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살펴보기 (3)
<차별금지법>은 성별을 포함해 스무 가지가 넘는 차별사유를 규정하고, 이러한 차별사유로 ‘고용, 재화ㆍ시설 이용, 교육ㆍ훈련, 행정서비스’ 등의 네 영역에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무 가지 넘는 차별사유 중 유독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문제 삼는 보수 기독교계의 반대로 번번이 법안 제정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보수 기독교계 일각에서 이 사유만 빼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제안까지 나오는 점을 감안한다면, <차별금지법> 문제는 동성애로 대표되는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이하 ‘동성애’)의 문제라고 여길 수 있겠다.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죄로 여겨 금하시는 것인데, <차별금지법>은 오히려 동성애를 보호할 뿐 아니라 이를 죄라고 설교하는 것조차 막는 악법이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고 있다. 헌법에서 보장한 ‘종교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과연 지적한 것과 같은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자면 구체적인 주장을 알아야 해서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 단체를 찾아보았다.
<차별금지법> 반대 의사를 표명한 단체는 수백 개에 이르지만 현재 이를 주도하고 있는 단체는 지난 6월에 출범한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이하 ‘진평연’)’으로 보인다. ‘진평연’에는 그간 동성애 반대운동을 펼쳐온 보수 기독교 단체와 교회가 거의 모두 포함되었는데[3], 21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시작된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에 대한 대응으로 출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보니 기존에 다른 단체에서 밝힌 <차별금지법> 반대 논리와 최근 ‘진평연’에서 발표하는 논리가 다르지 않다.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아 미비한 면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반대 논리나 배포하는 자료는 이전보다는 체계가 잡힌 것으로 보인다.
‘진평연’에서는 배포자료와 유튜브 영상을 통해 법안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골자는 “교회에서 동성애를 반대할 수 없도록 <차별금지법>으로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것이다. 법안을 발의한 ‘정의당’에서는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반대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를 이유로 네 영역에서 차별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 설명이 사실일 것으로 생각한다. 대통령을 탄핵할 정도의 자유민주국가에서 종교의 자유, 그것도 조직력이나 영향력이 가장 앞선 기독교를 억압할 법률을 만든다는 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법안을 발의한 정당의 선의를 믿고 이를 수용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선의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제도가 아니라, 불신과 견제를 전제로 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어느 제도 어느 법률을 막론하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고, 취지와 다르게 악용되는 사례도 부지기수이다. 그러니 법안을 반대하는 쪽에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여 법안의 문제점을 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 오히려 다행한 일이다. 따라서 ‘정의당’ 쪽에서는 ‘진평연’이 지적하는 문제에 대해 성실히 답변할 일이지, 이를 비판할 일이 아니다.
지난 6월 29일에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다음 날인 6월 30일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거의 동일한 내용의 <평등법안>을 제시하고 이 시안을 참조해 조속히 입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두 법안이 별로 다르지는 않지만, <평등법안>은 권고 상태인데 비해 <차별금지법안>은 이미 발의된 법안이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안>을 중심으로 법안을 살펴보겠다.
<차별금지법>은 제3조에서 ‘23가지 사유’로 ‘4개 영역’에서 차별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동성애 관련 조항이니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23가지 사유 중에 동성애와 관련된 사유는 ‘성별’[4], ‘성적지향’[5], ‘성별정체성’[6]이다. 이 법안은 모든 영역에서 이와 관련된 (혐오를 포함한) 차별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동성애는 ‘타고나는 것’이라는 주장과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고, 이러한 논란이 의학의 문제에서 신앙과 신념의 문제로 이미 확장된 상태이다. 어느 쪽도 자기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주장’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따라서 ‘주장’은 논의의 장에 맡겨놓고, 서로 다른 ‘주장’ 때문에 실생활에서 개인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것만 막자는 것이 이 법안의 취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안 제3조 제1항 제1호에서 법안의 적용 대상을 ‘4개 영역’[7]으로 한정하고, 이를 적용할 구체적인 행위를 규정하는 제2호[8], 제3호[9], 제4호[10]에서 “제1호 각 목의 영역에서”라고 적용 대상을 거듭 명시하고 있다. 또한 법안 제3조 제2항[11]에 “특정 직무나 사업수행의 성질상 정당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이를 차별로 보지 않는다”는 예외를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종교와 학문의 영역은 본 법안의 적용 대상이 아니며, 따라서 교회에서 동성애 반대 설교를 제한할 근거가 될 수 없다.
