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좋아하던 야구 선수가 TV에 나와 글씨를 쓰는 걸 보고 몹시 실망한 일이 있다. 누군가 손에 힘을 주는 운동이다 보니 글씨 쓰는 것처럼 섬세한 일에 서툴다고 했다. 지난달에 막일을 시작하면서 글씨가 흐트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안 해보던 일인데다가 손에 힘을 줘야 해서 저녁때가 되면 손이 붓고 잘 쥐어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매일 하는 성경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 지나니 글씨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막일을 마친지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도 글씨 쓸 때마다 그 흔적이 보인다.
엊그제 어머니 모시고 치매조기검진을 받으러 갔다. 신청서에 자필 서명하면서 어머니는 글씨가 영 예전 같지 않다며 속상해 하셨다. 지금이야 글씨 자체를 볼 일이 없지만 모든 걸 손으로 쓰던 옛날에는 글씨가 외모만큼이나 중요했다. 인물을 고를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해서 외모, 언변, 글씨, 판단력을 기준으로 삼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명필까지는 아니어도 달필이라고 할 만큼 글씨를 잘 쓰셨다. 초등학교 몇 년 공부한 것이 학력의 전부인 분이 어려운 환경에서 그 정도 글씨를 쓰기까지 들였을 노력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아버지 돌아가신 나이가 된 지금까지 아버지 글씨는 늘 내 글씨의 판단 기준이었다.
작년부터 다시 성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한 글자 빼지 않고 다 쓰는 건 아니고, 성경 한 장에서 열 절 정도만 뽑아서 쓰고 있다. 성경을 읽는 방편이기는 해도 내심 나이 들어가면서 글씨가 흐트러지는 걸 막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신구약 전체가 1천2백절에서 조금 빠지니 삼 년은 걸릴 일이다. 처음 두어 달 지나고 나서부터는 한자 공부도 할 겸해서 한자를 섞어 쓰고 있다. 성경에는 일상에서 쓰지 않는 용어가 많아 큰 공부가 되기도 하고, 요즘 도통 한자를 쓸 일이 없어서 그나마 알고 있던 걸 잊지 않는데 도움도 된다.
써놓고 나서 살펴보니 글씨도 나이를 먹는 모양이다. 예전에 날렵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두루뭉술하고 둥글둥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