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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an 09. 2022

아랍에미리트 헌법

군주제 연방국가인 아랍에미리트의 헌법

명지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

모시는사람들

2014년 6월 30일


걸프협력체(GCC) 6개국 중 크기나 국력으로 볼 때 사우디가 단연 으뜸이지만 얼마 전부터 아랍에미리트가 최근에는 카타르가 괄목상대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져 사우디에 대놓고 반기를 들거나 적어도 불만을 표출하는데 망설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지난번에 사우디 헌법인 통치기본법을 읽고 난 후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 헌법을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같은 GCC 국가라고 해도 사우디는 왕국이자 이슬람종주국, 아랍에미리트는 입헌군주제의 연방국가, 카타르는 입헌군주제 단일국가라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특징이 헌법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세계에 여러 연방국가가 있기는 하지만 다른 국가체제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연방과 각 토후국이 권한과 책임을 어떻게 나누어 갖는지 개념조차 서있지 못한 편이다. 그래서 연방헌법을 읽으면 어느 정도 윤곽을 그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연방헌법은 그야말로 연방 상호간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그것으로 실질적인 국가지배체제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1916년 영국과 프랑스 간의 비밀협정인 ‘사이크스-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에 의해 카타르ㆍ바레인ㆍ쿠웨이트를 포함한 걸프 연안의 여러 토후국들이 영국 위임통치지역으로 편입되었는데, 이 중 쿠웨이트가 1961년 6월, 바레인은 1971년 8월, 카타르는 1971년 12월에 독립했으며, 나머지 7개 토후국들은 1971년 12월에 아랍에미리트연방으로 독립했다(7개 토후국 중 라스알카이마는 나머지보다 1년 늦게 가입). 당초 바레인과 카타르도 아랍에미리트연방에 가입하기로 했다가 단독으로 독립하는 독자노선을 걸었다.


뒤늦게 연방에 가입한 라스알카이마를 제외한 6개 토후국 대표들은 아랍에미리트연방 독립에 앞서 1971년 7월 두바이에서 총 10장 152조로 구성된 헌법에 서명함으로서 근대국민국가의 기본 틀을 갖춘다.


이슬람의 위상


사우디는 이슬람 종주국으로서의 정체성을 통치기본법 조문 곳곳에 반영하고 있다. 국왕의 명칭이 ‘두 성지 메카ㆍ메디나의 수호자’이고, 국가의 모든 권력은 이슬람의 가르침에서 출발하고, 그래서 교육의 첫 번째 목표가 이슬람을 가르치는 것이며, 정부의 모든 정책이 이슬람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군대도 이슬람 신앙과 두 성지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아랍에미리트는 헌법 제7조에서 이슬람을 ‘연방의 공식종교’이자 이슬람의 가르침을 ‘입법의 주요 원천’으로 표시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적어도 이슬람이 국교로는 지정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너무도 달라 당황스러울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연방 시민은 인종이나 출신지, 사회적 지위 뿐 아니라 종교적 신념에 따른 차별도 없다(제25조)”는 조문과 “공중도덕에 위배되지 않는 한 종교의식을 보장한다(제32조)”는 조문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2009년 부임 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성경책을 들고 들어서는 나를 보고 기겁하던 사우디 한인교회의 분위기와 당시 창립기념주일에 한국에서 강사를 초청해 공개적으로 대대적인 집회를 벌이던 두바이 한인교회의 분위기가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 이슬람 이외 종교에 대한 포용성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이슬람에 대한 헌법의 무게가 달랐던 것이다.


