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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an 05. 2022

번역의 탄생

번역 핸드북이자 번역 사전

이희재

교양인

2009년 2월 10일 초판  1쇄

2021년 4월  5일 초판 23쇄


서평을 쓰려고 발간일자를 확인하다보니 2009년 발간된 이후 12년 동안 무려 23쇄에 이르렀다. 한 번에 2천부를 발간한다고 해도 무려 5만부에 가까운 스테디셀러이다. 물론 베스트셀러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에 비하면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읽기가 만만한 책도 아니요 그렇다고 흥미를 유발할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번역의 교과서 같은 내용이 그렇게나 오래, 그렇게나 많이 팔렸다는 것은 놀라움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이 책의 진가를 드러내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삼십여 년 전에 전공서적을 번역한 일이 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검색이 가능한 때가 아니어서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알려면 외국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가져오는 책을 얻어 보는 게 거의 유일했다. 그렇게 책을 얻으면 복사하거나 그 중 필요한 부분을 번역해 돌려보곤 했는데 어느 날 실무자들이 핸드북으로 쓰기 아주 좋은 책을 하나 손에 넣었다. 이미 후배들을 지도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주변의 부추김도 있어서 번역을 시작했다. 무려 천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인데다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분도 적지 않아서 책이 나오기까지 꼬박 삼 년이 걸렸다.


그냥 번역이라고 생각하고 매달렸으면 그보다는 훨씬 일찍 끝낼 수 있었겠지만 동료나 후배들이 (그게 독자의 전부였다) 한 번 읽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게 쓰느라 그렇게 되었다. 알고 있는 내용도 번역한 문장이 선명하고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수없이 고쳤고, 모르는 부분은 잘 아는 이를 찾아가 배워가면서, 그렇게 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지 주변에 물어가면서 썼다. 그러니 번역이라기보다는 내가 읽어서 이해한 것을 독자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새로 쓴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실제로 수없는 번역서의 역자인 저자는 번역을 ‘원어(출발어, source language)에 충실한 번역’과 ‘번역어(도착어, target language)에 충실한 번역’으로 나눈다.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좀 딱딱하더라도 원어의 독특한 구조와 표현을 살려주려는 태도이고 번역어에 충실한 번역은 번역어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려는 태도인데, 말하자면 번역자가 저자를 제자리에 두고 독자를 최대한 저자 쪽으로 데리고 가느냐 번역자가 독자를 제자리에 두고 저자를 최대한 독자 쪽으로 데리고 가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삼십여 년 전에 내가 한 번역은 ‘번역어에 충실한 번역’을 넘어 ‘번안’에까지 이른 것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문화권에 따라 번역 방향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국과 미국은 원문에 충실한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중시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마치 저자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독자를 위해 영어로 직접 쓴 것 같은 착각을 할 만큼 번역문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매끄러운 번역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는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유럽에서 가장 먼저 싹터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된 고전을 번역할 때도 원문에 충실한 것보다는 프랑스어로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나타냈는가를 좋은 번역의 잣대로 삼았고, 영국 지식인들도 이에 영향을 받아 고전어보다는 영어를 중시하는 것이 근대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 한국의 번역 문화는 사뭇 다르다. 원문을 최대한 살려줘야 한다는 직역의 전통이 아주 강하다. 일본은 원문을 신성하게 여기고 원문의 뜻을 최대한 살리는 직역에 충실했다. 북한은 <조선왕조실록>을 한국보다 먼저 완역했는데 번역 원칙은 의역이었다. 한자는 쓰지 않고 어려운 말을 다 풀어서 썼다. 영어사전도 딱딱하고 어려운 한자어보다는 토박이말로 쓰려고 했다. 난해한 한자를 쉬운 말로 바꾸는 것 역시 번역이나 다를 바 없다. 자연히 북한은 직역보다 의역을 중시했다.”


번역가인 저자는 이 책 내내 원어보다 번역어에 더 초점을 맞춰 설명한다. 어떤 부분은 국어 글쓰기 강의를 듣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저자도 그렇지만 나 역시 ‘번역의 품질은 역자의 국어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영어에 익숙하다 해도 국어를 제대로 모르면 옳은 번역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그런 의식이 이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저자는 번역투 문장이 생겨난 것 역시 국어 능력 부족으로 여긴다. 문장 뿐 아니라 미진하기 짝이 없는 어휘력에 대해서도 질타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한글 맞춤법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해 언급하고 있고 심지어는 한글 맞춤법 예문도 몇 쪽에 걸쳐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맞춤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원어에 충실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사소통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가 현대 우리말에 대해 가진 아쉬움 중 몇 가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전통 한국어는 추상명사가 주어나 목적어 자리에 오는 걸 꺼린다. ‘보호를 요청했다’ 보다는 ‘보호해달라고 요청했다’라는 표현을 선호했다. 현대 한국어는 주어 자리뿐 아니라 목적어 자리에도 전보다 명사가 훨씬 많이 들어간다. 옛날에 ‘그 사람은 이제 칭찬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한 것을 이제는 ‘그는 더 이상 칭찬을 바라지 않는다’라고 표현한다.”


