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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an 11. 2022

카타르 헌법

민주주의 GCC 회원국

명지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

모시는사람들

2015년 4월 30일


2017년 6월 사우디가 카타르의 친이란 정책을 비난하며 이웃한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을 부추겨 카타르와 단교를 선언했다. 단교가 있기 전에도 두 나라의 관계는 늘 아슬아슬했다. 겉으로는 카타르의 친이란 정책이나 무슬림형제단에 우호적인 태도를 문제 삼았지만, 실제로는 알자지라 방송이 사우디의 치부를 까발리는 것이 몹시 불편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아랍국가의 맹주를 자처했던 사우디로서 자신의 결정에 사사건건 토를 달고 나서는 카타르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단교를 당했으면 고전이라도 해야 할 텐데, 이란을 비롯한 몇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카타르를 돕고 나서기도 했고 카타르 국왕이 물량공세로 맞섬으로서 오히려 사우디가 수세에 몰리는 지경이 되었으니 맹주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결국 사우디는 2021년 1월 자신이 부추겨 단교에 나서게 했던 아랍에미리트에는 알리지도 않고 카타르에 대한 단교를 풀어버렸다. 객관적으로 보면 사우디로서는 더 큰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그것이 그렇지 않아도 사이가 껄끄러웠던 아랍에미리트와는 감정의 골을 더 깊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사우디는 코로나를 핑계로 아랍에미리트에서 자국으로 오는 항공편을 막았고 대신 카타르 도하에서 오는 항공편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 휴가 때 늘 오던 대로 에미리트항공을 타고 두바이를 경유한 게 아니라 카타르항공을 타고 도하를 경유해 한국에 왔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무엇이 카타르를 짧은 시간에 저토록 당당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카타르는 사촌인 아흐메드 국왕(에미르)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칼리파 국왕이 아들인 하마드에게 다시 쫓겨난 영예롭지 못한 역사가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그렇게 왕위에 오른 하마드 국왕은 예순이 갓 넘은 2013년에 이제 삼십 중반인 아들 타밈에게 양위하고 뒤로 물러앉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후로 뭔가 열심히 바꾼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래봐야 작은 나라에서 뭘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민주국가를 지향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것 또한 왕실이 건재한데 뭐가 바뀔까 싶었다.


사우디 통치기본법을 읽고 나서 카타르 헌법이 몹시 궁금했다. 아랍에미리트는 연방국가라는 특성이 헌법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궁금했다면 카타르는 그들이 지향한다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가 얼마나 마련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권력 분점


놀랍게도 카타르 헌법은 민주주의 국가임을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제1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제592조), 권력은 분점되고(제60조), 입법부는 슈라위원회가 담당하고(제61조), 행정부는 국왕이 담당하며(제62조), 사법부는 헌법에 의해 수립된 법원이 담당한다(제63조)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사우디나 아랍에미리트에도 행정부ㆍ입법부ㆍ사법부가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사우디는 국왕의 하부기관에 지나지 않고, 아랍에미리트도 각 토후국 통치자들의 연합체인 ‘연방최고회의’ 통제 아래 있다. 결국 국가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는지 여부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국왕이나 통치자들을 견제할 장치가 있는지에 달려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래서 헌법 조문 중 국왕에 대한 견제장치에 초점을 맞춰 살펴봤다.


우선 입법부인 슈라위원회는 45명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15명은 국왕이 임명하고 정원의 2/3인 30명은 국민이 직접투표로 선출한다(제77조). 임기는 4년으로(제93조), 의원 중에서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하고(제93조), 불체포 특권이 보장된다(제113조). 카타르는 정당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과연 야당 성향의 위원이 얼마나 선출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정부에서 기피하는 인물이 위원으로 또는 의장이나 부의장으로 선출되는 길이 열려 있고 신분도 보장된 셈이다.


법안은 슈라위원이 발의하며 슈라위원회에서 의결된 법안은 정부의 검토를 거쳐(제105조) 국왕에게 제출된다. 국왕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이를 돌려보낼 수 있으나, 슈라위원회가 위원 2/3 이상의 동의로 다시 의결할 경우 국왕은 이를 반드시 공포해야 한다(제106조. 문장만으로는 제67조에 “국왕이 승인하지 않은 법률은 공포되지 못한다”는 규정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문맥상으로는 슈라위원회의 재의결까지 제한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국왕이 긴급하다고 판단할 경우 법적 효력을 갖는 칙령을 공포할 수 있다. 그러나 슈라위원회에서 2/3 이상 의결로 이를 거부할 경우 이 칙령은 폐기된다(제70조). 또한 슈라위원회에서 2/3 이상 찬성으로 장관 불신임을 의결할 경우 불신임이 의결된 날로부터 장관직을 사임한 것으로 본다(제111조).


