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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r 02. 2022

저항하는 그리스도인

한국교회 빛의 역사

강성호

복있는사람

2019년 1월 25일


저자는 전작인 <한국 기독교 흑역사>에서 1920년대에 이르러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된 한국교회가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 존재의 목적인 ‘성취 메커니즘’보다 교회라는 조직의 존속을 위한 ‘유지 메커니즘’이 과잉되면서 제도화된 교회를 지키고 성장 확장하는데 온 힘을 다하게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말하자면 수단에 지나지 않는 ‘교회조직’을 지키는 일이 교회의 목적으로 올라섰다는 말이다. 그 결과로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지배체제에 들어갔고, 해방 후에도 교회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권력과 타협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지금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 교회의 갖은 추문을 빚어내기에 이르렀다.


십 년 넘게 한국교회에서 떠나 있으면서 그동안 내가 가져온 신앙이 기독교의 본질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저자의 전작을 읽고서야 비로소 한국교회가 ‘유지 메커니즘’ 과잉의 결과로 수단에 불과한 ‘교회조직’이 목적으로 올라섰으며, 그 결과 교회가 그리스도를 내세우나 그리스도와 무관한 조직이 되어갔고, 그 속에 머문 나는 그것을 신앙으로 착각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런 곳에 머무르지 않기로 하고 서울로 돌아온 후에 출석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저자의 전작은 내게 큰 울림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의 후속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저저는 머리말에서 전작인 <한국 기독교 흑역사>가 권력에 야합한 한국교회 역사의 그림자를 다루었다면 이 책에서는 권력에 저항한 빛의 역사를 다루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한국교회가 저항한 모든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부끄럽게도 그 중에는 교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저항한 사례가 적지 않다. 주일에 행사를 치르면 안 된다거나, 교회에 세금을 부과하면 안 된다거나, 교회 건축을 위해 관련 법규를 고쳐달라고 정부에 저항한 부끄러운 역사는 손꼽기도 바쁘다.


전쟁 발발로 일본이 급속히 군국주의화 되면서 조선총독부는 신사참배를 요구하고 이것을 천황숭배에 연결시켜 복종의 논리를 끊임없이 주입시킨다. 뿐만 아니라 천황이 기거하고 있는 방향으로 절을 하는 궁성요배나 창씨개명도 요구하는데 이는 모두 천황숭배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를 거부하자 조선총독부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미션스쿨을 폐교시키겠다고 협박하고, 이에 따라 미션스쿨은 신사참배를 받아들이고 학교를 계속 유지하거나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폐로를 감수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일부 선교사들은 신사참배를 국가의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선교사들로서는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미국으로 떠나버리면 그만이지만 미션스쿨의 교사와 학생들은 하루아침에 직장과 학교를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었다.


신사참배 거부가 확산되자 조선총독부는 예배당 국기게양, 국기에 대한 경례, 동방요배, 국가봉창, 황국신민 서사 제창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할 경우 관계법규에 따라 처벌하기에 이른다. 결국 1936년 감리교에서 국가의례라는 이유로 신사참배를 수용하고, 이어 1938년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한다. 물론 이를 저지하다가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신사참배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은 제도권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일부는 교회 불출석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주요인물 중에 주기철과 안이숙은 창씨개명을 하고, 손양원은 검사 신문에서 천황통치가 별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던가 중일전쟁을 하나님께서 일본이 동양평화를 이룩하도록 허락하신 것이라고 답하고, 조수옥은 위에 있는 권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근거로 신사참배는 신앙적 행위일 뿐 식민 지배를 부정하는 건 아니라고 항변한다. 말하자면 성속이원론(聖俗二元論)에 따라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충성과 지상 정부에 돌려야 하는 충성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만 두 요구가 충돌할 경우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우선순위로 삼았을 뿐이다.


저자는 신사참배ㆍ궁성요배ㆍ창씨개명이 모두 천황숭배를 조성하기 위한 구조이고 궁극적으로 우리 민족을 복종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창씨개명을 하고, 중일전쟁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고 말하고, 자기는 식민 지배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항변하는 사람들이 단지 신사참배를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항일운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저자가 언급한 대로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위배되는 문제에 대해 저항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는 종교적 의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식민 지배를 긍정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어떻게 한국교회 빛의 역사로 내세울 수 있는가. 이런 논리가 지금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괴리되어가고 있는 원인은 아닌지 모르겠다.


