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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Dec 23. 2021

초상화

초상화로 읽는 사회학

이미혜

북팔

2021년 11월 19일


책을 받아든 느낌이 독특했다. 쪽수에 비해 너무 두꺼워서 놀랐고 글자 크기나 자간이 ‘노인용 큰 글자 책’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책이 두꺼운 건 두꺼운 종이를 썼기 때문인데, 인용한 그림이 제대로 인쇄되게 하기 위한 선택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림을 넣은 쪽에는 본문을 배치하지 않고 그림만 싣거나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이런 낯선 모습이 모두 그림이 실린 쪽을 떼어 보관하는 걸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자면 책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데, 설마...) 저자가 해설과 함께 올리는 그림을 적지 않게 감상했으니 족히 이백 점은 되어 보이는 그림을 인용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저작권 허가를 받아 인용한 것이라니, 그것도 글 쓰는 것만큼이나 품이 들었겠다 싶다.


그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 초상화라고 하면 그저 부동자세로 정면을 바라보는 그림을 떠올린다. 하지만 저자가 <초상화>라고 제목을 붙인 이 책에서 인용한 그림 중에는 풍경화 속에 들어있는 인물화도 있다. 화가 자신을 그린 그림이 자화상이라면 풍경화 속에 자신을 그려 넣은 것도 자화상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지금껏 그런 그림을 자화상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들은 기억이 없다. 그러고 보니 자화상이나 초상화의 정확한 정의조차 모르고 있었다. 사전에는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그린 그림을 초상화로, 자기를 그린 초상화를 자화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니 풍경 속에 들어있더라도 사람의 모습이 있으면 초상화, 그 모습이 화가 자신의 모습이면 자화상이라는 말이 되고 저자도 그런 개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무튼 낯설다.


저자는 작품 수가 가장 많은 단일 장르로는 단연 초상화를 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마 오래 전에는 그것이 화가들의 주 수입원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당시 명성을 높이려면 역사화를 그려야했다지만 수입이 필요한 화가로서는 비록 원하지 않는 일이라 해도 초상화를 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화가로 인정받은 화가들도 오늘날 그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그림은 호구지책으로 여겼던 초상화였다고 한다.


지금도 초상화는 권력이 되었든 재산이 되었든 있는 자들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초상화는 르네상스 시대에 처음 탄생했을 때부터 개인의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이자 특권이었다. 권력과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초상화를 통해 지위와 힘을 과시했으며 남들이 자신을 기억하고 우러러 보아주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근대사회로 오면서 성장한 중산층도 초상화의 고객이 되었다.


저자는 자화상의 대표적인 작가로 렘브란트를 꼽는다. 렘브란트는 무려 백여 점이나 되는 자화상을 그렸는데, 처음에는 초상화가로서 인물 표정을 연구하기 위해 그렸지만 뒤로 가면서 자신의 늙어감과 몰락을 담담하게 기록하는 자서전이 되었다고 한다. 1640년 <서른네 살 때의 자화상>을 그릴 때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에서 잘나가는 초상화가였다. 그래서 그는 이 초상화에서 부유한 네덜란드 시민의 복장으로 자신만만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객들의 취향이 바뀌어 인기가 시드는데도 렘브란트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했고 결국 1656년 렘브란트는 파산하기에 이른다. 빚 청산작업이 진행 중이던 1658년 <자화상>에서 렘브란트는 자신을 비극에 나오는 왕처럼 묘사했고, 1669년 마지막 <자화상>에서는 자신만만했던 모습이 사라진, 세월과 쓰디쓴 인생을 겪은 한 노인으로 그리고 있다.


저자는 렘브란트만큼이나 많은 자화상을 남긴 사람으로 오스트리아 화가 실레를 꼽는다. 그는 스물여덟 살에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는데, 짧은 생애 동안 백여 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릴 정도로 이 장르에 집착했다고 한다. 저자가 인용한 자화상 중에서 실레의 작품은 이전의 화가들과는 달리 매우 독특하다. 저자는 19세기 후반 사진이 등장하고 인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기능에서 그림이 사진을 따라갈 수 없게 되자 화가들이 초상화에서 재현 기능을 약화하고 회화가 지닌 고유의 특성을 강조하는 쪽을 택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피카소와 마티스에 이르면 초상화의 재현 기능은 거의 사라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실레를 이 대열에 넣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활동 시기가 20세기 초반이라는 점과 화풍으로 보아 실레 또한 그 대열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초상화를 통해서 여인의 위상에 대한 시대적 변화를 읽어낸다. 여성 화가들은 자화상에서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데, 저자는 이 모습이 여성에게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과 현모양처의 역할만을 배당하고 사회적 활동을 허용하지 않았던 19세기 중산층 사회의 억압적 단면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부 초상화는 남편을 왼쪽에 배치해 오른쪽으로 시선을 향하게 하고 아내는 오른편에 배치해 왼쪽으로 시선을 향하게 하는 게 관례였다고 하는데, 저자는 이를 오른쪽이 ‘옳은 쪽’이라는 편견과 남성이 우월하다는 관점을 암암리에 깔고 있는 배치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여성은 가정 남성은 바깥일을 담당한다는 공식은 19세기말 사회 구조가 변하고 여성들이 근대적 교육의 혜택을 받으면서 비로소 흔들리게 된다. 저자는 그래서 초상화에 나온 부부의 모습도 시간이 흐르면서 애정과 협력의 관계가 점점 중요하게 표현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부부 초상화는 어떤 모습으로 표현될까 궁금하긴 한데,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와 자식 세대의 가족사진의 차이를 떠올리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저자가 인용한 이백여 점의 초상화 중에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자화상(p.69)과 모리조의 초상(p.169), 그리고 메리 카사트의 자화상(p.79)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기회가 된다면 저자께 이 작품 사이에 공통점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질문해보고 싶어 고른 것이다. 고르고 나니 앞의 두 작품은 같은 화가가 그린 것이었는데, 그러고 보면 나머지 한 작품도 비슷한 화풍으로 분류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읽다보니 저자가 미술에 조예가 있거나 특별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한 나 같은 일반인을 독자로 상정해서 그랬던지 특별히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인용한 그림에 충분한 설명도 달아놓았다. 그래도 몇 가지 막히는 것이 있어서 정리해보았다.


♣ 우키요에(浮世繪); 17~20세기 일본 에도시대에 성립한 당대 사람들의 일상생활이나 풍경, 풍물 등을 그린 풍속화

♣ 라파엘전파(라파엘前派) Pre-Raphaelite Brotherhood; 미술 사조 중 하나로 보이기는 함

♣ 인상주의(印象主義), 인상파(印象派), impressionism; 전통적 회화기법을 거부하고 색채나 질감 자체에 관심을 두는 미술 사조. 이 용어에서 받는 느낌과 영 달라서 조금은 당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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