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2.07.10 (일)

by 박인식

아래층으로 막내아우가 이사 왔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우리와 함께 살다가 대학 마치고 입대하면서 독립한 후로 꼭 삼십 년 만에 곁으로 온 것이다. 함께 저녁 식사하면서 혜인이네와 영상통화를 했다. 한 방에서 뒹굴며 자란 혜인 아범에게는 자기보다 열 살 위인 아우가 삼촌이자 형이었다. 혜인이 혜원이 자라도록 몇 번 보지 못해서 아우는 작은할아버지라는 말에 무척이나 어색해 했다.


아우 결혼하고 얻은 큰 아이 이름 때문에 꽤 오랫동안 왕래 없이 지냈다. 아들은 많았어도 손자는 혜인 아범 다음에 그 아이였고, 스무 살 넘게 차이가 났다. 예전처럼 형제가 많은 것도 아니니 둘이 의지하고 살라는 뜻으로 돌림자를 쓰라고 했다. 아우는 어렵게 얻은 아이라 이미 이름을 정해놨다며 고집을 부렸다. 생각해보니 고집을 부린 건 아우가 아니라 나였다. 제 자식 제가 이름 짓겠다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혜인 아범은 머리가 희끗희끗해졌고 조카도 입대를 앞둔 청년이 되었다. 혜인 아범이 유학 떠날 때 겨우 다섯 살인데다가 몇 번 보지도 못했으니 형이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혜인 아범이 자꾸 말을 시키니 어색한 모습이 누그러지기도 했고 통화 마치고는 얼굴이 상기되었다. 돌림자라도 썼으면 형이라는 말이 조금은 쉽게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웠다. 그래도 내색은 하지 않았다.


오늘도 궁금해 기웃거리는데 아내가 질색을 한다. 시집와서 키우다시피 했으니 궁금하기는 아내가 더 하겠는데 불편해 할 거라며 전화도 못하게 한다. 그래도 아우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자식처럼 여겼던 아우가 이렇게 의지가 될 줄은 몰랐다. 하긴 자식도 의지가 될 나이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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