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2.04.08 (금)

by 박인식

엊저녁 아내가 안산에 꽃이 활짝 피었을 거라며 한 바퀴 돌아오자고 했다. 처형들도 오시라고 해서 함께 걷자니 반색을 했다. 큰 처형께서 쉬이 걷기 어려우셔서 평소 걷던 것보다 훨씬 천천히 걸었다. 천천히 걷는 게 익숙하지 않아 어쩌나 했는데 오히려 풀이며 꽃에 두루두루 눈길을 두고 걸으니 그것도 그럴듯하다.


아무 생각 않고 시간 흘러가는 대로 책 읽고 글 쓰고 가끔 이렇게 산보나 하면서 사는 게 좋기는 하다. 한동안 나이 하나 때문에 한 순간에 잉여인간이 된 것이 서운하다 못해 그런 사회가 비정하게까지 느껴졌는데, 세월이 약이라고 서운한 마음도 며칠 지나니 흐릿해졌다. 뭔가 할 일을 찾아보겠다는 결심도 시간 지나면 그렇게 흐릿해질까?


며칠 전 부산에서 일한 노임을 받았다. 아무 기술도 없이 그저 잡부노릇을 했는데 한 달도 채 안 되게 일하고 삼백만 원이나 벌었다. 혼잣말로 오년 만에 처음 집에 돈을 들였다고 하니 아내가 그동안 연금 받은 것도 당신이 번 건데 무슨 말이냐고 펄쩍 뛴다. 평생 배려가 몸에 밴 사람과 살아온 걸 보면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 모양이다.


낯설고 물 설은 남의 땅에서 십삼 년을 살았다. 믿고 따라준 후배들이 뜻을 펼칠 수 있게 발판을 만들고 싶어 자원한 길이었다. 나는 호의호식하고 살았는데 후배들에게 아무 것도 만들어주지 못했다. 그나마 마지막 오 년은 소송의 늪에 빠져 허우적댔다. 아직도 소송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깐깐하기 이를 데 없는 사업관리단조차 엄지를 치켜들 정도로 잘 끝낸 공사에 되지도 않는 이유로 부실공사 낙인을 찍어 공사비를 내놓지 않고 있는 사우디 정부와 줄다리기에 얼마나 더 진을 빼야할지. 생각만으로도 지친다.


지난 가을 리야드를 떠나오면서 그래도 올 초에는 돌아가겠지 생각했다. 계획을 4월로 미루고, 엊그제 다시 7월로 미뤘다. 거주비자를 갱신해야 하니 그때는 돌아가기는 해야 하는데. 누군가 세상은 견디는 것이라고 하더라만, 그게 칠순을 눈앞에 둔 오늘까지 계속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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