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2.04.11 (월)

by 박인식

십 수 년 만에 돌아오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그동안 자주 다녀가기는 했어도 잠시 다녀가는 것이니 그저 필요한 곳만 찾았다. 점에서 점으로 옮겨 다녔다는 말이다. 이번엔 돌아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비로소 점과 점을 선으로 이으며 돌아다녔다. 스쳐 지나는 것 하나 예사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산자락을 걷거나 개천을 따라 걷기가 너무 좋고, 걷다가 쉴 곳도 보고 즐길 것도 하나둘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친절하고, 백발이 훈장이 되어 어지간한 곳은 무상이고 그렇지 못하면 할인이라도 받는다. 잊었던 고향의 맛을 찾는 건 또 어떤가.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어디서나 우리말을 할 수 있고 우리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의 땅에서 살고 일하려니 남의 말과 글을 써야했지만 그게 어디 지식으로 해결되는 문제인가. 의사는 전달했을지 모르지만 의도와 감정까지 싣기는 어려웠다. 나는 관습과 문화의 차이가 그렇게 많은 갈등을 일으킬 거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내가 이러니 아내는 어땠을까. 말 통하는 이웃 하나 없고 그나마 몇 없는 이웃 만나러 나갈 대중교통조차 없는 곳이었으니 지난 십 수 년이 감옥이었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내가 아내 등을 떼밀어 내보낸다.


7월 전에 소송이 정리될 가능성이 없으니 거주비자를 연장하러 가기는 해야 할 텐데, 연장은 내 것만 하고 아내 것은 반납해야겠다. 같이 살아야 부부라지만 더 이상 그렇게 살라는 건 가족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소송 시작할 때 짧아도 몇 년은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준비부터 따지면 십 년이 내일모래다. 출구전략을 생각했어야 할 시기는 오래 전에 지나갔다. 견디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한 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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