브북스>

안전의 역습

서울리뷰

2021.03.05 창간호


예전에는 책 읽고 난 느낌을 정리한 것을 독후감이라고 했다. 어느 사이에 그 말이 리뷰나 서평으로 대체되었다. 비평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그것은 전문가의 영역이었고, 리뷰도 전문적인 식견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 아무데나 쓸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책을 읽고 나서 뭘 읽었는지 정리도 하고 글쓰기 훈련도 할 겸해서 얼마 전부터 서평을 쓰고 있다. 남들이 그런 글을 서평이라고 부르니 그렇게 쓰기는 한다. 하지만 읽은 책을 비평할 역량은커녕 제대로 이해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읽고 난 소감을 서평이라고 부르는 건 가당치 않은 일이다. 독후감이라고 하면 맞겠다.


간혹 신문에 서평이 실리기는 하지만 신간 소개에 가깝고 출판사나 서점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서평도 홍보 목적의 글이니 그저 추겨주기 바쁜 ‘주례사 비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서평에 현혹되어 읽었던 몇 권은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형편없어 그런 서평 같지 않은 서평을 기준으로 책을 고르는 바보 같은 짓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독서 방송에서 서평 전문 계간지가 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New York Review of Books>나 <London Review of Book>와 같은 책을 목표로 한다고 해서 이름도 <Seoul Review of Book>라고 했다. 외국의 서평전문잡지가 있는 줄도 몰랐으니 그런 이름을 붙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미 홍보에 가까운 서평의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서 ‘주례사 비평’을 지양하겠다는 말에 상당한 관심이 끌렸다. 거기에 덧붙여 출판사가 보내준 책의 서평을 쓰거나 서평을 쓰기 위해 출판사에 책을 요청하지 않겠으며,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는 상황을 분명히 밝히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이로써 그동안 발표된 서평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신간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평가가 아쉬웠던 내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반가운 것은 세간의 금기 때문에 꼭 논해야 할 책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들 말대로 지성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그들만의 리그’에서 자유롭겠다는 것이니, 저변도 얼마 되지 않고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혀있는 우리 학계에서는 매우 신선한 시도일 뿐 아니라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저자의 명성이나 그럴싸한 홍보문구에 현혹되어 아까운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일은 막을 수 있겠다.

이 책은 매번 주제를 정하고 그에 관련한 책을 비평한다. 창간호에서는 ‘안전의 역습’이라는 주제로 코로나 창궐로 인한 보건안전, 데이트 폭력으로 대표되는 혐오공격, 세월호나 가습기 사건으로 촉발된 사회안전을 다루고 있다.


김홍중은 ‘무해의 시대’라는 글에서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해 타인은 이웃이나 시민이기 이전에 잠재적 감염원으로 취급되어 대면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여긴 전통적 사회 가치가 무너졌으며, 오히려 거리와 경기장과 학교와 교회와 술집이 텅 비었을 때 사회가 작동할 수 있다”고 당면한 사회적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그리고 “왜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가난한 청년들이 부유한 부모를 둔 이들보다 더 많이 사고를 겪어야 하는가? 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쉽게 살해되어야 하는가? 왜 택배 노동자, 콜센터 직원, 요양원에 수용된 사람들의 호흡기는 바이러스에 쉽게 노출되어야 하는가? 왜 안전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동시에 자유를 상실할 수밖에 없는가?” 묻는다.


송지우는 ‘취소가 문화가 되지 않으려면’이라는 글에서 최근 한국 언론에 등장한 ‘잘못된 행동을 한 인물의 사회적 지위를 박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소셜미디어 기반 운동인 취소문화(cancel culture)’를 소개하며 그것이 자칫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지나 않을지 우려한다. 그는 “‘자유주의 사회의 생명선’인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틀린 이야기나 불편한 이야기를 할 자유까지 폭넓게 보호되어야 한다. 즉 ‘실험이나 모험이나 실수마저’ 허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폭력을 선동하는 발언이나 특정한 장소나 시간에 부적절한 발언 등 일부 표현과 표현방식은 규제될 수 있지만, 실수하는 사람을 배척해 버리는 취소문화는 이러한 조치에 해당하지 않고 오히려 건강하고 생산적인 토론을 저해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한다.


조문영은 ‘불안한 빈자는 어쩌다 안전의 위협이 되었는가?’라는 글에서 공공부조 과정에서 빈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도덕적 낙인을 고발한다. 그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서 ‘빈곤’과 ‘품행’을 자의적으로 연결했다. 빈자들은 목숨을 연명할 정도의 지원을 받는 대가로 도덕적 낙인을 감수해야 했다. 그들은 단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게으르고 방탕하며 위험하다는 식으로 말이다”라고 비판한다. 이 말이 내게는 뼈아프게 들렸다. 그 도덕적 낙인을 가하는 무리 중에 나 역시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박경미가 지은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의 서평인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에서 이 책의 편집장인 홍성욱은 개신교의 반동성애 운동이 교인을 결속하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견해를 밝힌다. “인과관계를 밝히기는 힘들지만 반동성애 운동이 강해지던 2005년에서 2015년 사이 개신교 인구 중에서 젊은층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노령층이 증가했다. 이는 한국 사회가 급격하게 노령화되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개신교의 몇몇 교리가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나 인권헌장의 제정을 반대하고 성소수자 문화행사를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행동 같은 반동성애 운동은 젊은층의 이탈이라는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는 여러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개신교의 반동성애 운동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 때문에 성소수자가 차별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작금과 같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종교가 더더욱 잘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종교는 안개가 자욱이 낀 세상에서 개개인의 삶이 지향하는 가치의 지침을 제공해줄 수 있고, 지금 우리 사회와 인류가 안고 있는 지난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다. 종교는 소수자나 이방인 같은 사람들은 물론 환경이나 자연을 보듬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그려줄 수 있다. 종교는 계급이나 인종과 성별은 물론,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 때문에 사람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앞당기고 신도들에게 성소수자를 성적인 존재만이 아니라 온전한 한 명의 인간으로 끌어안는 심성을 고양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개신교회에 일침을 가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약속의 땅>의 서평인 ‘드라마 없는 회고록’에서 박상현은 오바마의 임기동안 드라마가 없었다는 것을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는다. “사회에는 잘 수행되었을 때 눈에 띄지 않는 일들이 있는데, 도시가스와 인터넷이 끊기지 않고 쓰레기를 제때 치워가고 지하철이 정시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바마는 부각될만한 업적이나 유산을 남긴 대통령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퇴임 후에 큰 주목을 받고 미국인들 사이에 ‘오바마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의 임기가 조지 부시와 도널드 트럼프 두 대통령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오바마는 마치 네거티브 공간을 이용한 예술작품처럼 비로소 사람들의 눈에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말하자면 찬찬히 보아야 오바마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대통령’. 이 말의 가치와 중요성을 요즘처럼 절감한 적이 없다. 그래서 그의 임기 전반부에 대한 기록에 불과한 이 책이 무려 9백 쪽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위에서 인용한 내용은 책의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인용한 글로 보아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서평을 모아놓은 잡지라기보다는 오히려 서평을 빌어 각 평자의 학문적 깊이와 사유를 맛볼 수 있는 저서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겠다. 언론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책의 가치를 접하기는 했지만, 읽어보니 오히려 기대를 뛰어넘는다. 덕분에 좋은 책을 쉽게 선별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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