“의무, 우월, 열등은 그 자체로 감정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명사로 느낌을 나타내려면 의무감, 우월감, 열등감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절망, 비애, 행복, 초조는 감정이 깃들어 있으니까 절망감, 비애감, 행복감, 초조감이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한국어에 많이 쓰는 용언 중에 상당수는 한자어에 ‘-하다’나 ‘-스럽다’를 붙여서 동사나 형용사처럼 만들었다. ‘탐욕스러움, 비겁함, 무정함’은 명사에서 유래한 동사형을 다시 동명사로 만드는 격이다. 따라서 이는 당초 명사인 ‘탐욕, 비겁, 무정’을 그대로 쓰면 되지 번거롭게 동명사형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


저자는 “영어를 한국어답게 잘 번역하려면 한국어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하는데, 어휘력이 빈약하면 틀에 박힌 문장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발견’해낸 적절한 번역어를 본문에 수없이 예시하고도 매 장 말미에 따로 열거한 것이 서른 쪽 가까이 된다. 업무 특성상 나도 번역을 적지 않게 하는데 적절한 어휘가 생각나지 않아 애먹은 것을 저자의 어휘로 표현한 것을 보고 무릎을 친 것이 몇 개인지 모른다. 그 중 몇 가지 눈에 띄는 것으로 carelessly(허투루), constantly(걸핏하면), extremely(더없이), mechanically(건성으로), hardly(좀처럼), necessarily(딱히), openly(대놓고), tentatively(일단) 등을 들 수 있다.


저자는 번역은 단어와 단어를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작업이 아닌데 얼개와 짜임새가 다른 두 언어를 일대일로 대응시키다 보면 오히려 뜻을 왜곡하기 십상이라면서 번역을 ‘타협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수치가 정확하게 들어맞아야 하는 과학서가 아니라면 길이나 무게나 넓이를 우리가 쓰는 미터, 근/킬로, 평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독자에게 이해가 빠를 수 있다고 조언한다. 1야드는 대강 1미터로 옮겨도 무방하고 1피트는 ‘한 자’로 1인치는 ‘한 치’로 옮겨도 대강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에이커도 일반 독자는 어느 정도 넓이인지 잘 모르니 1에이커가 약 1,250평이라는 점을 감안해 many acres라고 하면 수만 평 정도로 번역하면 족하다고 말한다.


이미 이 글을 읽어온 분들은 깨달았겠지만 이 책은 읽고 리뷰를 쓸 책이 아니다. ‘번역의 교과서’를 넘어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볼 사전’으로 여길만한 책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책을 읽으면 받은 느낌보다는 ‘놓치기 아까운 조언’을 하나라도 더 소개하려 한다.


“영어에는 과거, 현재완료, 대과거, 과거완료 등 과거를 나타내는 여러 시제가 있지만 한국어는 과거를 나타내는 어미로 이것을 모두 표현한다. 과거와 대과거를 구분하는 것은 대체로 불필요하고 문장을 지저분하게 만든다. (John told me that he had met Jane three days before. <존은 사흘 전에 제인을 ‘만났었다고’ 내게 말했다.> 존은 사흘 전에 제인을 ‘만났다고’ 내게 말했다.) 영어는 한국어보다 시제 구분을 엄격하게 하기 때문에 당연히 영작을 할 때 그 점을 신경 써야 하지만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까지 영어 시제를 들이미는 것은 월권이다.”


“대명사를 한국어로 옮길 때 지시 대상이 모호해지면 대명사를 명사로 바꾸고 문장 안에 없어도 한국어로 뜻이 통하는 불필요한 대명사는 과감히 빼라. 영어는 감탄문과 명령문을 제외하고는 문장마다 주어가 꼭 있어야 하지만 한국어는 주어에 별로 기대지 않는 언어이기 때문에 문단 안에 주어가 하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할 때가 많다. 영어는 부득이 수동태로 쓸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수동태는 무엇보다 객관적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객관적이라는 인상을 주어야 하는 과학 분야에서는 수동태 문장을 많이 사용한다. 항의 편지처럼 상대에게 기분 나쁜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할 말을 하고 싶을 때도 수동태를 즐겨 쓴다. 그러나 영문 수동태는 국문 능동태로 바꿔야 한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수동태를 쓰지 않아도 될 상황에 ‘되다’라는 표현을 남발한다. (<집값이 ‘하락되었다’>. 집값이 ‘하락했다’.)”


