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회에 등록카드를 제출했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리야드에서 교회를 잘못 선택해 겪은 갈등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서 확신이 들기를 기다렸다. 귀국하면 모교회로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으면서 몇몇 교회를 눈여겨보았는데, 목사님 대부분이 은퇴를 앞두고 계셔서 그 중 젊은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교회로 결정했다. 설교자의 비중이 크게 작용하는 개신교 특성상 성향이 맞지 않는 목사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는 건 참 고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은퇴 이후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과 성향이 맞지 않아 다시 교회를 옮기는 일을 피하고 싶었다.
6학년 성탄절에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대학 때 잠깐 떠난 것 말고는 늘 교회 안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했다. 주일에 돈 쓰는 것조차 금하는 엄격한 보수교단에서 자라났고 결혼 후에 조금은 개방적인 교회로 옮겼지만 그곳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십년 넘게 떠나 있으면서 그동안 모교회의 정체성을 내 정체성으로 여기고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있는, 때로는 무관하기까지 한 모습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복음과 선교를 내세웠지만 그것은 세 확장 욕구를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고 그 바탕에는 철저하게 독선과 강자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이태 전에 차별금지법이 논란이 되면서 교회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해 많은 이들이 떠나고 그래서 교회가 예전의 영향력을 잃어 가는데, 정작 교회는 교회다운 모습을 회복하려고 애쓰는 대신 세 결집의 도구로 차별금지법 반대를 택했다. 그리고 그 기치를 내세운 이들이 모교회가 속한 교단이었다. 기독교인인 것이 너무 부끄러워 지난 가을 귀국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평등길 걷기’ 행렬 끄트머리에서 이틀을 걸었다.
등록하고 교인이 되려면 7주 교육을 받고 입교를 해야 한다고 해서 감사절 때 교육받기로 했다. 등록하지 않았다고 교인이 아닌 건 아니겠지만, 교육받고 입교하면 아무래도 교인으로서 책임감을 더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내 신앙에 도움이 되기도 할 것이고. 안내해주신 목사님께서 입교하면 제직이 될 수도 있다고 친절히 설명해주셨다. 아직은 은퇴할 나이로 안 보이는 모양이다.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