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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23. 2022

사우디 왕가 이야기 (6)

2017.11.07

요 며칠 사이에 사우디에서 벌어진 일은 이미 권력을 쥔 쪽에서 이를 뒤엎으려는 세력을 제거하는 양상이니 친위쿠데타라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밖에서는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상황은 2015년 1월에 살만이 국왕으로 즉위할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니 놀랄 일도, 새로울 일도 아니지요.


♣♣♣


선왕이었던 압둘라는 당시 왕세제(王世弟, 제1왕위계승권자)였던 살만과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살만 일가가 워낙 막강하니 어쩔 수 없이 살만을 왕세제로 책봉하기는 했지만, 압둘라 선왕은 어떻게 해서든 살만 일가를 권력에서 퇴출시키려 애씁니다. 이를 위해 살만 일가, 혹은 이에 우호적인 왕자들을 주지사나 장관에서 퇴진시키고 자기 아들들을 전면에 배치합니다. 그렇기는 해도 왕세제인 살만을 폐위시킬 만한 힘은 없었던지라 대신 무끄린 왕자를 부왕세제(副王世弟, 제2왕위계승권자)로 책봉하고 왕명으로 이를 변경할 수 없도록 못 박습니다. 살만이 국왕으로 즉위할 경우, 이런 조치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는데도 굳이 무끄린 왕자를 부왕세제로 책봉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결국에는 왕세제인 살만을 폐위시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미처 살만 왕세제를 제거하지 못한 채 압둘라 선왕의 서거가 임박하자 선왕 측근들이 마지막으로 살만과 담판을 시도합니다. 살만은 선왕 측근들을 제어할 힘도 있었고 왕세제라는 명분도 있었으니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당연한 결과였지요. 그리고 그 밤이 지나기 전에 선왕 측근들은 모두 체포됩니다.


이런 상황이니 살만이 국왕에 즉위하면 무끄린이 왕세제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리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살만은 국왕에 즉위하자 예상과는 달리 무끄린을 왕세제로 올리고, 조카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MbN)를 부왕세자로 책봉합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이로서 건국 90여년 만에 태조 압둘아지즈 국왕 이후 형제 상속으로 이어온 왕위가 마침내 3세 상속으로 넘어가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지요. 시중의 여론이 MbN 부왕세제 책봉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국 석 달 후, 살만 국왕은 무끄린 왕세제를 폐위하고 MbN을 왕세자에 책봉합니다.


이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살만 국왕이 7남인 무함마드 빈 살만(MbS)을 부왕세자로 책봉한 것이지요. 살만 국왕이 MbS를 총애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래서 살만 왕세제 사무실의 책임자로서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기는 했지만, 위로 생존해 있는 형 넷(1남 2001년, 2남은 2002년 심장질환으로 사망)을 제치고 불과 서른 두 살의 나이로 권력의 선두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후로 MbS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국왕 휘하에 있는 모든 위원회를 정치안보위원회와 경제위원회로 통폐합하고 정치안보위원회는 MbN 휘하에, 경제위원회는 MbS 휘하에 둡니다. 여기까지야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경제위원회는 온전히 MbS가 관할하도록 한 반면에 정치안보위원회는 MbN이 온전히 관할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정치안보위원회의 중심축인 국방부장관이 바로 MbS이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MbN의 위상은 위축되어 가고, 언론보도 또한 MbS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합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경제와 국방을 한 손에 틀어쥐었으니 말이지요.


한동안 시중에서는 MbS가 MbN을 밀어내고 왕세자가 될 것이라는 의견과, 결국에는 MbN이 즉위하고 MbS는 망명길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팽팽했습니다. 현상은 MbS에게 절대 유리하게 보이지만 MbN 집안이 결코 만만하지도 않고, 미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살만 국왕에 우호적인 다른 왕자들조차 MbS의 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결과는 여러분이 보시듯 MbS의 완승으로 끝납니다. 알려진 것처럼 지난 6월 20일, 한밤중에 MbN을 왕궁으로 불러 감금하고 양위하라고 협박했다는 거 아닙니까. 다음날 MbN 자의로 물러난 것으로 보도도 되고, MbN이 MbS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동영상도 공개됩니다. 이에 대해 왕실 내부적으로 반발이 상당히 심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MbS의 측근이라 해도 무방할만한 인사 하나를 알고 있는데, 그가 MbS를 왕세자로 세운 것에 대해 얼마나 심하게 화를 냈는지 모릅니다.


이런 모든 정황을 고려한다면 요 며칠 사이에 일어난 친위쿠데타는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 헬기사고로 죽은 만수르 빈 무끄린 왕자는 살만 국왕이 폐위한 무끄린 왕세제의 아들이고, 그저께 왕자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총격으로 죽은 압둘아지즈 빈 파드 왕자는 MbN의 측근입니다. 이들은 당연히 MbS에 대해 반감을 가졌을 것이고, 그것이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졌을 것이며, MbS 또한 이럴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볼 때 압둘라 선왕의 아들인 미텝 국가방위군장관(Minister of National Guard)이 이번에 해임된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지요. 물론 국가방위군의 실질적인 주인이니 호락호락 물러나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국가방위군 병력의 상당수가 예멘 전쟁에 투입되었고 북쪽 국경수비대에도 적지 않은 병력이 이동 배치되었기 때문에 종이호랑이가 된 지 이미 오래거든요. 종이호랑이라고는 해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무력통치로는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우디가 왕국이기는 해도 모든 언로가 열려있으니 예전처럼 국민을 통제하는 게 결코 만만치 않을 겁니다. 결국 MbS의 성공은 국민의 호응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국민은 MbS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음번에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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