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2.04.14 (목)

by 박인식

얼마 전 칠순을 맞은 처남은 워낙 오늘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입원해 여행 간다고 들떴던 아이들이 크게 낙심했다. 며칠 놀다올 생각에 주말에 해야 할 공부를 미리 당겨서 하기도 했다는 말에 처남은 병상을 지키는 아들 하나만 남겨놓고 모두 여행을 보냈다. 갑작스럽게 손발을 거의 쓰지 못하게 되었는데 병원에서는 원인이 무엇인지조차 찾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자 처남댁에게 자기가 잘못되면 큰아들과 살라고 당부했다던데, 그런 사람이 가족을 모두 여행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형제들이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내가 회사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을 때 아내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함께 살던 동생들이 며칠 지낼 수 있게 이런저런 준비를 해놓고 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공교롭게 우리도 처형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던 터라 그만두기로 했다가 계획대로 떠나왔다. 숙소에 짐을 풀고 십 수 년 만에 동해바다와 마주섰다. 어시장에 들러 젓갈이며 말린 생선을 사고 숙소로 돌아와 조카들과 밤늦도록 수다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결혼 초 어려웠을 때 조금 도와줬다는 이유로 조카 내외에게 늘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는다.


자리에 누워 처남댁에게 자기가 잘못되면 아들과 살라고 했다던 처남 생각을 했다. 우리가 벌써 그런 생각을 할 나이가 되었나. 수 년 전부터 삶을 잘 마무리하게 도와주시기를 구했는데 어느덧 그 생각은 없어지고 역할이 없어졌다는 것에 생각이 기울어져 징징거리고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나름 마지막을 잘 준비해오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동안 연명치료도 받지 않겠다고 등록하고 병이 들어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면 안락사도 선택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요 며칠 의기소침해 있던 나를 돌아보니 그 몇 년의 수고가 모두 헛짓이었다. 그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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