4월 혁명을 계기로 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해 독재권력ㆍ부조리ㆍ부정부패와 같은 체제 모순을 불의로 여기고 군부독재정권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거나 국가폭력으로 유린된 인권을 지키는 일에 적극 나서게 된다. 4월 혁명을 통해 역사적 회심ㆍ저항의식ㆍ교회개혁ㆍ새로운 기독론이 형성되면서 불의에 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전면에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1967년 6.8총선이 부정선거로 얼룩지면서 형성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소용돌이 이슈로 자리 잡는다. 저자는 그 이전에도 기독교인들이 시위에 참여하거나 구국기도회라는 명목으로 교회에서 모이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6.8 부정선거 규탄시위부터라고 말한다.


한국교회의 대표적 진보신학자 김재준은 6.8 부정선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힌다.


“우리는 여야 어느 쪽도 편들지 않는다. 그러나 불의가 있을 경우에는 어느 편 어느 누구의 소행이라도 이를 묵과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 땅에 의를 세우는 것이 우리 신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교회와 사회는 한 신앙생활 안에서 어울려 돌아간다. 분별되어 있으나 분리될 수 없다. 누룩이 가루 반죽에 섞여 온 반죽이 부푸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역사의 문제는 그대로 신앙의 문제인 것이다.”


저자는 한국교회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시점을 김재준 목사가 삼선개헌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에 참여한 시점으로 본다. 진보 기독교 진영의 청년들이 민주화운동에 조직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건 1971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였다. 기독청년들이 교회와 사회를 향해 양심의 부활을 촉구하기 위해 벌인 십자가행진이 경찰에 의해 강경 진압되자 민주수호를 내건 단체들이 속속 등장한다. 민주수호야 말로 그리스도인들이 양심을 가지고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이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요건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1971년 선거에서 민주진영이 선거참관인단으로 파견한 6,139명 중 1,140명이 기독청년들이었다. 1972년 10월 유신이 일어난 다음 해 남산 부활절연합예배 사건으로 기독교 인사들이 반체제 혐의로 구속되자 한국 교회는 이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해 국제적인 기독교 네트워크의 지원을 얻어낸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 빛의 역사라고 내세울만한 이러한 정치적 저항운동은 지금 더 이상 사회의 지지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한 감마저 있다. 저자는 그 원인을 정치세력에게 궁극적인 충성을 바치지 않는다는 ‘예언자적 거리두기’가 간과되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진보 기독교 진영은 1987년 대선 때 야권후보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을 겪었으며, 민주 대 반민주라는 정치적 프레임을 강화시켜 민주진영에 참여하는 것이 기독교 정치 참여의 전부로 만들었으며, 1997년 김대중 정부에서 진보 기독교 인사들이 정관계에 진출하면서 정치와 종교의 올바른 관계를 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2012년에도 마찬가지로 예언자적 거리두기에 실패한다. ‘후보 단일화에 대한 복음주의 기독인 선언’을 통해 이명박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규정하고 후보 단일화로 정권교체를 이루어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원했지만, 안타깝게도 여야를 아우르는 정책과 노선으로 양측을 압박한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방식을 택했다. 저자는 이 현상이 복음주의 진영이 보수 양당의 구조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선언은 동일한 방식으로 집권세력을 지지한 보수 기독교와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질타한다.


물론 ‘예언자적 거리두기’가 단순히 방관자가 되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공공선을 이루기 위해 좀 더 정치적이어야 하나 권력 구조에 종속되지는 말라는 것이다. 정의와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한쪽 손을 들어주는 상황이 되더라도 휘둘리지는 말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1987년 대선과 2012년 대선의 사례는 정치 질서 만들기라는 구조 속에 저항하는 그리스도인 스스로를 제한하고 말았다면서, 특정 진영의 논리에 갇혀버리는 순간 한국 기독교는 직능단체로 전락할 뿐이라는 말로 글을 마무리 짓는다.


저자의 견해에 동조할 수 없는 부분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지적은 너무도 선명해 이의를 달기 어렵다. 저자가 지적한 대로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저항의 역사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이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전작에서 한국교회의 그림자를 다룬 것이 안타까워 저자는 이 책에서 빛의 역사를 말하고 싶어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말이 좋지 않으면 결국은 좋다고 말할 수 없는 법. 굳이 저자의 의도에 동의하자면 “한국교회에도 한때 불의에 저항하던 빛의 역사가 있었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저자가 의도했던 대로 언젠가 한국교회 빛의 역사를 쓸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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