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도 친구도 없는 곳에서 십 수 년을 살았다. 지루하고 때로는 외롭기는 했어도 그래도 살았다. 한국이 그립다고 하던 일을 집어 던지고 돌아올 생각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돌아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 일을 계속할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몇 달을 보내고 있다. 언제 돌아가느냐는 물음에 이번에는 좀 길게 있게 되었다며 한두 달을 이야기했다. 돌아갈 날이 미뤄지면서 석 달이 되고 넉 달이 되었다. 그러면서 이곳 삶에 조금씩 녹아들었다. 늘 그리던 개천길이며 산자락 길을 걷는 게 일상이 되었고 하루걸러 약속이 잡혔다. 어느 날부턴가 리야드에서 살던 기억이 아득해졌다. 그저 꿈 한 번 꾼 것 같았다.
오래 끌어온 소송이 끝나면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 있으니 가기는 가야겠지만, 정리를 위해서 가는 것이지 정리하고 다시 한 번 털고 일어서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진지 이미 오래되었다.
중고등학교 동창 모임이 여럿 있는데 모두들 은퇴하고 나니 예전보다 더 열심히 모인단다. 오늘 그 모임 중 한 곳에 참석했다. 저녁 약속이었는데, 몇몇이 먼저 모여 마곡에 있는 서울식물원을 한 바퀴 돌고 한강 자전거길 따라 약속장소로 오니 이미 술이 한 순배 돌았더라. 며칠 전에 만난 친구부터 졸업하고 사십 수 년 만에 처음 본 친구까지. 그런데도 마치 어제 본 것처럼 말을 섞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모인 지 꽤 오래 되었다는데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거의 두 해 만에 만나는 거라고 했다. 두 해 만에 만났거나 수십 년 만에 만났거나 어색한 교복차림으로 만났던 오십 수 년 전으로 돌아가는데 단 일 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매달 하루는 빼어놔야 하게 되었다.
아, 정말 바쁘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