연방의 통치구조


아랍에미리트의 수장은 대통령이고, 정부 수립 이래 지금까지 토후국의 맏형인 아부다비의 통치자(셰이크)가 대통령을, 둘째인 두바이의 통치자가 부통령 겸 총리를 맡고 있다. 내각에서 실세로 꼽히는 국방부, 내무부, 외무부, 재무부는 아부다비 통치자인 알나얀 가문과 두바이 통치자인 알막툼 가문이 맡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관까지는 몰라도 대통령은 아부다비 통치자가, 부통령은 두바이 통치자가 맡는다는 정도까지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헌법은 대통령과 부통령을 각 토후국 통치자로 구성된 ‘연방최고회의(Federal Supreme Council)’에서 선출한다고만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제51조). 또한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5년이고 재선을 허용하고 있지만(제52조) 초대 대통령인 자이드 알나얀은 33년, 현 대통령은 18년째 재임하고 있으며, 현 부통령인 무함마드 알막툼도 16년째 재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아랍에미리트는 민주국가의 외형을 띄고 있으나 실제로는 군주제 국가라는 것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다만 사우디의 경우 모든 권한이 국왕에게 주어진 것에 반해 아랍에미리트는 각 토후국 통치자의 회의체인 ‘연방최고회의’에 권한이 주어졌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앞서 말한 대로 ‘연방최고회의’는 각 토후국의 통치자로 이루어지며 모든 토후국은 의결 때 한 표를 행사한다(제46조). 그렇다고 모든 토후국이 같은 권한을 갖는 것은 아니다. 아부다비는 아랍에미리트 전체의 84%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연방 전체 석유매장량의 94%를 보유하고 있어 나머지 6개 토후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 토후국에서 대통령을 맡고 국가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연방최고회의’ 의사결정에 이러한 요소가 반영되어 있다. ‘연방최고회의’에서 의결하려면 7개 토후국 중 5개 토후국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고, 5개 토후국 중에 아부다비와 두바이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제49조). 다시 말해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거부권을 인정한 것이다. 아부다비는 명실 공히 아랍에미리트의 맏형이니 당연한 일이고, 두바이는 면적이나 석유매장량이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이미 세계적인 금융 및 교통 허브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동일한 영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런 차등의결권은 입법부에 해당하는 ‘연방국가평의회(Federal National Council)’의 평의원 구성에도 반영해 전체 40석 중 아부다비와 두바이에 각 8석, 샤르자와 라스알카이마에 6석, 나머지 토후국에 4석씩 배정하고 있다.


‘연방국가평의회’를 입법부로 여기는 것은 법안의 토의ㆍ동의ㆍ수정ㆍ거부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안 발의 권한은 ‘연방각료회의(Council of Ministers)’에 있고(제60조) ‘연방국가평의회’ 심의를 거친 후에 ‘연방최고회의’ 의결을 거쳐야(제47조) 비로소 대통령이 법안을 공포하며, 또한 ‘연방국가평의회’가 법안을 거부했다고 해서 그 법안이 부결되는 것도 아니고 ‘연방최고회의’ 결정으로 이를 공포할 수 있다(제110조). 일반 법안이 ‘연방각료회의’에서 발의하는 것과 달리 헌법은 ‘연방최고회의’에서 개헌을 발의한다. 국가 예산 및 결산은 법으로 공포하며 일반 법안과 동일한 절차를 거친다.


‘연방국가평의회’는 법안 심의 외에 ‘연방각료회의’가 금지하지 않는 한 연방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심의하고 관련 부처 장관을 불러 질의하고 의견을 표명할 수는 있다(제92조). 이 조문을 뒤집어 보면 ‘연방각료회의’가 이 모든 권한을 금지할 수도 있고 심의 결과에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평의원을 각 토후국에서 선출하고, 법안을 심의는 하지만 결정 권한이 없고, 연방과 관련된 공적 사안에 대해서는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밖에 권한이 없다는 점에서 (사우디의 ‘슈라위원회’와 마찬가지로) ‘연방국가평의회’를 입법부로 보기는 어렵고 이에 대응하는 기구 정도로 이해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사법기구인 ‘연방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5명 이내로 구성되는 ‘연방최고법원’과(제96조) 연방 1심 법원인 ‘연방하급법원’을 둔다(제95조). ‘연방최고법원’은 토후국 사이의 분쟁이나 토후국과 연방 사이의 분쟁, 위헌심판, 안보관련 범죄를 다루며(제99조) ‘연방하급법원’은 연방과 개인 사이의 분쟁을 다룬다(제102조). 특이한 것은 연방의 수도에서 발생한 개인 사이의 분쟁도 ‘연방하급법원’에서 다룬다는 점이다. ‘연방법원’이 다루는 사안은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으로 국한시켜놓았고, 이 밖의 (형사소송이나 개인 사이의 분쟁을 포함한) 모든 소송은 각 토후국의 지방법원에서 다룬다(제104조). 다만 토후국이 지방법원의 관할권의 일부 혹은 전부를 ‘연방하급법원’으로 이관할 수 있다(제105조). ‘연방최고법원’ 법관들은 ‘연방최고회의’의 승인을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데(제96조),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동안에는 해임되지 않는다(제97조)는 조문이 눈길을 끈다. 사법을 포함한 모든 권한이 ‘연방최고회의’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법관들이 그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런 법관을 보호해야할 경우가 일어날 수 있는지 의아하다.


