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2.04.23 (토)

by 박인식

문산 내려가는 기차를 마지막으로 탄 것은 사십 년도 더 된 일이었다. 문산을 떠난 후로도 한동안 부모님이 사셨지만 차를 가지고 다녔으니 기차 탈 일이 없었다. 더구나 차로 내려가면 동네 뒤편으로 돌아들어가게 되어 있어서 기차 역 쪽으로 발걸음 할 일도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기차를 탔다. 강산이 네 번 바뀔 세월이었으니 창밖이 달라질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고양 지나 파주 초입까지 도시가 되어있는 모습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벌판에 간이역을 겨우 면한 역사가 들어서있던 곳은 번화가가 되어있어 어디가 어딘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젊은 날 십여 년을 살았으니 함께 어울리던 친구도 적지 않았다. 일부러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떠난 이후로 그저 그곳과 그곳 사람들을 잊고 살았다. 현장으로 떠돌아다니다 보니 그럴 겨를도 없었지만, 끝내 속을 터놓을 만큼 가까워지지 못한 그들과의 관계가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어렸을 때부터 어울려 지내던 사이었고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그들 사이에 끼어든 셈이었으니 그들 가운데 있어도 늘 물에 기름처럼 겉돌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을 텐데.


나이가 드니 그런 관계조차도 반갑고 때로 그립더라. 얼마 전 후배 하나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한 번 내려오라고 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건성으로 대답하고 잊었을 텐데 굳이 전화해 날을 잡자고 했다.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장산리 둔덕에서 대낮부터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해가 기울었다. 그렇게 임진강 너머에서 번져오는 석양이 아름다워 한참 넋을 잃었다. 불콰한 얼굴로 머리에 꽃을 꽂은 빨갱이들과 노닥거리느라 도끼자루가 썩는 줄 몰랐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드는 게 억울한 일만은 아니더라. 뭔가 그들과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것이 걷힌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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