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동안 킨텍스에서 열린 국제전시회를 마쳤다. 아르바이트에 불과하지만 외국인 관람객에게 작은 도움은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직 코로나 여파가 가시지 않아서인지 사흘 동안 꼭 한 명을 만났다.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기를 꿈꾸면서 과연 내가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궁금했다. 아쉽게도 각자 정해진 위치에서 관람객을 맞는 일이어서 젊은이들과 어울릴 기회는 없었다. 뭐,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나. 다음에도 불러준다니 그때를 기약하기로 하고.
일 끝나고 근처에 사시는 작은 처형 댁에 들러 동서와 맥주 한 잔. 아내와 연애할 때 술 얻어먹으러 동서 찾아갔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옛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이 들면 자꾸 뒤를 돌아본다더니, 정말 그렇다.
아버지 돌아가신지 25년이나 되었는데 그동안 몰랐던 이야기를 동서에게서 들었다. 돌아가시기 몇 년 전, 아버지가 술 한 잔 하자고 동서를 부르셔서는 나를 잘 부탁한다고 그러셨단다. 나보다 손 위라고는 해도 아버지에겐 그저 자식 같은 사람이었을 텐데. 그런 사람에게 자식을 부탁하시더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내를 만나기 얼마 전쯤에 아버지가 내게 처가가 좀 번성했으면 좋겠다고 그러신 일이 있었다. 처가 신세는 지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리니 정말 지푸라기 하나만 있어도 그걸 붙잡고 일어설 것 같은데 그 지푸라기 하나가 없어서 참 힘겨웠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가난을 피해 상경하셨고 어머니도 혈혈단신으로 이북에서 피난 내려오셨으니 두 분 모두 기댈 곳이 없었던 탓이다. 그러니 내가 일가붙이가 많은 처가로 장가를 든 것을 보고 얼마나 든든하셨을까. 동서를 만나신 것은 부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든든함을 확인하고 싶으셨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마침 큰 처형까지 내려오셔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처형을 배웅하는데 아내와 옥신각신하더라. 내 생일이라고 봉투 하나를 주시더란다. 뭐 하나 사서 쓰라고.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생일날 처형한테 봉투를 다 받았다. 아직 용돈 주는 분들이 계시다는 건 참 기쁜 일이다. 여러 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