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원전은 기초 하부에 파쇄대가 많이 발달하고 있어 조사를 할 때마다 애를 먹는다. 그래서 조사가 시작되면 몸은 본사에 있어도 신경은 온통 현장에 쏠려있다. 때로는 급하게 현장에 내려가야 할 경우도 있는데, 예전에는 길이 좋지 않아 좋이 다섯 시간은 걸렸다. 늦어도 다음날 작업 시작하기 전에는 도착해야 해서 늘 밤새 운전해 내려갔다. 한밤중에 집에서 나와 길 중간 어디쯤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대관령을 넘어 동해를 끼고 달리기 시작하면 동이 터온다. 그때쯤에는 머릿속은 문제를 해결할 생각으로 복잡하고 몸은 고단하기 이를 데 없어 그렇게 좋아하는 동해바다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한 시간 넘게 내려오다 보면 아름다운 동해바다를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다. 특히 용화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언덕길은 멈추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유혹적이다. 언덕 끄트머리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맑은 공기에 심호흡 한 번 하고, 칼로 벤듯한 수평선을 넋 놓고 바라보노라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걱정 대신 한 번 해보자는 용기가 불끈 솟아오른다. 그 마음으로 파도가 부서지는 용화 해변을 향해 내려오곤 했다.
그렇게 걱정을 털어버리고 각오를 새롭게 하고 내려와도 현장에 도착해 상황과 맞닥뜨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릿속은 온통 걱정으로 차고 넘친다. 그렇기는 해도 용화 언덕길은 언제나 내 마음에 위로의 장소로 남아 있다. 그래서 동해 쪽으로 갈 일이 있으면 일부러라도 그곳을 찾는다. 아마 아들 내외를 앞세우고 찾았던 것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벌써 십 수 년 전 일이 되었다.
내게는 금하나 긋는 것으로 하늘과 바다가 나뉘는, 아니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동해바다가 제대로 된 바다다. 그래서 한동안 온라인에서 ‘바다’라는 이름을 썼다. 비록 “‘바다’는 무슨 얼어 죽을 ‘바다’, 하는 짓이라고는 소리만 요란 한 ‘얕은 물’만도 못하다”는 뒷담화에 그때부터 ‘얕은 물’이라는 이름을 써오고는 있지만.
이번에 여행 오면서 조카가 용화에 레일바이크 타러 가기로 계획을 세워놨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양양으로 가자는 말에 이참에 용화에 한 번 가봤으면 했지만 식구들에게 가자고 하기엔 좀 먼 곳이라 말을 꺼내지 못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