“‘들’이라는 표현도 현대 한국어에서 남발되는 말이다. 이는 단수와 복수를 민감하게 구분하는 영어의 번역투에서 온 영향이다. 한국어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단수인지 복수인지 딱히 밝혀주지 않아도 되는 언어이다.”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은 생략할 수 있는 내용은 생략한다는 것이다. ‘깨닫다, 알아차리다, 느끼다’에 해당하는 realize, find, feel 같은 동사는 번역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Suddenly, I noticed that the rain had stopped. <나는 어느새 비가 멈춘 것을 알아차렸다>. 어느새 비가 멎어 있었다.”


“고유명사 중에 번역어는 없고 원어만 있는 단어가 적지 않다. 번역어와 원어의 문화적 거리가 멀 때 원어를 그대로 드러내면 독자는 이해를 못한다. 이럴 때는 주석을 달아주거나 본문 안에서 풀어서 설명해준다. 학술서가 아니고 그 말이 핵심적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 경우에 주를 너무 많이 달면 독자가 책에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에 본문에 풀어 설명해주는 것이 좋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사전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생각과 애정, 그리고 애정에 이를 정도로 사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 중 “번역자가 사전을 뒤지는 것은 단어의 뜻을 알아보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뜻은 알아도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참신한 표현을 찾기 위해서일 때도 많다”는 설명에 크게 공감했다. 나 또한 그런 목적으로 사전을 찾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나오는 영한사전은 한국인이 영어를 아름답고 정확한 한국어로 이해하고 표현하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어의 개성을 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지금 사전이 그렇지 못하다는 안타까움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요즘이야 인터넷을 열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필요한 어휘를 찾아볼 수 있다. 그 모든 어휘는 결국 사전에서 출발하는 것일 텐데, 저자가 사전에 쏟는 열정을 읽고서야 사전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사전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을 경우 앞으로 우리 어휘력이 퇴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사전은 수천 만 건이 넘는 언어 자료를 뽑아서 계속 보완하면서 분석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 1960년대까지 세계 영어사전 시장을 주도한 미국이 1970년대 들어와 영국에게 자리를 내어줬는데, 이것은 민영화와 함께 장기 투자보다는 단기 이익에 치우쳐 제대로 투자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종이로 된 한글대사전도 곁에 두고 있고 모바일마다 굳이 돈 들여 국어사전, 영어사전, 옥편을 깔아놓고 쓴다. 그것이 우리말 우리글을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5백종 이상 1천권 넘는 사전을 가지고 있다. 사전이라면 눈에 보일 때마다 사야 한다고 했다. 사전 한 권에서 제대로 된 표현 하나만 건져도 그 사전 값은 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전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문학작품은 번역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역사서나 과학서는 사실 비중이 크고 이리저리 확인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하지만 문학서는 뛰어난 작품일수록 논리가 개인적이고 창조적이어서 논리가 상투적이지 않고, 그래서 그 논리를 정밀하게 좇는다는 것은 웬만한 내공이 아니고서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 작가가 쓰는 언어와 문화를 따라잡기 위해서 구글 이미지나 유튜브 동영상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와 같이 사전이나 각종 자료를 손에 넣는다 해도 저자는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사전도 살아 있는 표현의 일부만 담아낼 뿐이어서 결국 번역가의 독특한 그리고 고유한 어휘력이 더해져야 비로소 번역다운 번역을 할 수 있다면서 그런 어휘력을 갖추기 위해 평소에 좋은 문장을 머릿속에 많이 담아놓기를 권한다. 그런 어휘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번역도 결국 글쓰기이니.


저자는 번역 일선에서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역 번역가이다. 일지 쓰듯 남겨놓은 기록을 나름 체계를 잡아 정리해 이 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스스로는 이 책을 이론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번역을 업으로 삼으면서 20년 동안 잡다한 번역을 해온 사람이 내놓는 한국어 임상보고서라고 여겨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한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번역의 교과서요 더 나아가 번역에 필요한 예문과 어휘를 풍성히 담은 사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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