연방과 토후국의 관계


사우디 통치기본법이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아랍 이슬람 국가’라고 자국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으로 통치기본법을 시작하는데 비해 아랍에미리트는 ‘주권을 가진 독립 연방국’으로 자국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으로 헌법을 시작한다. 아랍에미리트는 1971년 6개 토후국으로 연합체를 구성했다가 다음 해에 라스알카이마가 가입해 현재 7개 토후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토후국 모두가 찬성할 경우 어떤 ‘아랍 독립국가’도 연합체의 일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제1조). 이 경우 ‘연방국가평의회’의 평의원 의석을 할당한다. 토후국이 합의하고 ‘연방최고회의’의 승인을 받으면 토후국 사이의 정치적 행정적 통합도 가능하다(제118조).


영토와 영해에 대한 모든 주권은 각 토후국에 있으며(제2조), 부와 천연자원 역시 토후국의 공적자산으로 여기고(제23조), 연방이 관할하지 않는 모든 사안에 대한 주권도 토후국이 가진다(제3조). 그러나 연합체의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 통합된 경제 및 관세 체계를 유지하며 토후국끼리 자본과 상품을 교환하는데 세금이나 통행료를 포함한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는다(제11조). 다만 외교ㆍ안보ㆍ국방 정책은 연방의 결정에 따른다(제12조). 육군ㆍ해군ㆍ공군으로 이루어진 군대는 연방만 보유할 수 있다고는 되어 있으나(제138조, 제142조) 일부 조문에서 토후국 관할의 ‘지방군’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어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제143조). 연방헌법은 각 토후국 헌법보다 상위에 있으며 헌법에 따라 공포된 연방법 또한 토후국 법률이나 규정보다 우선권을 갖는다고 규정하는 조문(제151조)에 따르면 각 토후국이 헌법과 법률을 운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위법과 충돌할 경우 ‘연방최고법원’의 판결에 따른다.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 공공차관ㆍ통신ㆍ도로교통ㆍ공중보건ㆍ전력ㆍ통계ㆍ교육을 연방에서 담당한다(제120조). 연방 재정은 연방법에 따른 세금, 토후국 부담금, 연방 소유 재산에서 나오는 연방수입으로 충당한다(제126조).


자유와 권리 보장


사우디 통치기본법에도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조문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보장하는 권리의 대부분은 이슬람 신앙을 제대로 지키기 위한 것이고 그밖에는 취업ㆍ교육ㆍ보건에 국한된다. 인권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샤리아’에 의해 보호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아랍에미리트 헌법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바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와 공공의무를 규정한 제3장이었다. 모두 20개 조문으로 이루어진 제3장에서는 국민 각자가 보장받아야 하는 자유와 권리에 대해 자세하게 열거하고 있으며, 심지어 종교적 신념에 따른 차별도 금지하고 공중도덕에 위배되지 않는 한 종교의 자유도 허용하고 있다.


왕정국가나 실질적인 전제군주제 국가인 GCC 국가들은 헌법 조문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조문이 추상적이거나 그나마도 몇 개 되지 않아 헌법 조문만으로도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아랍에미리트 헌법은 일단 차별이나 국가의 부당행위 금지 항목을 다양하게 열거하고 있다. 조문 곳곳에서 집회결사의 자유(제33조), 거주의 자유 및 거주지 보호(제36조), 정치적 난민 인도 금지(제38조), 판결에 의하지 않는 재산 몰수 금지(제39조), 국제헌장에서 결정한 권리와 자유 보장(제40조)을 명시하고 있다.


기타


헌법이 국민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한다는 기본 정신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조문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기업의 자유도 보장하여야 하니 기업 활동을 보호하는 조문이 포함되는 것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랍에미리트 헌법은 피고용자와 고용주를 보호한다는 사우디 통치기본법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피고용자의 권리와 고용주의 ‘이익’을 보호한다(제30조)고 명시하고 있는 건 불편하다. 물론 악명 높은 GCC 국가들의 스폰서 제도의 해악을 십 년 넘게 체감한 사람으로서 가지는 개인적인 감정일 수 있다.


그동안 접해온 보도 내용을 보면 아랍에미리트에서 이 모든 자유와 권리가 다 보장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관련 조문이 사우디에 비해 다양하고 세세해 인권 보장에 대한 의지가 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슬람 관련 조항이 생각 밖으로 최소한으로 그치는 것 또한 놀랍다. 아랍에미리트가 사우디에 비해 여러 모로 개방적인 것이 이와 같은 헌법의 영향이 아닐까 한다. 어쩌면 워낙 개방적인 사고방식과 환경이 헌법으로 표현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관점에서 앞으로 읽게 될 카타르 헌법이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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