예산은 행정부에서 제출한 것을 슈라위원회에서 승인하며(제76조), 슈라위원회의 승인이 없으면 예산은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 예산이 승인되지 않을 경우 국왕이나 행정부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절차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으며, 예산이 승인될 때까지 전년도 예산을 따른다(제107조).


실제로 헌법이 어떻게 운용되는지에 무관하게 제도만으로 보면 슈라위원회 위원 2/3를 직접투표로 선출할 수 있으니 국왕의 의사에 반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고, 국왕의 칙령을 폐기할 수 있고, 국왕이 임명한 장관을 해임할 수 있으며, 예산을 승인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 셈이다. 대신 국왕은 칙령으로 슈라위원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과(제104조) 위원 2/3 이상 의결로 개정된 ‘헌법’을 승인하지 않을 권한(제144조)을 가진다. (그러나 슈라위원회 해산은 같은 이유로 두 번 할 수는 없도록 제한해 놓았는데, 이미 해산된 슈라위원회를 어떻게 다시 해산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6개월 안에 새로 구성될 슈라위원회를 말하는 것인가?)


민주주의 국가 기준으로만 보면 이러한 제도가 미흡한 점이 있을 수 있지만 입헌군주제라고 해도 국왕이 실질적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국가로서는, 특히 왕정과 군주제 국가 일색인 GCC의 일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기대 이상으로 국왕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어서 놀라웠다.


국왕의 통치권


카타르는 1971년 9월 독립되면서 임시헌법을 제정하고, 1972년과 1996년에 개정되었으며, 최종적으로 2003년 유권자의 96% 찬성으로 영구헌법을 제정했는데, 헌법 개정과 영구헌법 제정은 모두 쿠데타의 소산이다. 독립 당시 왕위에 오른 아흐메드 국왕은 1972년 사촌동생인 칼리파에게 축출되고, 칼리파 국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헌법을 개정했으나 1995년 아들 하마드에게 왕위를 찬탈 당한다.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하마드 국왕은 다음 해인 1996년 헌법을 개정하고 뒤이어 2003년 왕위 계승 절차를 포함한 총 5장 150조의 ‘영구헌법’을 제정한 후 2013년 아들 타밈에게 양위하고 물러난다. 아마 왕위 찬탈의 역사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국가의 통치권인 국왕의 왕위는 하마드 국왕의 남자 후손에게 세습되며, 이를 위해 국왕이 해당 후손을 왕세자로 지명한다(제8조). 사우디처럼 ‘충성위원회’에서 왕세자를 선출하는 것도 아니고 아랍에미리트처럼 ‘연방최고회의’에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국왕이 지명한다는 것이다. 왕위세습에 거칠 것이 없는 셈이다. 물론 ‘통치가문위원회(Council of Ruling Family)’가 있기는 하지만 단지 국왕이 서거하거나 직무 능력을 상실했을 경우 국왕의 궐위를 결정하고 왕세자를 국왕으로 선포하는 역할을 담당하니 큰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는 해도 ‘국왕의 직무 능력 상실’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왕세자가 국왕에 오를 때 18세가 되지 않으면 ‘통치가문위원회’가 ‘섭정위원회’를 구성해 거기에 통치권을 이양할 수 있으니(제16조) 유명무실한 것으로 여길 수만은 없겠다.


앞선 헌법과 달리 2003년에 ‘제정’된 헌법은 ‘영구헌법’으로 부르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왕위 계승 절차와 “국가의 통치와 통치의 승계에 관한 개정 요구는 허용되지 않는다”(제145조)는 조문을 못박아놓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자유와 권리 보장


자국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헌법을 시작하는 나라답게 국민의 자유와 권리도 폭넓게 보장한다. 모든 국민은 평등하며(제34조), 성별ㆍ혈통ㆍ언어ㆍ종교로 인해 차별받지 않고(제35조), 고문은 법률에 의해 처벌하는 범죄로 여기고(제36조), 사생활은 불가침한 것이고(제37조),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한다(제39조). 집회(제44조), 결사(제45조), 청원(제46조), 표현(제47조), 언론출판(제48조), 신앙(제50조)의 자유를 보장한다. 물론 모든 자유는 ‘법률에 의하여’라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앞서 살펴본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보다는 보장하는 자유가 좀 더 구체적이다.


기타


사우디는 통치기본법 전체가 이슬람 수호를 위해 마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슬람에 직접 간접으로 관련된 조문이 많다. 아랍에미리트는 헌법 제7조에서 이슬람을 ‘연방의 공식종교’이자 이슬람의 가르침을 ‘입법의 주요 원천’으로 표시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카타르 또한 제1조에서 이슬람이 국교이고 모든 법률은 이슬람의 가르침인 샤리아에서 출발한다고 언급한 것이 전부이다.


카타르 국부의 원천인 천연자원은 앞선 두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가소유이다(제29조). 후손의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환경보호와 자연환경의 균형을 위해 노력한다(제33조)는 조문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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