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2.04.16 (토)

by 박인식

금 하나 긋는 것으로 하늘과 바다가 나뉘어야 바다인 줄 알고 살았다. 가난을 피해 채 청년이 되기도 전에 무작정 상경하신 아버지 고향의 바다가 그랬기 때문이었다. 할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서너 번쯤 다녀온 것 같은데, 청량리역에서 밤 열 시엔가 기차에 올라 중간에 세 번 갈아타고 삼척에 내릴 즈음이면 점심때가 되었다. 모처럼 장손이 내려온다고 집안 어른들이 기다리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작은집에 도착하면 늘 바닷가로 내달렸다. 그 바다가 바로 금 하나 긋는 것으로 하늘과 바다가 나뉘는 바다였다.


내년이면 내가 아버지 돌아가실 때 나이가 된다. 육십 줄에 들어서면서 내가 과연 아버지 나이만큼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언젠가 일찍 아버지를 여윈 친구들에게 아버지 돌아가신 나이가 되니 마음이 어떻더냐고 물은 일이 있었다. 하나같이 그렇게 조심스럽고 때로는 무섭기까지 하더라고 했다.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내년이 되면 어떨는지 모르겠다.


양양에 내려가면서 용화 언덕에 가봤으면 했지만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은 아버지가 태어나고 아버지의 혈육이 살던 정라항이었다. 이제는 삼척항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작은 어선들이 부지런히 드나들던 항구 물길은 괴물같이 생긴 해일 방지시설이 가로막고 서있다. 아버지와 아버지 혈육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 배가 들어오면 늘 왁자지껄했던 곳, 배에서 나는 기름 냄새와 비린내가 뒤섞인, 표현할 수는 없지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곳은 이제 횟집이 즐비한 모습으로 남아 지난 시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혜인 아범이 갓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혜인이가 중학생이 될 오늘까지 한 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으셨다. 아버지를 서운하게 만든 일이 하나둘이 아닌 자식이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식은 원래 그런 거 아닌가. 그렇다고 꿈에 안 나타나실 것까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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