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2.04.13 (수)

by 박인식

몇 년 전에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한 ‘인턴’이라는 영화를 인상 깊게 봤다.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 덕에 의류업체에 인턴으로 취업한 은퇴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였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경륜이 회사 경영과 회사 구성원들의 문제 해결에 빛을 발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마 모든 은퇴자들의 꿈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기회 갖기를 꿈꿨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기대해서는 아니었다. 그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인 걸 모를 만큼 철없을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그저 은퇴자에게 작은 역할이라도 맡기는 그런 기회를 바랄 뿐이다.


은퇴자들에겐 젊은이들이 갖지 못한 장점이 있다. 자기 개발이나 자기 역할을 키우려는 욕심이 없다. 한창 일할 나이의 사람들은 직장 구할 때 당장의 조건 못지않게 자기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살피지 않는가. 누군가 눈앞의 조건에 혹해서 자기가 성장할 가능성이 없는 회사에 들어가겠다면 나라도 말리지 않겠나. 하지만 은퇴자들은 일할 기회 그 자체에 만족하니 회사로서는 오히려 인력관리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것이 아니냐. 그래도 그렇게 문을 열어놓은 회사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물론 이유가 짐작가지 않는 건 아니다.


온라인 구직사이트에서 사무보조원을 구하는 광고를 찾았다. 늘 써왔던 소프트웨어에 익숙한 정도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해서 지원은 했지만 앞서 탈락됐다는 연락조차 받지 못했던 일이 몇 번 있어서 기대는 크게 걸지 않았다. 뜻밖에도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했고, 이력서를 보내고 나서 책임자의 연락을 받았다. 일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직원들이 어려워서 어떻게 일을 시키겠냐며, 대신 며칠짜리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안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마 그것이 은퇴자들을 채용하지 못하는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아직도 나이가 벼슬인 분위기에서 나이든 사람들에게 일을 시킨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시킨다고 고분고분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물론 처음에야 ‘왕년’을 모두 털어버리겠다고 작정이야 하지만, 수십 년 쌓인 습관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겠나. 마음 같아서는 은퇴자들을 채용하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도록 내가 좋은 예가 되고 싶기는 하다. 그렇다고 나는 특별히 다를 거라고 장담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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