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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y 16. 2022

사우디 왕가 이야기 (2)

2017.06.25

압둘아지즈 국왕이 22명의 부인에게서 45명의 아들을 얻은 것은 앞의 글에서 이미 설명 드렸지요. 왕국 통일 과정에서 호족과 연합을 위한 정략결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니 어지간한 부인들은 모두 호족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그 중 두드러진 분이 살만 국왕의 어머니 Hassa bint Ahmed Al Sudairi 왕비입니다. 수다이리 왕비는 슬하에 아들 일곱을 두었는데 그 중 맏아들이 5대 파드 국왕입니다. 살만 국왕은 수다이리 왕비의 여섯째입니다. 역대 국왕 7분 중에 수다이리 왕비의 아들 둘이 국왕에 즉위한 것이지요. 두 국왕 말고도 왕세자로 책봉되었지만 국왕보다 먼저 서거해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자가 두 분 더 있습니다. 둘째인 술탄, 넷째인 나예프가 그들인데, 이번에 폐위된 무함마드 빈 나예프 (MbN) 왕자가 바로 2012년에 서거한 나예프 왕세자의 아들입니다. 부자가 모두 왕세자에 올랐으나 국왕으로는 즉위하지 못한 불운의 왕자인 셈입니다.


짐작하셨겠습니다만 압둘아지즈 국왕의 아들 중 수다이리 왕비가 낳은 일곱 아들이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을 ‘수다이리 세븐’이라고 부릅니다. (국왕 두 명, 왕세자 두 명) 아들이 45명이라고는 하지만 유아사망이 7명, 1919년 있었던 전염병으로 어린 왕자 3명이 죽은 걸 감안하면 서른 명 남짓 권력의 울타리 안에 있었습니다. 권력의 울타리 안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수다이리 세븐의 위력이 워낙 막강해서 사우디 왕국의 세력다툼은 결국 수다이리 세븐과 나머지 왕자간의 대결이 된 것입니다.


5대 파드 국왕이 즉위하고 왕세자를 압둘라 왕자로 책봉했지요. 이때 수다이리 세븐의 맏이였던 파드 국왕은 동복동생을 왕세자로 책봉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복형제들의 반발로 인해 그 중 세력이 약한 압둘라 왕자를 왕세자로 책봉하였습니다. 정부 요직인 국방부장관(군대)은 둘째인 술탄 왕자가 1963-2011년, 내무부장관(경찰)은 넷째인 나예프 왕자가 1975-2012년 장악하고 있었으니 압둘라 왕자가 국왕으로 즉위한다 하더라도 국왕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이고, 게다가 술탄 왕자가 왕세자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마 압둘라 국왕을 과도왕정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압둘라 왕자가 세력이 미미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 구박을 많이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때 압둘아지즈 국왕의 누나인 (압둘라 국왕의 고모) 누라 공주가 압둘라 왕자를 상당히 아꼈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 압둘라 국왕이 세계 최대의 여자 대학을 세우고 자기 고모를 기렸다는 게 아닙니까. 리야드 공항 가는 길에 있는 누라 대학이 그렇게 세워진 겁니다.


압둘라 국왕이 즉위하자 왕자들 사이에 합의한 대로 술탄 왕자가 왕세자로 즉위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압둘라 국왕이 오래 건강하게 버텼고, 술탄 왕자가 노환으로 2011년 서거했습니다. 수다이리 세븐의 위력은 아직 그대로였기 때문에 다음 왕세자는 수다이리 세븐인 나예프 왕자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나예프 왕자 역시 노환으로 2012년 서거했고 뒤 이어 살만 왕자가 왕세자에 즉위했습니다.


압둘라 국왕이 건강하게 10여년 왕위를 지키는 동안 수다이리 세븐의 세력을 견제할 만큼 세력을 키웠습니다. 과도왕정으로 생각했던 압둘라 국왕의 재위기간이 늘어나고 따라서 세력 또한 커지게 되니 자연 수다이리 세븐의 세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살만 왕자를 왕세자에서 축출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압둘라 국왕 재위기간 후반에 살만 왕자가 치매에 걸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소문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과연 국왕에 즉위할 수 있을까 했는데, 즉위하고 나니 멀쩡하기만 했습니다. 즉위하고 나서 한 달 여 만에 박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배석했던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건강하기만 하더랍니다. 결국 고종이 왕위를 이어받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 대원군이 파락호 노릇을 했다는 그 전략을 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압둘라 국왕이 서거할 때쯤 측근들이 살만 왕세자 폐위를 여러 번 시도했고, 축출이 성공하지 못하자 압둘라 국왕 서거 당시 친위 쿠데타를 도모하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살만 왕세자가 그 모든 시도를 무산시키고 7대 국왕에 즉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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