‘진평연’에서 본 법안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로 처벌 관련 조항을 들고 있다. 처벌 조항은 이행강제금, 손해배상 및 벌칙이 있다.
제44조에서는 차별행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 내린 시정명령을 정한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않을 경우 3천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제51조에서는 이때 발생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12]을 규정하고 있다. 제51조 제3항에서는 가해자가 차별행위를 고의적, 지속적, 반복적, 보복적으로 행할 경우 이를 악의적인 차별행위로 보고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이 때 차별행위는 당연히 제3조에서 규정한 ‘23가지 사유, 4개 영역’에 한정된다.
제56조[13]에서는 벌칙으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이 부분이 특히 논란이 되고 있어 벌칙의 사유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벌칙은 차별행위 자체에 대해 내려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받은 차별을 진정했다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규정한 제55조 제1항[14]을 위반했을 때만 적용된다. 예컨대, 어떤 차별사유로 승진을 시키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형사적인 벌칙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런 피해를 위원회에 진정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줬을 경우만 해당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내용이 <차별금지법안>의 골격이다. 이 법안 뿐 아니라 2013년 발의된 법안부터 하나씩 살피다 보니 법안을 반대하는 쪽에서 주장하는 이유 중에 타당해 보이는 것도 있고, 개인적으로 불분명하거나 아쉬운 부분도 몇 곳 눈에 띈다.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살펴보겠다.
[3] ‘전국 유림 총연합’, ‘대한민국 지키기 불교도 총연합’, ‘대한민국 수호 천주교인 모임’ 등 이색적인 3개 단체를 포함해 각 개신교 교단, 선교단체, 사회단체 등 486단체로 구성
[4] 제2조 제1호; 남성, 여성,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
[5] 제2조 제4호;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6] 제2조 제5호; 자신이 인지하는 성과 생물학적 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cis-gender), 일치하지 않는 트랜스젠더(trans-gender)
[7] i) 고용, ii) 재화ㆍ용역ㆍ시설 등의 공급이나 이용, iii) 교육기관 및 직업훈련기관에서의 교육ㆍ훈련이나 이용, iv) 행정서비스 등의 제공이나 이용
[8] 2. “제1호 각 목의 영역에서” 외견상 성별 등에 관하여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하였으나 그에 따라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불리한 결과가 초래된 경우
[9] 3. “제1호 각 목의 영역에서” 성적 언동이나 성적 요구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거나 피해를 유발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행위, 그리고 그러한 성적 요구에 불응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그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이익 공여의 의사 표시를 하는 행위
[10] 4. “제1호 각 목의 영역에서” 성별 등을 이유로 적대적ㆍ모욕적 환경을 조성하는 등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
[11] 특정 직무나 사업수행의 성질상 그 핵심적인 부분을 특정 집단의 모든 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행할 수 없고, 그러한 요건을 적용하지 않으면 사업의 본질적인 기능이 위태롭게 된다는 점이 인정되는 경우. 다만, 과도한 부담 없이 수용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2] 이 법에서 금지한 차별행위가 악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법원은 차별행위를 한 자에 대하여 제2항에서 정한 재산상 손해액 이외에 손해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에 해당하는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판결할 수 있다. 다만, 배상금의 하한은 500만 원 이상으로 정한다.
[13] 사용자 등이 제55조를 위반하여 불이익 조치를 한 경우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4] 사용자 및 임용권자, 교육기관의 장(이하 이 조에서 ‘사용자 등’이라 한다)은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 및 그 관계자가 이 법에서 정한 구제절차의 준비 및 진행 과정에서 진정 또는 소의 제기, 증언, 자료 등의 제출 또는 답변을 하였다는 이유로 해고, 전보, 징계, 퇴학, 그 밖에 신분이나 처우와 관련하여 불이익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